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에 맞선 대중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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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서중석·이만열·정영철·정태헌·한홍구, 철수와 영희, 1만 3천 원, 280쪽
2008년은 역사학계에 한바탕 풍파가 일었던 해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만든 《‘대안’ 한국근현대사》가 출간되자, 정부가 앞장서서 친일파들의 명백한 친일 행위를 감싸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을 반국가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는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의 역사 왜곡에 맞서 2008년 겨울에 열린 ‘한국 근현대사 특강’을 녹취해 출판한 책이다. 집필자 다섯 명은 그야말로 ‘근현대사 드림팀’인데다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맞춰 ‘뉴라이트의 역사의식’, ‘국가, 식민지, 민주화와 경제 성장’,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독립운동’, ‘북한 현대사’ 등을 매우 쉽게 설명한다. 따라서 고등학생이나 일에 지친 직장인들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이들은 역사 왜곡의 뿌리인 뉴라이트와 그들의 주장을 통렬히 비판한다. 한홍구는 뉴라이트 등의 한국 보수 세력들이 ‘양심 없는 이’들이라며 함석헌, 리영희, 장준하 등의 반공 이력이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이나 이념적으로는 극우에 가까운 김구 같은 이들마저 배제하는 천박한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한다.
정태헌은 일제 강점기가 ‘식민지적 근대’라며, 일제 지배 덕에 남한 자본가들이 경영 능력을 키웠다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고, 미국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나라의 자본주의가 성장하려면 독립된 국가 주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편 이만열은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리하며 독립운동은 “단순히 주권 회복만을 위한 활동이 아닌 근대국가를 이루기 위한 실험”이었다며, 이 점을 생각해야 “식민지 근대화론을 깰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론적 무기가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중석은 해방 후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아 친일파들이 남한의 민주주의, 통일, 사회정의 등의 걸림돌이 됐지만 4월 혁명 등 민주화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진 결과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정영철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자며, 소련의 위성국으로서의 북한이 아닌, 독자적 축적 과정을 거친 한 국가로서의 북한의 역사를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에는 꼼짝 못하면서 오로지 반북 이데올로기만 고집하는 뉴라이트의 이중 잣대도 폭로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는 아쉬움이 있다. 자유주의적 주장에 머무르다 보니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한민족의 당면 과제였던 것만 강조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강조하다 보니 김구의 해방 후 테러 행위 등 임시정부 세력의 문제점 같은 것은 거의 지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중석은 민주당(구 열린우리당)까지 ‘진보’의 범주에 넣으면서 경제 위기나 민주화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암암리에 한나라당에만 돌린다. 한편 정태헌의 주장처럼 민주화가 곧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것처럼 이야기하다 보면 1990년 이후 남한 경제를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만열은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가 다른 교과서보다 김일성이나 국내 공산주의자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고, 독립운동 당시 이승만의 문제점을 비판한다는 역설(逆說)을 지나치게 강조해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 의도를 흐린 측면이 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가 보기에는 다소 아쉬운 책이다.
그러나 약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뉴라이트와 이명박을 시원하게 ‘까는’ 책이며, 구체성과 전문성, 대중성까지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