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규모가 크고, 급진적이었던 유럽 사회 포럼:
5만 명이 체제 변혁 방법을 토론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11월 12∼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사회포럼이 열렸다. 20개 나라에서 온 5만 명이 수천 명이 참가한 대규모 포럼, 250개의 커다란 세미나, 작은 워크숍 등에 몰려들었다. 수천 명이 2시간 30분 동안 운동의 지도적 인물들이 펴는 주장을 경청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다른 유럽”과 “다른 세계”를 위해 어떻게 싸울지를 토론했다.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최근에 유럽 나라들 대부분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이른바 좌파 정당들(영국 노동당, 이탈리아 민주좌파당, 프랑스 복수 좌파, 독일 적록 연정 등)에 대해 운동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는 점이었다.
파리 유럽사회포럼은 젊고 매우 급진적이었다. 지난 5∼6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교육과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거대한 대중 파업 물결이 그 배경이었다.
포럼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보다 토론들에 참가했던 수많은 사람들 자체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한 나라 규모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의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파리 유럽사회포럼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한 나라에 고립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거대한 국제 운동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제국주의와 착취 없는 세계를 이룰 수 있다"
전쟁과 반전 운동과 이라크 점령은 유럽사회포럼의 핵심 주제였다. 영국의 좌파 언론인 케븐 오븐든이 그 현장을 취재했다.
어느 토론회에서든 연사들과 청중석 발언자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제 반전 시위의 날이었던 2·15를 처음 제안한 것이 바로 유럽사회포럼이었음을 청중들에게 거듭 상기시켰다. 첫 날은 3천 명 이상이 전쟁에 관한 첫 토론회(총 8회 가운데)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 북부에 세워진 대형 천막으로 몰려왔다. 같은 시간에 무려 20개의 주요 토론회들이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프랑스 반전 활동가 질베르 아슈카르는 전쟁에 원칙 있게 반대하는 사람들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처럼 단지 조지 부시의 전술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나흘 동안 계속 제기될 쟁점을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반전 운동이 전쟁광들을 저지하려면, 그리고 진정으로 세계적인 운동이 되려면 우리의 권력을 통해 그들의 권력에 도전해야 합니다.”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전국 소집자인 린지 저먼은 중간 중간에 박수 세례를 받으면서 반전 운동이 부시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입혔는지 설명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운동은 시들기는커녕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이라크 점령은 식민 통치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점령이 끝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그들이 당장 철수하거나, 아니면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결국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자국이 이라크에 해방을 가져다 줬다고 주장하는 강대국들의 위선을 꼬집었다.
“폭탄과 열화우라늄탄을 동원한 인도주의적 개입 따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린지 저먼은 이후의 여러 토론회에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 전쟁과 이윤 추구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결론 맺었다. “만일 우리 반전 운동이 사회 변화를 위한 더 넓은 운동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면 제국주의와 착취가 없는 세계는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연사들도 이런 낙관적 분위기를 이어 갔다. 스페인 반전 활동가인 로사 카나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기층(풀뿌리) 조직의 부활입니다. 풀뿌리 운동이야말로 체제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운동입니다. 우리는 점령에 반대하고 자신의 현지에서 체제에 맞서는 새로운 전선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시위에 그치지 말고 대안과 정치 전략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스 반전 활동가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과거의 성공 사례에서 배우”자고 청중에게 호소했다.
“85년 전에 독일 노동자들과 병사들은 혁명으로 독일 정부를 타도함으로써 제1차세계대전을 끝장냈습니다. 혁명의 중심에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전쟁을 낳는지를 분석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의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오히려 불안정과 전쟁 위험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가르가나스가 주장하자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뒤이어 이탈리아 국가로부터 박해당했던 이탈리아의 급진적 지식인 안토니오 네그리가 연단에 섰다. 그는 자본주의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서 “구식”의 제국주의 경쟁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는 발언에서 반전 운동의 성과를 칭찬했고 그 운동을 통해 새로운 좌파가 탄생했음을 암시했다.
