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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의 삶과 사랑 이야기

홍석천이 벽장을 뚫고 나왔다. 당당하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면서.

갑자기 신문과 방송은 그의 얘기로 넘쳐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술자리에서 홍석천은 씹기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 괜한 짓 했다는 사람, 호모 새끼라고 욕을 하는 사람. 이제 조금의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에게 홍석천이 게이라는 사실이 더이상 새롭지 않게 됐다.

간간이 텔레비전에 출연하던 홍석천 씨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다양하게 반응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라도 하듯 한 권의 책을 엮어 내었다. 앞표지에는 상반신이 노출된 홍석천 씨의 사진이 실렸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짐작케하는 책표지였다.

홍석천 씨는 이 책에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 주었던 사람"인 토니와 2년간의 사랑 얘기를 담았다. 여느 사람들의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다르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뿐.

사람들은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이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석천은 이 책에서 그의 삶과 사랑이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사회의 따가운 편견 앞에서 시련을 겪는다. 책의 곳곳에는 단지 사랑을 할 뿐인 그가 게이여서 느껴야 하는 상심들이 배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저 영어를 가르쳐 주는 친구라고 소개해야 하고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염려해 나란히 걸을 수도 없다. 상대적으로 성이 개방적인 네덜란드에서 살다 온 토니는 그런 홍석천 씨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부끄러워 그러냐고 따져 묻는다. 사람들을 향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맘놓고 소개할 수 없었던 홍석천 씨의 모습. 그건 바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대다수 동성애자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뮤지컬 '코러스 라인' 폴의 역할을 맡는다. 극중에서 폴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겨 왔다가 그 응어리를 풀어놓는 데 홍석천 씨는 이 장면을 통해 커밍아웃을 시도한다. 연기로나마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자신의 부모형제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기의 형제 자매라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자신의 남동생이 남자를 좋아하다니 그것도 외국인을…' 아마 홍석천 씨 누나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이 커밍아웃을 인정해 주지 않을 경우 그들은 더욱더 고립되고 자신의 짐을 나눠질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 한다. 그들도 속시원히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로가 된다.

토니와 아픈 이별을 한 지 9개월 정도 지난 후 시드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공항에서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플래시를 켜 놓고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을 만나기 전,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글은 끝을 맺는다.

기성 언론은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을 한낱 가십거리로 취급할 뿐,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말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가 가슴 속 깊이 숨겨야만 했던 아픈 사랑, 그리고 삶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원하는 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자신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달라고 그는 한 권의 책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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