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는 태평양, 인도양,대서양과 지중해 등 지구상 거의 모든 해양에서 작전에 참가했다. 특히 1986년에는 리비아 공습작전에 참가했고, 1990-91년에는 걸프전쟁에 참가하여 이라크 공격에 기여했다. 이후 이라크 남부의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는 작전에 참가하다가 2003년에는 '이라크 자유작전'으로 알려진 이라크 전쟁에서 미 해군중앙사령부 참모차장으로 해군의 작전계획과 실행을 직접적으로 책임졌다. 즉 그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아버지 부시 행정부, 아들 부시 행정부까지 이어진 미국의 중동 개입전쟁을 초지일관하게 앞장서서 수행한 인물인 것이다.”
“그의 '애국심'과 출세욕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던 2006년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해 3월부터 관타나모 합동특무부대 사령관으로 근무하는 도중 부대 내에서 발행한 '사고'의 실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고를 대하는 해리스 2세의 태도는 그가 갖고 있는 '미국의 시각'이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9-11사태 직후인 2002년 1월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설치된 이 부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에서 잡힌 포로들을 관리하고 포로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이 전쟁포로가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해리스 2세가 사령관으로 부임한 후인 6월 9일 관타나모 기지 캠프1에 수용되어 있던 포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
전문 보기: 그날 밤 관타나모에서 포로 3명은 왜 죽었나? [기고] '짜파구리' 뒤에 숨는 해리스 대사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