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좌경용공과 좌익세력이란 말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말이었던 우리나라에서 ‘좌파’ 대통령이 나왔고, 강남부자 절엔 ‘좌파 스님’이 주지로 있고, 참교육을 외치는 것이 ‘좌파 교육’이 됐다. 용산참사 유가족을 위한 미사와 4대강 삽질 반대를 선언한 ‘좌파’ 신부님들과 환경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좌파’ 목사님들도 있으며, 시국선언 했다는 이유로 생겨난 ‘좌파’ 문인들, ‘좌파’ 영화감독들과 예술인들도 있다.
전직 대통령 노제 때 사회를 보며 울었다는 이유로 ‘좌파’가 돼 버린 연예인도 있는 세상에, 국민을 위한 공공복무를 선언한 공무원이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좌파가 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하물며 촛불마저 좌파라고 하는 세상에 무엇이 좌파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좌파를 전면에 내걸고 나선, 〈레프트21〉이 창간한 지 1년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지도 않다.
그럼 도대체 좌파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일까?
프랑스 제헌의회가 1789~91년에 국왕에게 남겨진 권한과 국왕의 거부권 문제를 놓고 분열되었을 때, 급진파는 의장 자리에서 볼 때 의회 왼쪽에 자리 잡아 오른쪽에 자리 잡은 보수파와 마주 보았다고 한다. 이런 자리배치가 뚜렷해지면서 ‘왼쪽’, 즉 ‘좌파’는 국왕 거부권 폐지, 단원제 입법부, 임명이 아닌 선출로 사법부 구성, 권력분립, 강력한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의 우위,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1인1표식 민주적 참정권 등을 채택하는 강력한 민주주의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오늘날 대다수 국가들이 사전적 의미의 ‘좌파’의 정책을 인류의 지혜와 유산으로 상속받았고, ‘우파’들이 보기에 경악스러울 정도로 세계 전체가 견고한 좌파 체제로 구축돼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하지만 비약은 비약이다. 현실은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인류 공존의 세상을 그려 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를 둘러싼 파시즘적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의 상실》의 저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1930년대에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면 파시즘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야 한다.”
바로, 〈레프트21〉이 우리에게 증명하고 소통하는 것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