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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탄압 분쇄 투쟁을 돌아보며

노동운동 탄압 분쇄 투쟁을 돌아보며

반자본주의자들의 당면 과제

김하영

민주노총의 노동운동 탄압 항의 투쟁은 잠시 잦아들고 있는 상황이다. 11월 19일 수요 파업은 11월 5일과 12일 파업에 비해 참가 인원이 현저히 줄었다.

11월 19일과 26일 수요 파업은 어떤 작업장들이 파업에 들어갈지도 처음부터 불분명했기 때문에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의 양보를 얻어 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대로 투쟁을 끝낼 수 없으므로 계획은 제출됐지만, “수요 파업”으로의 전환은 투쟁을 서서히 정리하는 수순이었다. 경험이 웬만큼 있는 조합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수요 파업 방침이 현장 조합원들의 ‘드높은’ 투쟁 의지를 거스른 완전한 배신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력을 살리는 방식의 더 집중적 투쟁을 택하지 않았던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말이다.

작업 현장별로 불균등했지만, 일반으로 말해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이 지도부의 결정을 훨씬 넘어서는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관망

그렇다고 이번 노동자 투쟁의 성과가 전혀 없었거나 노동자 운동이 큰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이 요구 조건을 1백 퍼센트 쟁취했고, 이에 미치지는 못해도 타결에 이른 투쟁 작업장들이 꽤 있다.

또, 각 지역 검찰청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노총의 최대 요구였던 손배·가압류 등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논의할지를 둘러싸고 유예된 상태다.

최근 ‘다함께’ 토론에서 최일붕 동지가 지적했듯이, 현재 노동계급은 노무현의 잇단 배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혹해 하며 생각을 추스르려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에 노동자들은 기대에 기초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승리를 거듭했다. 그런데 철도 파업을 기점으로 시작된 노무현의 강경 대응은 이번 투쟁에서 극단에 이르렀다.

노무현은 올해 초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떤 분이 기대한다고 했는데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상당 기간 여러분과 함께 험하고 힘든 자리를 쫓아다녔”고 “정치에 전념한 뒤로도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던 노무현이 노동자들의 자살과 투쟁에 대해 보인 냉혹한 반응에 노동자들은 배신감으로 몸을 떨었다.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서면서 노무현이 친구가 아님을 깨달아 가고 있다. 노무현은 노동자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기업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지난 11월 20일 법인세를 2퍼센트나 내리는 개정안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했다.

노동자들의 자세 정리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큰 패배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머지않아 자신감을 회복하고 전열을 가다듬을 것 같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대통령이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 내고, 스스로 재신임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죽을 각오를 함으로써”, “수십 년 간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정치개혁의 결정적 국면이 조성”됐고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 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평가와는 달리 노무현은 여전히 첩첩산중에 있다. 진정한 정치개혁은커녕 국가보안법 유지와 집시법 개악 등을 기도하고 있어서 잃어버린 지지 기반의 회복은커녕 노동자와 농민과 부안 주민의 저항에 직면한 상태다.

노동자 투쟁의 뒤를 이어 이주노동자들의 강제 추방 반대 투쟁과 부안 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으로부터 강경 공격을 당한 바 있던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다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파병 문제는 노무현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그의 최대 약점 가운데 하나이고, 이런 투쟁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다시 고무할 것이다.

이번 투쟁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투쟁의 한 국면이 정리되면 늘 그렇듯이, 너무 투쟁 일변도로 나갔던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한겨레 21〉은 한 노동계 인사의 말을 인용해 “민주노총이 투쟁을 전국적으로 모으는 것은 잘 하지만 갈등을 제도적으로 풀고 조정하는 역할은 못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안 없는 저항이나 전투적 노동운동은 고립만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정위원회, 청와대 내 노동운동 출신 인사들로서 지금도 조직적·인적 연관을 통해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노동운동과 끈을 대고 있는 노무현 사람들이다. 노무현은 11월 19일 노동운동과 관련 있는 일부 여야 정치인들과 오찬을 하며 “노동운동 후배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 달라”고 아예 내놓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말하면 민주노총이 거리 투쟁을 벌이지 말고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와 논의하라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국무 총리 고건은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노사정위에 들어와서 대화를 나[누자]”고 주장했는데, 이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오랫동안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지낸 김금수 노사정 위원장이었다.

다행히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를 거부했지만, 노사정위원회 참가 여부를 비롯해 노무현 정부와의 관계 문제는 내년 1월에 있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의 연결망

전투성을 대안 부재와 직결시키려는 (노동운동 내 우파의)시도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있어 왔다.

물론 ‘박 터지게 투쟁하면 됐지 나머지는 상관 없다’는 식의 생각이 활동가들 사이에 적잖이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생각은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 정치적 약점을 드러내곤 해 왔다.

현장 활동가들은 진정한 전투성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은 우선 노무현 정부에 기대를 걸지 않는 분명한 정치적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쟁의뿐 아니라 정치적 토론과 행동, 특히 반전 운동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연결망을 건설해야 한다.

이런 현장 노동자들의 연결망은 노조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할 때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건설할 수 있는 진정한 전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장 활동가들은 작업장 내에서 반전 운동에 관심을 갖는 젊고 전투적인 노동자들과 함께 현재 전개되는 반전·파병반대 행동 등에 참가하고 그 활력을 다시 작업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듯이 올해 세계적 반전 운동은 노동자 투쟁을 부양하는 신선한 활력이었다. 반전 운동은 한국 사회의 급진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대학교 동아리가 주최한 마르크스주의 강연에 학생들 1백여 명이 몰렸고, 다른 대학교의 생활도서관측도 최근 이용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효과는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다.

미국 제국주의와 그 전쟁을 지지하는 노무현에 대한 반대 투쟁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크게 고무할 것이다.

한편, 지역과 대학의 반자본주의 활동가들도 반전 운동과 다른 여러 투쟁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전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게 만들고, 이주 노동자 방어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 반전 운동에 참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