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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레이트 게임》

《그레이트 게임》, 아메드 라시드, 월간조선사

이 책의 원제는 《탈레반 ― 중앙아시아에서의 전투적 이슬람, 석유 그리고 근본주의》다. 원래 ‘그레이트 게임’이란 19세기 말 인도를 점령한 뒤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영국과 중앙아시아 정복 전쟁을 벌였던 짜르의 러시아가 각자 국경선을 긋고 아프가니스탄을 완충지대로 결정한 두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 다툼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신(新) 그레이트 게임’인 셈이다.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 내 군벌들과 이들에게 무기와 돈을 지원해 자신의 이권을 지키려는 지역 국가들(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연방국)과 이들 뒤에 버티고 있는 열강인 러시아, 미국, 중국 사이의 각축전을 가리킨다.

파키스탄인 저널리스트 아메드 라시드는 21년 동안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모은 취재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9·11 테러 직후 부시는 대중 매체를 동원해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을 악마로 묘사했다.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과 이 나라에 혜성처럼 등장한 탈레반 정권에 대한 관심은 소수의 정치 평론가나 외교 전문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전쟁 옹호론자건 반전론자건 모두 라덴과 탈레반에 대해 자신의 논리를 갖추어야 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동안 국제 정치 무대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 아프가니스탄이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 때는 1979년이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0년 뒤 소련이 패배하고 이 곳에서 물러나자 이 나라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그 때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만든 많은 요인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끔찍한 가난, 기아, 불구가 된 사람들, 황폐해진 도시들 뿐 아니라 이슬람 근본주의에 충실한 반공(반소) 무자헤딘도 이 시기에 나타났다. 후일 탈레반의 모태가 될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수용소와 마드라사(종교 학교)도 이 시기에 세워졌다. 카스피해 연안국들이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와 천연 가스 개발 및 파이프라인 건설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던 소련 붕괴의 조짐도 이 때 나타나고 있었다. 아메드 라시드는 이 때부터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관심을 갖고 사태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이 창조한 괴물이라는 사실, 한때 미국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탈레반이 권력을 잡도록 지원했다는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부패한 군벌들과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초래되었다는 사실,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와 천연 가스 그리고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미·러와 지역 열강 사이의 권모술수와 암투를 벌인 사실을 저자는 매우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탈레반이 한 줌밖에 안되는 군대로 시작해서 어떻게 탐욕스런 군벌들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1994년 봄, 한 마을 사람들이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에게 와서 한 군부대장이 10대 소녀 두 명을 납치해 머리를 깎아 버리고, 병사로 끌고 가 여러 번 강간했다고 호소했다. 오마르는 30명 가량의 탈레반을 모아 그 부대장의 기지를 공격했다. 그들은 소총을 16정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 소녀를 풀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대장은 탱크 포신에 매달아 교수형에 처했다. … 나중에 오마르는 말했다. “우리는 타락한 무슬림과 싸웠습니다. 여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탈레반의 이데올로기에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탈레반만의 책임이 아니다.

이 책 2부는 탈레반 정권의 사회·정치 체제를 분석하고 있다. 주로 저자의 목격과 인터뷰에 기초한 것이다. 예를 들면, 탈레반이 카불 점령을 앞두고 시아파인 하자라족을 학살한 것이라든지, 매주 금요일 축구장에서 범죄자를 공개 처형하는 것, 극도로 억압적인 종교경찰 국가의 면모, 마약 마피아들과의 공생 관계 등이다. 이 책을 우리 나라에 소개한 우익 잡지사인 월간조선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내용들일 것이다. 만약 탈레반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 환상이 산산조각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실제 일부 사람들은 탈레반 정권에 대한 역겨움 때문에 사실상 반전문제에 대해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곤 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부시의 전쟁을 지지할 수는 없다. 반전론자들이 부시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탈레반의 악행을 못 본 체하고 그들을 이상화하거나 옹호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진실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벌들과 싸우는 도중에 인종청소를 했다면 미국이 후원하는 북부동맹 소속 군벌들 또한 인종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공개 처형이나 여성 억압적 조치들은 미국이 후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미국은 북부동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악행은 못 본 체 하지만, 탈레반은 궤멸시키려 한다. 이건 결코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미국이 이런 편파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미국의 이해 관계, 그 자신이 이 지역 이권을 놓고 벌이는 ‘그레이트 게임’의 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정한 역할”을 통해 평화를 가져오길 바란 것은 공상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저자가 일부 군벌에 대해 우호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 것도 거슬린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풍족했던 문화 도시 헤라트를 기반으로 한 군벌 이스마일 칸을 훌륭한 반소 무자헤딘 전사라며 추켜세운다든가, 카불 북부 타지크족 거주지인 판지시르 지역 출신 군벌 아마드 샤 마수드를 무적의 게릴라 명인이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독립과 자유를 염원하는 투사인 양 묘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런 몇 가지 거슬리는 점들을 제외하면, 이 책의 유명세만큼이나 우리가 몰랐던 아프가니스탄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많은 구체적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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