폴란드에서 온 필립 일코브스키는 오늘날 동유럽 국가들이 워싱턴의 새로운 바르샤바조약 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말했다. “이처럼 경제적 경쟁이 군사적 경쟁으로 치닫는 과정은 강대국들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폴란드처럼 훨씬 약한 국가들에도 해당합니다. 폴란드 정부와 지배자들은 부시를 편들고 이라크에 파병함으로써 자기들이 동유럽에서 일종의 지역 패권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럼이 진행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이라크 점령이 점점 더 큰 쟁점이 되고 있음이 더욱 명백해졌다.
일부 토론회에서는 유엔이 과연 미국보다 긍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는지, 유엔의 개입이 미국의 개입보다 나은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어떤 연사들은 이라크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조지 갤러웨이 의원은 1천 명 이상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유엔은 이라크의 혼란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해 큰 박수를 받았다.
많은 토론회에서, 그리고 유럽 전역의 반전 운동 세력들이 모인 집회에서, 사람들은 자기 나라 지배자들이 부시를 구출하기 위해 이라크에 파병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전 대륙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내년 3월 20일에 부시의 전쟁에 맞서 국제 행동의 날을 개최하자는 호소에 긴박감을 더해 줬다.
논쟁 - 운동은 너무 급진적이 돼 가고 있는가?
파리에서 열린 토론들의 핵심에는 여러 가지 쟁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운동의 전략적 방향과 노동자 투쟁의 구실에 관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핵심 쟁점은 체제에 맞선 대안(다른 방식의 경제 조직에서부터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 내세울 정치적 대안에 이르기까지)에 관한 것이었다. 운동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한 논쟁은 수많은 토론회에서 제기됐으며 실제의 의견 차이를 드러냈다.
프랑스 활동가 베르나르 까쌍은 금융 투기 반대 운동 단체인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의 지도적 인물이다.
그는 1천 명의 청중 앞에서 우리 운동은 기존 정부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운동이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 했다. 그는 “우리는 사람들을 도망가게 만들지 않고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사상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명백하게 의미하는 바는 운동의 급진주의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바로 그 급진주의 덕분에 이 운동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의 급진적 경제학자이자 반자본주의 사상가인 월든 벨로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얘기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사기업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는 것이 목표인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을 최근에 주저앉힌 반자본주의 운동의 성과를 지적했다. 그는 또한 [점령군에 맞선] 이라크의 저항을 “우리 운동의 일부로서, 우리가 온 몸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에서 온 크리스티네 부흐홀츠는 청중 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 참석자 대부분의 지지를 받았다. “우리는 정치인들과 대화할 궁리는 그만두고 사회적 투쟁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야 합니다. 베를린에서는 방금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독일 적록연정(사민당과 녹색당 연립 정부)의 복지 삭감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시위를 조직한 것은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었지만 그들은 현장 조합원들과 연관맺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우리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체제가 자신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운동을 더 넓히고 지속시켜 2주 전 베를린 시위 참가자들과 같은 사람들과 더 많이 관계 맺는 것입니다.”
나머지 청중석 발언자들도 대부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들과 주장들이 재빠르게 제시됐다. 오스트리아에서 반세기 만에 일어난 최대 규모 파업, 프랑스에서 파업하는 교사들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구호를 채택한 사실, 부시가 이라크를 통제하기는커녕 그 곳에 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 등.
한 가지 주장만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다. 그 주장인즉, 만약 반자본주의 운동이 대다수 노동 대중의 삶을 악화시키는 바로 그 정부들에게 조언하는 존재로 여겨진다면, 반자본주의 운동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토론회에서 사람들은 전쟁과 기업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운동이 얻어 낸 성과에 대해 한결같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했다.
유럽사회포럼과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에 대한 토론에서는 일부 연사들이 운동의 속도를 늦추고 함께 모이는 횟수를 줄이며 전문적인 로비 활동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장 호응을 얻은 연사들은 운동의 성과를 토대로 더욱 분발하자고 주장한 연사들이었다.
