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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어떤 종류의 기후정의 운동이 필요한가

안타깝게도 유엔 회의의 암울한 전망은 전 세계적 기후정의 운동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기후정의 운동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부들에 기대할 게 없고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는 각성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놓고는 뚜렷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이런 전망 부재 때문에 운동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 이는 지난 코차밤바 회의 당시에도 본지가 지적한 약점이었다(〈레프트21〉 31호에 실린 관련 기사를 보시오).

12월 5일 유엔기후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 시내에서 회담장을 향해 행진하는 시위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제3세계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기후변화 책임을 떠넘기지 않으면서도 ‘체제’ 전환을 이루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온실 가스를 대폭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선진국에 사는 소비자들의 개인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개인적 에너지 절약 운동만으로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바꾸는 것만이 현 사회의 생산방식을 바꿀 근본적 대안이라는 생각이 상식처럼 퍼져 있다.

이런 생각은 거꾸로 된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가정주부·학생 들은 자신이 어떤 에너지를 소비할지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아파트나 연립 주택을 지을 때 단열재를 얼마나 쓸지, 난방 시스템을 어떤 것으로 할지, 대중교통 수단을 얼마나 보급할지, 화력발전소를 지을지 풍력발전 단지를 지을지 등 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는 모두 건설회사·발전회사·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개인들의 소비 행태가 생산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방식이 소비 패턴을 결정한다.

정부가 나서서 재생에너지 보급에 투자하고, 건설회사들이 더 안전하고 따뜻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을 짓도록 규제를 강화하고, 무분별한 승용차 생산을 규제하면서 대신 대중교통 수단을 보급한다면 대중의 소비 패턴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생산

에너지 체제를 전환하려면 노동자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많다.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지 않는 한 기후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 사회에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곳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도로 중심의 교통 체계다.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 감소나 고용 조건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지난 12월 1일 열린 ‘칸쿤 기후회의 이후의 기후운동 전략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정의로운 전환’ — 노동자 희생 없는 에너지 전환 — 이라는 기후정의 운동의 전략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도 총고용량은 순증가할 수 있다는 가정이 현실 타당한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잘 싸우면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이런 의문은 현대 사회의 (에너지) 생산량 자체가 환경 문제를 낳는다는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에너지 생산 증가가 필연적으로 엄청난 환경 파괴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류의 에너지 소비에 절대적 한계가 있다는 근본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에는 이론적 근거가 없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압도적으로 태양에서 온다.

문제는 생산량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소비의 한계는 자연의 본질이 아니라 이 체제의 성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는 대부분 개별 자본가들이 정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 혹은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연의 미래를 고려할 수가 없다.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 논리가 자본가들의 생존을 지배하기 때문에 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치킨 게임을 멈출 수가 없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의 바람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지나간 뒤에 홍수가 덮치길!”

이처럼 합리적 계획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신 나간 경쟁이, 민주적 통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본의 독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특징이다.

반대로 우리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에너지 체제를 전환한다면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전 세계를 어둠과 추위 속으로 밀어넣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

따라서 기후정의 운동은 시장 경쟁과 자본의 독재에 맞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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