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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독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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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편지 -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막을 수 없다

지난 20호 〈다함께〉 신문에서 장주영 변호사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테러방지법안에는 인권 침해와 직권 남용을 자행해 온 전력 때문에 발언권을 잃어가던 국정원이 권력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의 진정한 문제는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테러방지법은 “국가보안법의 쌍둥이법”이다. 법안에 규정된 ‘테러’와 ‘테러단체’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테러방지법이 제정된다면 “빨갱이”로 분류할 수 없는 사람도 탄압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을 보완하게 될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등지로 번져나간 ‘반테러법의 세계화’와 맥을 같이 한다.

부시가 9·11 이후 한 달 만에 밀어붙여 만든 ‘애국자법’은 테러와 전혀 상관없는 범죄 수사에 남용되고 있다. 미국의 회계감사국은 법무부가 9·11 테러 이후 ‘국제 테러리즘’으로 기소한 사례의 75퍼센트가 잘못 분류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범죄 기록도 없고 체포된 된 적도 없는 두 명의 미국 반전운동가가 공항에서 영문도 모른 채 억류됐다가 풀려난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공항에서만 특별 검색을 당한 사람이 3백 명이 넘고 공항 직원은 88쪽에 이르는 명단을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무현은 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을 고수하면서 예상되는 ‘테러’를 테러방지법으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으로는 테러를 막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의 대부분은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일방주의 정책과 침략 전쟁에서 비롯하고 있다. 테러를 막을 수 있는 진정한 방안은 세계 반전운동이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진 미국을 손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광열(전 인권실천시민연대 간사)


독자 편지 - 이주 노동자의 강요된 자살

지난 달 25일 한국 정부의 강제 추방에 몰린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부르혼(50) 씨가 인천의 한 목재 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벌써 6번째 겪는 이주 노동자의 자살이다.

부르혼 씨는 지난 7월, 6백여만 원을 들여 한국에 왔으나 이번 등록 대상에서 제외돼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 동안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된 부르혼 씨는 삼엄한 단속을 피해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하늘에 별따기였다.

꿈을 담아 왔던 짐가방을 이리저리 옮기며 아는 사람 집을 전전했지만 “불법 친구를 방에 들이지 말라”는 친구 ‘사장님’들의 엄포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부르혼 씨는 자살 당일에도 조카가 다니는 목재공장을 찾아갔지만 “사장님이 불법 사람 공장 기숙사에도 못 들어오게 한다”는 조카의 말을 들었다.

그는 동료에게 “내일 집에 간다”는 말을 남긴 뒤 어느 낯선 공장 화장실에서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가슴에 품은 채 죽음을 택했다.

12월 5일 부르혼 씨의 영결식에서 외국인노동자공대위 최의팔 공동대표는 “고인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싸워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독자 편지 - 박노자 칼럼을 읽고

박노자 씨는 ‘서구 반전 운동의 교훈’(〈한겨레〉 12월 8일치)에서 “서방에서 제2의 베트남전 반대 운동은 재현되지 못할 것”이므로, 한국 반전 운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서의 제국주의의 진정한 희생자들과 경험을 나누고 연대를 맺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월 15일 국제 반전 시위의 규모는 베트남전 당시보다 훨씬 컸다. 박노자 씨의 주장대로, 집회만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집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나름의 희생을 요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서구 반전 운동은 바로 이러한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유럽 주요 노조들의 반전 파업은 지배자들을 압박했다.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반전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베트남전 당시에도 미국 내의 거대한 반전 운동이 미국 지배자들의 패배를 불러왔다. 전쟁광들이 자국에서부터 고립된다면 그들을 국제적으로 패퇴시키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서구 반전 운동은 다른 나라 반전 운동도 고무하고 있다. 11월 20일 영국 런던에 모인 30만 시위대가 부시 동상을 무너뜨리는 사진은 다음날 아랍 주요 일간지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그 다음날 이란과 이라크·레바논·나이지리아 등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들이 벌어졌다.

