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은 득인가, 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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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 http://kdlp.org/index.php?mid=debate&document_srl=2990998 에도 올렸다.
최근 국민참여당과의 묻지마 통합을 지지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진보정치〉 592호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특별 기고(‘진보대통합, 이렇게 가면 안 된다’)를 했다. 김민웅 교수는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이하 5·31 합의문)에 동의하고, 또 합의문에 동의하는 의결과정을 완료했으니 별도의 심사기능은 필요치 않으며, 어느 누구도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막을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5·31 합의문에 동의했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합의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5·31 합의문에는 “자유주의 세력과 구별되는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적 발전과 승리”가 명시돼 있다. 이미 진보대통합에 참가할 대상의 범위를 정해놓은 것이다. 또, 최소 수준의 진보의 기준으로 20대 주요 정책 과제를 정했다.
국민참여당은 5·31 합의문에 동의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유주의 세력이 아니게 된 것인가? 물론 아니다.
국민참여당은 5·31 합의문에 동의했지만 부속 합의문의 20대 주요 정책 과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여전히 지금도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은 해외 파병에 대해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고, 한미FTA는 농민 피해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반성’하는 것이지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한반도 외국군대 철수, 즉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하지 않는다.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이 교사와 공무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을 지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지지할 수 있을까?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최근의 한국 현대사에 즉, 이미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경험에 나와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자. 2010년 1월에 창당한 국민참여당의 강령이나 정책을 살펴보면 과연 국민참여당의 노선이 5·31 합의문에 부합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다.
국민참여당은 창당선언문에서 “민주정부 10년의 발자취를 이어”간다고 밝혔고,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민참여당이라는 당명은 참여민주주의라는 지향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의 정부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도 보인다.
국민참여당의 가치와 정책
흥미롭게도 국민참여당 정책위원회는 ‘국민참여당 : 민주노동당, 가치·강령·기본정책 비교’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는 진보대통합 합의문이 채택된 직후인 6월 2일에 국민참여당 시도당 정책담당자회의에서 검토됐다.
이 문서를 보면 국민참여당의 계급적 기반과 이로부터 비롯한 정책적,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한미FTA에 대한 태도를 보자.
국민참여당은 민주노동당의 한미 FTA 반대를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으로 비판하고 “한미 FTA를 …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선진통상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FTA 로드맵 아래에서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전략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관련 정책에서 민주노동당은 “기업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미비”하다고 비판하면서 국민참여당은 “친기업적이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에 부당하게 개입하지 않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또, “민주노동당의 노동기본권 확대, 노동법 개정 주장”이 “소수 조직 노동계(=민주노총)만의 요구에 안주하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고 “공무원노조의 단체행동권, 노조전임자제도 과거 환원 보장 요구, 노동조직의 불법행위 옹호 등”도 “국민정서와 상충하는 요구”라고 일축한다.
그리고는 결국 ‘친노동 반기업 정책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민주노동당이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감정적 폄훼”를 한다고 불평한다.
이쯤 되면, 국민참여당의 계급적 본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국민참여당은 스스로 친노동이 아니라고, 친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친기업이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무상 의료 관련 정책을 살펴보자.
“의료비 관련 정책은 일단 시행되면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며, 결국 엄청난 재정적자의 원천이 될 수 있음(유럽 국가들의 예). ‘건강보험 하나로’는 사전에 이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하여 보다 정치하게 개선될 필요가 있[음]”.
재정적자를 고려해 무리하게 무상의료를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 민주노동당의 무상 의료 정책과 날카롭게 충돌했던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이렇게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가치와 강령과 기본정책은 대립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유시민 개인의 정치 철학이나 국민참여당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당의 계급적 기반 차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산물로 탄생한 노동자 정당인데 반해, 국민참여당은 노동운동과 연관도 없고, 노동조합으로부터 재정적·조직적 지원도 받지 않으며 노동운동의 주요 가치와 요구에도 반대하는 친자본가 정당이다. 물론, 국민참여당의 평당원과 지지자 중에는 2008년 촛불 항쟁으로 새롭게 급진화된 청년들도 있고, 이들이 자신들을 넓은 의미로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도적인 당원들은 지난 정권의 관료들이나 중간계급 배경이 많다. 그래서 유시민도 “대도시 중산층 당원이 다수이다보니 노동 현장과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국민참여당의 지도부는 과거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냈거나 변호사, 의사 등 중간 계급 배경이 많다. 국민참여당의 국가정책자문위원회 면면을 보면, 대부분 전직 고위 관료나 공공기관의 고위직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유시민이 자신의 당원들에게 5·31합의문을 일단 수용하되, 들어가서 내용을 바꾸자고 설득한 것도 국민참여당의 계급적 기반 때문에 그 당의 지도부와 상당수 당원들이 5·31합의문에 담겨 있는 진보적 내용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통합은 당의 우경화를 낳을 것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계급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참여당의 가치와 정책은 민주노동당의 것과 다르다. 통합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 국민참여당이 받아들일만한 수준으로 당의 강령과 요구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지난 당대회에서 반자본주의적 내용과 노동 계급을 강조하는 내용을 삭제하는 당 강령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그런 압력에 반응했다.
유시민은 얼마 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진보 정치 캠프에서 학생 당원들을 대상으로 “진보 진영 안에서도 더더욱 끊임없는 타협과 절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이것이 민주노동당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참여당은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계급 투쟁에 적대적이다. “노동조직의 불법행위”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보라.
그러나, 우파에 맞설 수 있는 힘도, 진보적 요구를 쟁취할 힘도 노동계급의 집단적 투쟁에 달려 있다. 노동 계급이 사회를 뒤흔들 힘이 있고,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힘이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줘야 동요하는 중간 계급의 구성원들도, 국민참여당 지지자들의 상당수도 노동 계급과 진보 정치 쪽으로 견인할 수 있고, 대중의 급진화로 인해 진보 정당이 선거에서 더 많은 득표도 얻을 수 있다.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노동자 투쟁이 활성화돼야 탄력이 생길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주장인가?
우리는 전례없이 분출되는 복지 요구에서 대중의 좌클릭을 읽을 수 있고, 올해 초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지지와 희망버스 물결에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대중의 높은 지지와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한다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할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효과로 진보 진영의 기반과 영향력도 강화될 수 있고 진보대통합도 힘있게 건설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노동 운동을 분열과 혼란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또, 통합의 결과로 파업이나 공장 점거와 같은 사회 변화를 위한 노동계급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계급 연합을 위해 가급적 자제해야 하는 것처럼 취급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기반이자 사회 변화의 동력인 노동 계급의 투쟁 의지와 정치 의식을 갉아먹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진보 정치에도 노동 계급에게도 득이 아니라 독과 같은 것이다. 당 지도부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