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화여대에서 '필수코스’처럼 여겨지는 여성학 강의를 듣고 있다. 여성운동에 관한 영상을 보거나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최근에 교수님이 학내 미화·경비 노동자들에 대한 논문을 소개하셨다. 간단히 요약하면 ‘뼈빠지게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들보다 멀뚱히 앉아 경비만 보는 남성 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이 왜 더 높은가? 그것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임금을 더 받아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올해 3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에 동참했던 경험은 이와 달랐다.
청소·경비노동조합을 이끈 이화여대 분회장은 여성이었고, 매우 적극적으로 노조를 이끌었다. 발언이나 투쟁 향방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도 ‘남성 권력’은 없었다.
투쟁에 돌입한 노동자들에게는 남성 경비직이 월급 조금 더 받는 것보다, “왜 청소나 경비나 여성이나 남성이나 ‘시급 4120원짜리 재료비’여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비인간적이고 이윤에 눈이 먼 학교 당국과 용역업체라는 같은 적에 맞서, 한 명이라도 더 단결해 힘을 모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런 단결의 경험 속에서 비로소 남성과 여성이 모두 동등한 저항의 주체라는 사실이나, 여성 차별 이데올로기가 부추기는 분열이 투쟁하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음을 조금씩 깨달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남성 노동자의 임금이 더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 노동자는 임금을 책정할 권한으로부터 소외돼 있고, 특히 학내 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은 여성보다 더 높다 해도 한 달에 1백만 원 남짓이다.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남성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를 불로소득으로 취하고는 쥐꼬리만한 임금을 주는 자본가들인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억압이 개별 남성에 의해 구현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부 여성들이 남성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쫓아내야 할 것은 ‘남성’이 아니다. 최근 고려대에서 벌어진 성추행 가해학생 출교 요구 운동에서 남학생들도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많은 남학생들이 이 서명에 동참해 결국 승리하지 않았나.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맞서 싸운 것과 같이, 남성과 여성은 하나가 되어 여성 억압의 토대이자 그것을 활용하는 자본주의적 계급사회를 쫓아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금씩 깨트려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