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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

정성진 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

심화하는 경제 위기

지난 주말 LG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지급 중단 사태는, 채권 은행단의 긴급 수혈로 부도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지난 1997년 초 IMF 위기로 가는 신호탄이었던 한보그룹의 부도 사태를 많은 이들에게 연상케 하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8개 전업 카드사가 연내 갚아야 할 빚이 3조 6천억 원에 이르는 등 현재 카드사 부실은 금융권의 최대 불안 요인이 돼 있다.

국내 1위 카드사인 LG카드사가 부도 위기 직전까지 몰린 것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급격히 둔화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이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 경제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IMF 위기 당시인 1998년 마이너스 6.7퍼센트에서 1999년 10.9퍼센트, 2000년 9.3퍼센트로 회복됐다가, 2001년 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3.1퍼센트로 둔화된 후, 작년 6.3퍼센트로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들어 전년 동기 대비 GDP 성장률은 1/4분기 3.7퍼센트, 2/4분기 1.9퍼센트, 3/4분기 2.3퍼센트로 다시 둔화하면서, 올해 노무현 정권이 목표했던 GDP 성장률 3퍼센트 달성은 무망해지고 있다.

2003년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는 미국·일본·중국·동남아 경제 등 세계 경제가 올 들어 전반적으로 회복 또는 고성장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발생한 현상이어서 더욱 상서롭지 못하다.

지난 3/4분기 미국·일본·중국·대만·인도네시아의 GDP 성장률은 각각 7.2퍼센트, 2.5퍼센트, 9.1퍼센트, 4.2퍼센트, 3.9퍼센트로 모두 한국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과 일부 경제평론가들은 계속되는 수출 호조세를 주된 논거로 현재 상황을 낙관한다.

그러나 최근의 수출 호조세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경쟁력’이 향상된 결과이기는커녕 지난 김대중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심화된 한국 경제 해외 의존성의 반영이다.

즉, 최근의 수출 증가는 올 들어 미국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중국 경제의 고성장이 지속되면서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이 증가한 결과일 뿐이다.

사실, 지난 3/4분기 2.3퍼센트 성장이라는 것도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각각 1.9퍼센트, 4.7퍼센트 감소하는 가운데 수출이 16.8퍼센트 급증한 것에 결정적으로 힘입은 것이다.

이는 최종 수요에 대한 내수의 성장 기여율이 2003년 2/4분기에 최초로 마이너스로 돌아서 마이너스 7.8퍼센트를 기록한 후 3/4분기에 다시 마이너스 30.9퍼센트로 저하한 반면, 수출의 성장 기여율은 2003년 2/4분기에 최초로 100퍼센트를 넘어서 107.8퍼센트를 기록한 후 3/4분기에 다시 130.9퍼센트로 증가한 데서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극도의 내수 부진과 기형적 수출 증가는 향후 한국 경제의 회복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 30년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수출이 견인해 왔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 경기가 좋아지고, 수출이 부진하면 경기가 둔화했던 것이 한국 경제의 주된 특징이었다.

현재 문제의 심각성은 수출이 다른 어느 때보다 호조를 보이는데도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만약 현재 한국 경제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 경제가 다시 불황에 빠진다면, 한국 경제의 최후 보루 구실을 하고 있는 수출마저 무너질 것이고, 그 경우 1997년 IMF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도래할 것임이 분명하다.

IMF

경기가 둔화하면서 김대중 정권 이후 급증했던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감소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1998년 88억 달러에서 1999년과 2000년 각각 155억 달러와 152억 달러로 급증한 후, 2001년 112억 달러, 2002년 91억 달러로 급감하고, 2003년 3/4분기까지 46억 달러밖에 유입되지 않아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6.1퍼센트나 감소했다.

어떤 이들은 최근의 국내 투자 급감이 전투적 노동운동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중국 등으로 자본이 해외 이전한 것, 즉 ‘제조업 공동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한국 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1998년 58억 달러에서 1999년 50억 달러로 약간 감소한 후, 2000년과 2001년 각각 60억 달러와 63억 달러로 약간 증가했지만, 2002년 62억 달러로 다시 감소하고, 2003년 3/4분기까지 38억 달러가 유출돼 전년 동기 대비 9.3퍼센트나 감소했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 자본의 투자가 둔화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최근 한국 경제의 둔화는 ‘펀더멘탈’(경제의 기초)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윤율이 저하하는 조짐을 보이는 데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제조업 부문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올해 상반기에 7.3퍼센트로, 전년 동기의 9.2퍼센트에 비해 1.9퍼센트 포인트 하락했다.

그래서 조·중·동을 비롯한 부르주아 언론매체들과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에 줄을 섰던 대부분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현재 한국 경제가 1997년 IMF 위기 상황으로 다시 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위기는 모두 포퓰리스트적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이에 따른 대중 투쟁의 격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1997년 IMF 위기 동안 실업으로 생존의 위협에 몰리고 지난 5년 김대중 정권 하에서 경제 회복을 위해 저임금·고강도·장시간 노동으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이들은 노동자 대중이다.

이는 1997년 IMF 위기 이후 착취 강화와 불평등 심화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 예컨대 노동소득분배율은 1980년 51.3퍼센트, 1990년 59.1퍼센트, 1996년 64.2퍼센트로 정점에 달한 후, 1997년 62.8퍼센트에서 2000년 59.4퍼센트로 감소한 후 2001년 62퍼센트로 개선되는 듯하다가, 2002년 60.9퍼센트로 다시 감소했다.

이는 지난 IMF 위기의 극복이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 덕택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노동자 착취 강화에 기초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노무현 정권과 자본가 계급은 경제 위기 극복에 몸바친 노동자 대중을 또다시 희생양 삼아 최근의 경기 둔화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올해 초 배달호 씨 분신과 최근 김주익 씨 자결 이후 고조되고 있는 노동자 대중 투쟁은 경제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노동자 착취 강화로 이윤율 저하를 타개하려는 노무현 정권과 자본가 계급의 공격에 대한 필사적 저항이다.

이와 같은 노동자 대중의 생존권 방어 투쟁을 경제 위기와 노동자 착취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는 반자본주의 투쟁과 접맥시키는 것이 진정한 좌파가 수행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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