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를 넘어, 이제는 ‘학교혁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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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주변 이 사람 저 사람이 묻는다. ‘도대체, 혁신학교가 뭐야?’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교사가 교육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교육주체들이 모두 함께 수업 혁신, 교육 혁신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혁신학교라고 설명하면, 바로 환한 웃음이 이어진다. ‘그럼 좋은 거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데, 왜 우리학교는 안 해주고, 혁신학교만 그렇게 해 줘? 나도 진보교육감 찍었는데?’
혁신학교는 교육주체의 자발성과 협력을 통해 ‘아래로부터’ 교육개혁을 만들어 가는 학교다. 지난 20여년 동안 전교조는 참교육실천(참실)사업으로 공교육 안에서 학교 민주화와 수업혁신 자료를 만들고, 보급하고, 또 실천해 왔다.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제도와 지시에 맞서, 적어도 내 교실, 내 수업만은 지키려 노력했다. 전국의 많은 대안학교에서도 다양한 실험과 실천이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경기도의 ‘혁신학교’는 개인을 넘어서서 공교육 혁신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2010년,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적 노력으로 전국 6개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 올해 안으로 강원, 경기, 광주, 서울, 전남, 전북 지역에 1백50여 개 혁신학교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현재의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을 탄생시킨 전국의 민주시민, 즉 우리 모두의 땀의 결실이다.
그런데,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서울에는 1천여 개 학교가 있고, 7월 현재 23개 혁신학교가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진보교육감이 당선돼도 학교 현장은 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암담한 교육현실 속에서, 교육시장화 정책 속에서, 그동안 이루어진 다양한 실험학교들은 우리 모두에게 큰 희망이었다. 그러나, 모델하우스를 바라보는 것은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까지다. 아파트가 완공되면 사람들은 구경이 아니라 내가 직접 들어가 살고 싶다. 모델하우스 보수가 아니라, 내 집에 대한 AS가 이루어지길 원한다. 또,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
서울에서 진보교육감 당선을 꿈꾸던 사람들은 단지 몇 개의 혁신학교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서울교육의 방향이, 서울의 교육구조와 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길 원했다. 늘 ‘아래’로부터 하던 교육개혁을, 이제는 ‘위’로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개개인이 흩어져 꿈꾸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투쟁을 통해 제도적으로 획득하고자 했다.
그런데, 현실에선 자꾸 의문이 생긴다. 왜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는데, 1천 개 학교가 아니라, 23개 학교에서만 교육혁신 실험을 하지? 왜 내가 우리 학교를 떠나 혁신학교로 전근을 가야만 수업 혁신을 보장받는 거지? 왜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는데도, 수업이 바뀌어야 학교가 바뀌고, 학교를 바꿔서 사회가 바뀌길 기다려야 하는 거지? 왜 우리는 올해도 일제고사를 봐야만 하지? 왜 평가 혁신을 한다는 혁신학교까지도 일제고사를 받아들이는 거지?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각자의 역할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진보교육감은 ‘제도 개선’을 통해 교육개혁을 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교육감은 혁신학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도 내 모든 학교에 대한 근본적인 ‘학교혁신’을 보장해야 한다. 즉, 진보교육감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혁신학교’가 아니라, ‘혁신교육청’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진보교육감은 ‘교육의 봄’을 만들어야 한다. 어서 싹 틔우라고 안달하지 말고, 먼저 나온 싹들 한곳에 옮겨 심지 말고,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해하지 말고, 모든 학교에서 싹이 돋아 나올 수 있게 ‘봄’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임무다.
모든 학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 교육 혁신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일, 학교에서 부당한 업무와 지시를 없애는 일. 공문을 통해 교육과정 재편성과 평가권이 교사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지켜주는 일. 교실을 혁신하려는 모든 교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일. 마지막으로, 교사를 진심으로 믿고 기다리는 일까지.
그럼, 학교는? 걱정 말라. 학교의 변화는 교사, 학생, 학부모와 시민의 몫이다. 교육감이 ‘혁신교육청’을 만든다면, 교사와 학부모는 용기를 갖고 ‘혁신학교’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교육개혁은 이론가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책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 현장을 신뢰할 때, 교육개혁은 가능하다. 교육주체의 자발적 실천이 있어야만, 교육개혁은 가능하다.
‘모’를 정성껏 키우면서, 우리는 동시에 ‘논’을 준비해야 한다. ‘혁신학교’의 성과를 보급하고 뿌리를 내릴 곳이 없다면, ‘혁신학교’ 안에서의 노력들은 결국 개인의 성과, 한 학교의 성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교육 혁신을 꿈꾸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고민과 선택을 해야 한다. 교육개혁에서 ‘학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교육 공공성과 학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일제고사로 인한 학생서열화, 학교서열화는 비판하면서, 왜 피사(PISA) 결과에 따른 국가 서열화에는 열광하는가? 미래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학력’은 무엇인가?
“행복하다.”
본인의 희망으로 혁신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한 교사의 말이다. 불필요한 잡무, 부당한 지시와 간섭 또는 신경전 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오로지 학생 교육에만 쏟아 부을 수 있어, 하루하루 삶이 행복하단다.
문득, 이철수 화백의 ‘좋은 날’이라는 글이 떠오른다. ‘꿈 없는 잠처럼, 잡념 없는 노동. 그 안에서 언제나 좋은 날’. 이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노동환경이다.
노동자로서, 혁신학교가 혁신학교를 넘어 학교혁신으로 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영주 교사는 맑시즘 2011에서 ‘다른 학교는 가능한가? - 혁신학교 실험과 학교 혁신 운동’ 이라는 주제로 연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