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유럽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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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유럽연합 정상들이 한곳에 모여 유로존 위기를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대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회담이 시작되기 전부터 비관적인 전망을 발표했다. “유로존이 긴급 상황을 관리할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유로존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략문제 연구소인 ‘스트랫포’는 한술 더 떠서 유로존에서 앞으로 발생할 시나리오를 이렇게 정리했다. “독일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세 가지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받고, 유럽 은행시스템은 위기에 빠지고, 그리스는 디폴트할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 정상들은 이런 파국적 전망이 실현되는 것을 간신히 피해 왔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안을 내놓기는 힘들다.
얼마 전까지 금융시장이 가장 걱정한 것은 그리스 디폴트, 즉 그리스가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의 우려는 유럽 은행시스템 전체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확장됐다. 이제 금융시장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유로존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서 이 나라들에 가장 많은 돈을 대출한 집단인 유럽 은행들이 위협받고 있다.
유럽 은행들은 8백10억 유로 상당의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3천억 유로가 넘는 이탈리아 채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로존 정부들은 그리스 등의 디폴트를 막아 유럽 은행 체계가 붕괴하고 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유럽 은행들의 건전성을 높일 것인가를 놓고 유럽 지배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크다. 심지어 긴밀한 동맹이자 유로존 위기 해결의 핵심 주체인 프랑스와 독일 정부조차 입장이 엇갈린다.
이들의 입장이 일치하는 부분은 구제금융 지원의 대가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해당국 노동계급과 민중이 위기의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구제금융’이란 것이 고스란히 돈을 빌려 준 은행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감에도 말이다.
분열
이런 해결책의 문제는 이것이 상황을 호전시키기는커녕 경제 성장률을 더 낮추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 긴축 ‘실험’의 대상인 그리스는 그것을 가장 극명히 보여 주는 사례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의 자체 조사를 보면, 그리스 정부가 추진하는 증세와 지출 삭감이 모두 실행되면 그리스 가구당 평균소득이 무려 14퍼센트나 줄어든다.
이것은 수요를 위축시키면서 그렇지 않아도 낮은 경제 성장률을 더 낮출 것이고, 그리스가 빚을 갚기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 노동자·민중은 이미 참혹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저명한 의학잡지 랜싯은 공공서비스 긴축과 실업으로 2009년부터 그리스 국민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하고 자살률이 급등하면서 “그리스 비극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의 긴축 정책이 다른 결과를 낳을 거라 볼 이유는 없다.
가혹하고 황당한 긴축 정책에 맞서 유럽 노동자는 투쟁을 벌여 왔고, 특히 그리스 노동자·민중은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리스 정부는 10월 20일 공공부문 노동자 3만 명 추가 해고를 포함해 추가 긴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10월 19일과 20일에 공공부문과 민간 노총이 모두 이에 항의해 48시간 총파업을 벌일 것이다.
격렬한 투쟁 과정에서 그리스 노동자들은 노조 관료들이 정해 놓은 틀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갈수록 격화되는 대중 투쟁의 압력 앞에 집권 정당의 ‘단결’에도 점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번에도 그리스 정부는 의원들에 대한 공갈 협박으로 간신히 긴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집권당 내에도 별로 없다.
10월 15일 전 세계적 행동은 그리스 투쟁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것이었고 이들의 자신감을 더 높였다. 이제 투쟁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