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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미싱타는 여자들〉:
알려지지 않은 여성 노동 투사들의 이야기

영화는 탁 트인 초원에서 알록달록한 색의 옷을 입은 중년 여성 셋이 미싱을 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세 여성은 천에 서로의 이름을 미싱으로 박아 주며 정답게 대화한다. 40년 전 어릴 때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일했으면 너무 좋았겠다고 이야기하며 웃는다.

10대 때부터 평화시장 미싱사로 일한 여성 노동자가 중년이 돼 과거의 삶과 투쟁을 회고한다 ⓒ출처 영화사 진진

이분들은 10대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미싱사로 일했다. 좁고 먼지로 가득한 공장에서 하루 14시간 이상,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하며 일했고 본인의 이름 대신 ‘7번 시다’ 혹은 ‘1번 오야 미싱사’라고 불리곤 했다.

같은 공간에서 일했던 전태일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분들의 이야기는 흔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던 여공들’이라는 말로 압축됐다. 이분들은 스스로의 존엄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열심히 싸웠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이 영화에서 터놓는다. 그 시절 찬란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 생생한 목소리와 사진, 글과 음악 등으로 펼쳐진다.

<미싱타는 여자들>(다큐멘터리, 감독 이혁래·김정영)

이분들은 여성으로 또 노동자로 겪었던 차별과 모멸감을 말한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한 일, 열세 살 어린 나이부터 뼈 빠지게 일한 것도 서러운데 교복 입은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른과 똑같은 버스 요금을 냈던 일, 심지어 경찰서 유치장에서도 같이 갇혀 있던 대학생들은 사식도 먹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갔지만 자신들은 열흘 넘게 속옷조차 갈아입지 못하고 경찰에게 맞고 욕을 들었던 일 등등. 이런 얘기를 들으면 함께 울화가 치민다.

노동교실

이 세 분은 1977년 9월 9일에 ‘노동교실’을 지키려고 점거 농성을 했다가 징역살이를 했다. 경찰은 자꾸만 “누가 시켜서 한 거냐”고 추궁했지만 이분들은 본인이 원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투쟁에 나섰다고 말한다.

이숙희 님은 사장들이 전태일에 대해서 “일하기 싫어서 죽은 깡패”라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가, 모란공원에 가면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전태일 1주기 추모식에 갔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됐다.

임미경 님은 명절을 앞두고 보름 동안 공장에 갇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탈출했고 그 후 노동조합과 근로기준법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쓴 글을 낭독한다. “잠 좀 잔 것이 그다지도 잘못한 일일까. 우리 노동자들은 살려고 일하지 우리 죽고 사장이 사는 식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은 괴로움, 나중은 기쁨.”

신순애 님은 학비를 낼 돈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둬야 했는데, 노동조합이 만든 ‘중등교육 무료’라는 리플릿을 보고 ‘노동교실’에 찾아갔다. 배움을 통해 자존감을 얻었다. 국어 선생님이 한자를 알려 주며 통장 만들기를 숙제로 내 준 덕분에 더는 무거운 저금통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다. 밥을 굶어서 괴로운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밥보다 노동교실이 좋았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 밥해 먹는 게 좋았다.

노동교실은 노동자의 배움터이자 안식처였고, 동지들은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어머니였다.

박정희 정권이 이소선 여사를 구속하고 노동교실을 폐쇄하자, 노동자들은 가족 같은 이소선 여사를 지키고 내 방 같은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건물주가 9월 10일까지 나가라고 해서 노동자들은 9월 9일에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을 진압한 경찰은 그 날이 북한 정권 수립일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빨갱이’ 취급했다. 이숙희 님은 “우리더러 9월 10일까지 나가라고 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9월 9일에 [농성에] 들어갔겠냐. 우리는 그런 날인지 몰랐다. 그런 얘기를 우리에게 하는 너희가 더 수상한 거 아니냐” 하고 받아쳤다.

싸울 수 있다는 용기

사춘기였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자아를 찾는 과정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고 싸우던 시간이었다. 나의 부모님과 동년배인 이분들은 소중했지만 힘들고 상처 입었던 이때의 이야기를 그동안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못하고 감춰 두었다.

이들이 겪었던 고단함과 어려움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때에 비해 지금 더 나아진 측면이 있지만 차별과 착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 보람을 느꼈던 이들의 모습이 찬란하다. 그렇게 빛나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는 당시 함께 일한 십여 명이 젊을 때 자신의 사진을 들고 ‘흔들리지 않게’라는 노래를 부른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영화 중간에는 당시 함께 투쟁하다가 부부가 된 분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노동조합원 대부분은 여성이었지만 남성들도 함께 싸웠다.

차별과 착취에 맞서 함께 단결해 싸워야 하고, 싸울 수 있다는 용기를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 이 글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눈물겹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영화를 통해 직접 만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