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진보》 출판기념회를 다녀와서:
과거를 묻지 말라는 유시민과 우향우하는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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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당과 통합하려는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시도에 대한 진보진영 내부의 반발로 여러 차례 연기된 《미래의 진보》 출판기념회가 7월 14일 결국 열렸다.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민중의 소리〉 측과 이정희, 유시민 대표는 이 책의 출판과 두 당의 통합 시도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를 여러모로 의식한 듯했다.
주최 측은 비판적인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6시로 공지된 기자간담회를 현장에서 갑자기 취소해 버렸고, 이정희 대표는 “1시간 반 전까지 와야 할까 고민했다”고 했다. 유시민 대표도 “오기 전에 말조심하라고 경고를 많이 받았다. 이백만 대변인이 일일이 사전 검열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시민 대표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언급하면서 “기본권에 속하는 노동권까지 깡그리 무시당하는 일상적 위헌상태”, “국민이 울고 죽고 얻어 맞아도 못 본 척하거나 방조하는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가 생각했다” 하고 말하며 진보운동과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탄압받으며 싸워 온 노동자들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과연 유시민 대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하중근, 이용석, 홍덕표, 전용철, 허세욱, 김태환, 김주익 … 아직도 민주노총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가슴에는 노무현 정부 하에서 죽어간 열사들의 이름이 사무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유 대표는 《미래의 진보》에서 이런 전력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한 바 없다. 그저 “각자 돌아보자”며 책임소재를 흐렸을 뿐이다. 이날도 “대한민국의 기득권 복합체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도전하셨다”며 두 정부가 기득권 세력과 타협했던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
유시민 대표는 “포악한 사업주 앞에 다섯 개의 노동조합이 분열돼서 대립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정치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섯 개 야당 중 계급기반과 강령, 실천이 완전히 다른 민주당과 참여당은 노동조합쪽이 아니라, 사용자 출신이며 지금도 사용자쪽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정희 대표는 “[국민참여당이] 진보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어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시종일관 참여당을 감싸 주었다.
회피
기념회가 열린 프레스센터에는 통합 지지자들의 덕담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진정 해야 할 얘기는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발언을 신청했다.
“지금 ‘유시민 대표가 참여정부 시절 과오에 대해 반성했나, 반성했다고 진보통합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가 진보진영 최대의 쟁점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 책에서 나는 어떠한 진지한 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령, 한미FTA나 파병에 대해서 그것이 잘못이었다거나 앞으로도 추진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없다. 사학법, 국가보안법, 법인세 인하 등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에 굴복한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성찰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정희 대표는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통합 대상의 과거, 계급기반, 사상도 묻지 않는 ‘묻지마 통합’이 과연 진보 개혁을 이룰 수 있겠는가. 진보통합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진보 대안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고, 이것은 단지 반우파연합으로는 안 되고 노동자·서민의 독립적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우리는 좌측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정부도 노동자 민중에게 해악적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이정희, 유시민 대표는 이런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회피하고, 동문서답했다.
유시민 대표는 뭐 하나 분명히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시종일관 과거를 묻지 말라고만 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논리적으로 끝까지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제한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가진 자존심, 자부심, 이론까지도 접어 둘 수 있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결국 자신들은 바뀔 수 없으니 진보진영이 태도를 바꾸라고 충고하는 셈이다.
이정희 대표는 한 술 더 떠 “[참여정부 시절 문제는] 진보진영 내부의 성찰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성찰의 핵심은 “실제로 현실을 바꾸려면 어떻게 설득했어야 할까, 어떻게 힘을 모았어야 할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이 노무현 정부를 설득하거나 힘을 합치지 않고 그에 맞서 투쟁한 것이 문제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와 과거의 실천을 상당 부분 부정하는 말이다.
이정희 대표는 진보신당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참여당을 비판할 거면 진보통합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진보신당도 비판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가 연기되고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이정희 대표의 무원칙한 계급타협 탓이 크다. 게다가 진보적 노동자당과 자유주의적 친자본가당의 계급적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두 세력이 무원칙한 계급타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는 매우 위험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