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 삭제를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 극복” 등의 문구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문구로 바꾼다는 것이다.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은 “당이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이나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감안해” 강령 삭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과 의구심이 커지고 있고, 경제 위기·독재·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이 중동을 휩쓸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할 때 아닌가.
‘사회주의 강령이 진보대통합에 걸림돌’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분당 사태 때도 논쟁이 된 것은 패권주의와 북한 문제였지 사회주의 강령이 아니었다. 이번 진보대통합 논의에서도 진보신당, 사회당 등은 사회주의 강령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더구나 ‘사회주의’와 ‘북한 경직성 극복’ 등의 문구를 삭제하는 것은 자주파 지도부가 수적 우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만 관철하려는 시도로 보일 테고, 이것은 진보대통합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이다.
“당원의 눈높이”를 핑계대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강령은 미래의 대안 사회 체제를 제시하는 것이지 당원들의 현재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사회주의 삭제 주장은 당원들이 아니라, 위로부터 지도부가 제기한 것이다. 오히려 〈한겨레〉는 “기층 당원들 사이에선 사회주의 원칙의 포기를 심각한 후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심각한 후퇴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는 것도 강령 개정의 이유가 못 된다. 그러려면 대중의 요구와 정서에 부합하는 적절한 전술과 정책을 제시할 일이지 원칙을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할 일이 아니다.
‘국가 탄압의 빌미가 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그러면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핑계로 삼고 있으니 북한과 교류도 하지 말자고 할 텐가. 더구나 대중적 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삭제하며 탄압을 피하려 하면 ‘공안’ 기관의 기만 살려 줄 것이다.
당의 급진성을 희석시켜 선거에서 표를 더 얻으려는 선거주의와 민주당 등 친자본주의 정당들과 계급연합하려는 계급협조주의가 강령 개정의 진정한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강령을 후퇴시키고,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의 강령 논의도 더 오른쪽에서 시작하려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그동안 사회주의적 실천을 하거나 사회주의를 선전한 것은 아니지만, 강령에서마저 사회주의 문구를 삭제하는 것은 명백히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후퇴를 뜻한다. 당장 조중동은 ‘민주노동당도 사회주의를 포기했다’고 좋아할 것이다.
비록 현재의 당 강령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이런 후퇴를 방기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강령 삭제 시도를 중단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발전시키고 주장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