서구에 “체제에 안주”하려는 좌파가 일부 있다는 지적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고 있고, 이 운동에서 혁명적 좌파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해 프랑스 대선에서 극좌파들이 거둔 성공이 그 예다.

우리는 서구 반전 운동의 광범함과 급진성에서 배워야 한다. “제국주의의 진정한 희생자들”과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단결한다면 우리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한상원


독자 편지 - 파병은 중동 교민들을 위협한다

나는 13년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살고 있다. 1990년 8월에 사우디 아라비아에 와 2차 걸프전도 이 곳에서 겪었다.

올해 4월 한국 정부가 의무병과 공병을 파병했을 때 나는 베트남 전쟁 때처럼 전투병 파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1년 걸프전 때처럼 교민들은 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민들의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우디에 있는 교민들은 파병 때문에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이미 사우디에서 수천 명이 이라크에 지하드를 위해 갔고, 사우디에는 많은 반왕정·반정부 세력과 반미 세력이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파병한다면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교민들에 대한 공격이 벌어질 것이다.

내가 일하는 식당에 로켓포가 날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지 대사관과 한국 정부는 교민들을 위한 안전 대책을 전혀 세우고 있지 않다.

나는 한국 정부의 파병에 반대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교민의 의견을 조직해 한국 일간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의 반전 단체들과도 함께하고 싶다.

손순호(사우디 아라비아 교민)


독자 편지

지난 신문의 독자편지에서 ‘광주의 한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동지는 “〈다함께〉가 지난 16호부터 19호까지 테러와의 전쟁의 총칼이 곧 노동자를 향할 것이라는 것을 적절하게 지적하지 않았”고 “평화주의” 경향을 보였으며 “노무현 재신임론이 정확히 신문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대신, 이 동지는 “노동자들을 다시 반전 운동을 넘어선 반자본주의 운동으로까지 나서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는 이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이 동지의 〈다함께〉 비판은 부정확하고 부적절하다.

〈다함께〉 19호의 1면과 18호의 1면은 파병(전쟁) 반대 투쟁과 노무현 반대 투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연결돼야 하며, 이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볼리비아처럼 거대하고 단호한 노동자들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19호 6면에선 “전쟁광들의 노력이 좌절될수록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력을 얻기가 힘들게 될 수 있다”고 썼다.

“평화주의”라고? 나는 이 동지가, 반전운동이 반자본주의 운동과 연결돼야 함을 역설하며 ‘개량이냐 혁명이냐’라는 문제를 제기한 19호의 케븐 오븐든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이 동지는 노무현 재신임론을 “당면한 시기의 투쟁에서 요구되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싶다”고 썼다. 하지만 18호 기사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는 “재신임 국민투표 찬성이냐 반대냐는 문제 제기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만일 국민투표 일정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반대표 선동을 투쟁과 연결시키면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나야말로, 동지가 〈다함께〉를 비판하는 진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혹시, 이 동지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 파괴와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에 대한 이론적 설명과 선전이 풍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혹은 그것을 지금 당장의 실천적 구호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이 동지가 한 가지 역사적 사례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바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조차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빵·토지·평화’라는 슬로건이 필요했다.

조형석


독자 편지

얼마전 나는 파병 반대 거리 홍보 활동에 참가했다. 홍보를 시작하자마자 건장한 남자 둘이 우리 가판대로 다가와 “니들이 뭔데 파병을 반대하냐? 나는 월남을 갔다왔다.”고 큰소리치며 위협했다.

우리들은 활동을 방해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정중히 말했으나 그들은 “너희가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시끄럽게 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순식간에 홍보 장소는 아수라장이 됐고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우왕좌왕했다. 놀라운 것은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당신들은 뭔데 파병을 지지하냐?”며 항의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보란듯이 가판대로 와서 서명을 해 주었다.

그래도 그들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나와 함께 거리 홍보에 참여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발길질로 위협했다. 그러자 젊은 사람들이 아예 그들을 밀어 우리 가판대에서 떼어냈고 우리가 파병 반대 거리 홍보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방어해 주었다.

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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