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민중의 소리〉가 기업광고 받는 것에 반대한다
〈노동자 연대〉 구독
인터넷 언론인 〈민중의 소리〉가 “민중의 소리, 삼성 광고 받아도 될까요?”라는 제하의 메일로 기업 광고를 받는 것은 어떠냐고 독자들에게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중의 소리〉가 기업광고를 받는 것에 반대한다. 굳이 기업광고를 받아야 한다면, 〈민중의 소리〉에서 “민중”이라는 말을 빼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기업 광고는 불가피하게 정치적 주장을 톤다운하게 만든다. 이는 그 언론과 기업 간의 정치적 관계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관계 때문이다.
예컨대 〈한겨레〉는 2009년 하반기에 재정난으로 기자들을 순환휴직시켰다. 그리고 2010년 1월에 삼성 광고를 받기 시작했다. 2월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 광고를 거절했다.
사실 당시에 이 책 광고를 거절한 언론이 〈한겨레〉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삼성은 언론에 광고 거부라는 방법으로 압력을 넣었던 듯한데 재정난을 겪던 〈한겨레〉로서는 이런 압력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향신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삼성을 가장 많이 비판했던 주류 언론에 해당한다. 그래서 두 신문사가 삼성 같은 기업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었으리라고 추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막상 닥친 재정난으로 그 동안의 정치적 비판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다.
둘째, 기업과 정부의 광고나 후원을 받는다면 그 언론사는 다른 많은 언론사처럼 정보 제공자나 선전 집단에 지나지 않게 되고, 실제 운동을 조직할 수 없다.
사실, 〈민중의 소리〉는 이미 성형, 미용 전문병원, 결혼중매업체 광고를 싣고 있다(웹사이트 대문이 아니라, 기사에서, 그리고 단어들에 각종 스폰서 링크를 연결해 놓았다). 〈민중의 소리〉는 여성의 날을 맞아, 이대, 연대, 고대 비정규직 미화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실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성형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취업을 앞둔 예비 여성 노동자가 읽었다고 하자. 〈민중의 소리〉는 기사 따로 광고 따로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이 여성 예비 노동자가 그 기사를 ‘이런 저항이 있구나’ 하는 정보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여성은 50∼60대 여성 미화 노동자들의 처지와 성형수술을 고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사회의 구조적 요인이 여성 일반에게 강요하는 같은 억압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이 기사를 통해 보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 여성 예비 노동자는 여성 미화 노동자를 동정하거나 연대해야 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자본주의 또는 사회의 구조적 요인에 도전해야 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민중의 소리〉에 광고를 대는 병원 링크를 클릭해 수술 날짜를 잡을지도 모른다. 최근엔 아예 중동 민중 반란을 두고 한국의 기업을 걱정했다.
민중이 여성 억압에 거부하고 맞서라고 행동을 고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차별에 대해 비판적인 말 몇 마디하고 되레 성형수술을 하라는 유혹을 하고 있으니 누가 이런 ‘소리’를 ‘민중’의 소리라고 생각하겠는가. 자신들의 언론사 이름을 뭐라 짓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민중에 포함된 나는 그 이름이 잘못 쓰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민중의 소리〉 역시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며,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데 재정난을 겪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재정난을 극복하는 방법이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