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낙태는 여성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한다. 2015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에서 연간 약 5천6백만 건의 낙태가 이뤄졌다고 추정했다. 이것은 15~44세 여성 1천 명당 35건으로, 임신 4건 중 한 건이 낙태로 끝난다.
임신 중절은 단지 현대의 산물이 아니다.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도 임신 중절을 시도한 증거가 있을 정도로 낙태의 역사는 오래됐다.
그러나 효과적 피임과 낙태술이 대거 보급된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변화다. 이것은 여성의 삶에서 획기적 변화다.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기회를 모든 여성들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한다. 이 때문에 세계에서 매년 2천 2백만 명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를 시행하고, 그 결과 연간 약 4만 7천 명이 사망하고 5백만 명이 장애를 입는다(WHO, 2012). 이 중 대부분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다.
한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모순되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 매년 수십만 명이 낙태하면서도 그 사실을 숨겨야 했다. 법이 낙태를 대부분 허용하지 않아 낙태가 금기시돼 왔다.
2009년 말~2010년 초에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하고 이명박 정부가 낙태 단속을 강화하면서 병원의 낙태 시술이 급속히 위축된 적 있다. 2016년에는 보건복지부가 낙태 시술 의사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다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이 소책자는 2010년 초 이명박 정부와 낙태금지론자들의 낙태 공격에 대응해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옹호하며 한국에서도 낙태 합법화 운동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 나왔다.
그 뒤 상황 변화를 반영해 몇 차례 개정 증보했다. 이번에는 3판에서 ‘폴란드 낙태권운동의 경험에서 배우기’를 개정증보했고, 2018년 국민투표에서 대승한 아일랜드 낙태권 운동을 부록으로 추가했다.
낙태권은 여성의 건강과 삶을 지키고 사회적 평등을 성취하는 데 필수적인 권리다. 많은 여성들이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며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오늘날, 낙태 합법화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 소책자는 여성에게 낙태권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며 낙태반대운동 진영이 유포하는 잘못된 주장을 반박한다. 여성의 평등과 해방을 지지하는 여성과 남성이 국가와 낙태반대운동 진영에 맞서 굳건하게 운동을 건설하는 데 이 소책자가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정진희
〈노동자 연대〉 여성 담당 기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 콜론타이·체트킨·레닌·트로츠키 저작선》 (책갈피) 엮은이, 《여성해방과 혁명》(책갈피) 공역자.
최미진
〈노동자 연대〉 여성 담당 기자.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책갈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