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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 이주노동자 비두와 자말을 면회하고

노 무현 정권이 노동자들을 탄압하며 죽음으로 내몰더니 이제는 이주노동자들까지 죽이고 있다. 최근 이주노동자가 잇따라 목숨을 끊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추방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6일 종묘집회에서 붙잡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는 비두 씨와 자말 씨를 만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비두 씨는 4년이 넘게 한국에서 일해 왔고 평등노조 이주지부에서 투쟁국장으로 활동해 왔는데 지금 강제추방 위협에 직면해 있다.

들어서는 순간 외국인보호소는 마치 구치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비두 씨는 우리를 반갑게 맞았고 면회 시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비두 씨는 “강제출국 대상자는 대부분 4년 이상 체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많이 고생했고 공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숙련공이다.”며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특별히 한국 노동자들인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을 믿는다.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 …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한국 노동자들 전체의 문제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이주노동자 친구들에게도 많은 힘을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내내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지금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 출국을 무릅 쓴 농성 투쟁을 하고 있다. 이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한국 노동자들이 연대 투쟁의 정신으로 다가서야 한다.

주변의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명동성당으로 가자. 그래서 노무현 정권에게 연대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자.

홍준희


독자편지 - 청소년들을 자살로 내모는 수능시험

지 난 11월 5일에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한 학생이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이 끝난 후 고사장을 빠져나와 1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OMR카드 마킹이 대학을 결정하고 대학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교육제도는 꽃다운 청소년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학생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12년 동안 쌓아온 학업을 반나절 동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정말 합당하지 못하다. 오직 ‘점수’라는 데이터만으로 비인간적으로 학생들을 각 대학에 배치하는 교육제도는 생명존중의식이 없는 의사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치가와, 학생들의 인권을 논하지 않는 교사를 낳았다.

11월 5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수능체제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학생들 스스로 교육개혁을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온 것이다.

학생들을 자살로 내모는 교육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꿈같은 대학생활을 마취제로 사용하여 청소년들에게 이 억압체제를 정당화시켜서 안 된다.

모든 청소년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정말 배워야 할 것들과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윤채원


독자편지

나는 〈다함께〉가 지난 16호부터 19호까지 테러와의 전쟁의 총칼이 곧 노동자를 향할 것이라는 것을 적절하게 지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다함께〉 신문을 통해서 대안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함께〉의 필체는 자본의 다음 음모를 노출시키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16호에서부터 파병 반대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이라크 민중의 저항과 국제적 평화주의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았으며, 특히 노동자 탄압에의 저항과 그에 맞서는 투쟁들의 모습은 파병 반대와는 별개의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파병 반대 집회나 시위가 있었던 매주 노동자들의 참가의 모습은 노무현 정권의 위기와 파병을 막아야하는 이유의 뒤로 가려 노동자들이 이 전쟁을 통해 바로 총알과 폭탄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직접적으로 노동자 행동을 이끌 수 있는 변화가능한 투쟁의 다음 대안을 하나씩 하나씩 제안해야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18호까지 노무현의 재신임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노무현의 재신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바람직했을까? 그리고 가장 뒷면의 김주익씨 죽음에 노무현도 책임 있다고 말한 것은?

노무현의 재신임론이 정확히 신문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를 보기에는 솔직히 나로서는 어렵다. 나는 스스로 "한나라당도 불신임 대상이다. 노무현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라는 구호들은 전술적 구호라고 믿고 싶다. 이 말 뒤에 있을 수 있는 진의 여부와 상관 없이, 당면한 시기의 투쟁에서 요구되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싶다.

그러나, 전쟁과 노동탄압이 연결되어져서 동일한 자본의 프로그램으로서 노동자를 죽이는 전쟁이 될 것이라는 직접적 구호는 없었다. 더 많은 비중을 두고 남한의 전쟁참가 음모와 그에 따른 노동탄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를 통해서 자본일반에 대한 저항으로 이끌 수 있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평화주의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반전운동을 통해서 평화주의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노동자들을 다시 반전운동을 넘어선 반자본주의 운동으로까지 나서도록 하는 변증법적 발전과정에서의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나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투쟁을 파병과 연대하는 투쟁을 하면서, 정권의 파병 의도는 동시에 그 총부리를 노동자들에게 향하려고 하는 것이다라는 구호를 사용해 왔다.

파병 반대를 국제 평화주의로 보이도록 해서도 안되며, 이라크 민중만의 투쟁으로 보이도록 해서도 안된다. 이것은 바로 남한의 노동자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광주의 한 사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