그리스의 반자본주의 활동가 마리아 스틸루는 이렇게 말했다. “한 해 동안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돌이켜 보십시오. 2·15는 베트남 전쟁 중에 일어난 어떤 시위보다 컸습니다. 그 파급 효과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덕분에 그리스에서는 당시에 벌어지고 있던 대규모 파업에서 ‘전쟁이 아닌 임금 인상에 돈을 쓰라’는 구호가 채택됐습니다. 지금은 운동의 속도를 늦추거나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로부터 운동을 격리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다 함께 투쟁을 계속하면서 우리가 직면할 도전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논의할 때입니다.”
거대한 일보 전진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2·15 반전 시위와 유럽 노동자 투쟁의 분출을 경험했는데, 유럽사회포럼은 그런 사건들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 유럽사회포럼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렸던 제1차 유럽사회포럼보다 규모가 더 컸다. 정치 토론의 수준도 더 높았다. 공허한 미사여구는 줄어들고 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진지한 숙고는 더 늘었다. 급진화 덕분에, 우리처럼 저항을 심화하고 조직 노동계급의 힘을 결합시키려 하는 세력들은 영향력이 확대됐다. 반면, 이 모든 것을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부활을 위한 일종의 싱크 탱크로 만들고자 하는 세력들은 영향력을 잃었다.
주류 정치와는 다른 정치·경제적 대안에 관한 논의는 운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운동이 신자유주의적 기성 권력 체제에 맞서 권력 투쟁을 벌여야 할지를 놓고 수천 명이 논쟁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캘리니코스 vs 네그리 - 노동계급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가?
1천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토니오 네그리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쟁을 들으려고 250석 짜리 강당으로 몰려왔다. 그러자 주최측인 영국의 ‘저항의 세계화’는 아예 음향 기기를 밖으로 내와, 야외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람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앉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또는 양동이 위에 올라선 채로 두 시간 넘도록 토론을 경청했다. 그것은 유럽사회포럼에서 가장 포괄적인 토론 가운데 하나였다. 논쟁의 핵심은 과연 조직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지배를 분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력이냐는 것이었다.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제공하는 원천이라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노동계급이 그런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주장했다. 그는 최근에 일어난 볼리비아 민중 봉기에서 광원들이 볼리비아 사회의 나머지 피억압 대중을 투쟁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음을 지적했다.
자본주의 생산이 재편된 결과 오늘날 세계에는 10억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중국의 제철 공장에서, 인도의 전화 교환국에서, 인도네시아의 혹사 공장에서, 그리고 선진 공업국의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알렉스는 말했다. 그는 5월과 6월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중 파업들과 여러 다른 나라의 노동자 투쟁들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력임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역동적이고 창발적이며 희망과 에너지로 가득 찬” 반자본주의·반전 운동을 “노동계급의 집단적 권력”과 “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힘
반면, 안토니오 네그리는 생산의 성격이 변했으므로 더는 노동계급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가하는 고통 때문에 “우리는 단지 일할 때만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방식으로도 착취당한다고 말했다. 그의 결론인즉,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각자 고유한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다양한 운동들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면 어떤 세력의 저항이든 지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모두 일치했다. 그러나 두 연사의 차이점은 단지 학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점은 질의 응답과 토론 시간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 사람은 기업주들의 착취가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면 장시간 노동에 맞서는 투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스페인에서 벌어진 시한부 반전 총파업을 언급하면서 “이런 종류의 투쟁을 더욱 강력히 건설할 때 전쟁을 멈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종일관 토론을 관통했던 물음은, 과연 반자본주의 운동이 지난 한 해의 거대한 성과를 이어받아 자본주의의 심장[이윤]을 강타할 수 있는 세력[노동계급]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토니 네그리는 자신들이 공동의 적에 맞선 공동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토론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참석자 전원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