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로 자본주의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됐다. 특히 위기의 진앙지가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심장인 미국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 과정을 돌아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사람들에게는 도박하지 말라고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더 큰 도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려고 돈을 빌리고, 그걸 상품으로 포장해서 판매하고, 또 그걸 보험에 들고, 또다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도박 탓에 아무런 잘못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사고 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죄 없는 사람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할까?
최근 경제 위기가 미친 파급력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궁금증이 커졌다. 마르크스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반갑게도, 전 세계에서 《자본론》의 판매가 늘었고 한국에서도 《자본론》을 쉽게 설명한 해설서들이 출판돼 관심을 끌었다.
사실 《자본론》은 그리 쉬운 책은 아니다. 분석 대상인 자본주의 자체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주장을 알고 싶지만 곧바로 《자본론》에 도전하기는 두려운 독자들에게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를 추천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을 쉽고 간명하게 설명한다. 이것이 첫째 장점이다.
그런데 단지 쉽기만 하다면 다른 해설서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다른 해설서들과 구분되는 장점이 있다.
《자본론》을 쉽게 풀어 쓴 해설서들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한 핵심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곤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조셉 추나라는 마르크스의 눈을 빌어 자본주의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그 안에 새로운 사회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동안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본주의 안에 새로운 사회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우리의 노력으로 그 씨앗을 틔울 수 있다는 점을 놓치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은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하는 책들이 때때로 빠지는 또 다른 함정은, ‘마르크스는 이랬어, 마르크스는 저랬어’ 하면서 현실을 이론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다 보면 그 설명이 지금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져, ‘지금 상황을 보고 쓴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기본 동역학을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아무리 천재였더라도 현대 자본주의의 구체적 모습을 모두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르크스 사후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현실, 특히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아무 쓸모없는 박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3부에서 조셉 추나라는 세계대전은 왜 일어나게 됐는지, 장기 호황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왜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됐는지 등의 질문에 답하며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는 이론에 비춰 현실을 분석하고 다시 현실에 맞게 이론을 발전시키는 살아 숨쉬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우리에게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