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칼럼: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되찾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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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안철수·나꼼수·박원순 바람 속에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은 우려스럽다. 물론 진보정당의 주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의 정당 지지율은 2004년 총선 직후 15퍼센트대까지 치솟았지만, 1년도 안 돼 10퍼센트 이하로 하락했고, 2008년 분당 이후 5퍼센트 밑으로 주저앉았으며, 이번 서울시장 선거 전후해서는 다시 2퍼센트대로 내려갔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주객관적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MB 정권의 대두, 세계 대공황 도래 등의 정세가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 진보진영의 성장에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주체적 요인의 문제가 더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요인은 2008년 진보정당의 분열, 즉 민주노동당의 분당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회고하면서, 현재 진보정당이 직면한 곤란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주도했던 평등파와 진보신당 계열 논자들은 진보정당의 위기, 혹은 주변화는 민주노동당 당권파인 자주파의 ‘종북주의’, ‘패권주의’, ‘우파적’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2008년 총선에서 분열해 경쟁한 두 진보정당은 모두 부진했지만, 양당 간의 경쟁에서 패자는 2008년 분당 이후 ‘종북’파 일색으로 돼 버린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스타’ 의원들과 홍세화 등 진보 지식인·교수들이 대거 합류했던 진보신당이었다.
‘종북주의’,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주파의 민족주의적 스탈린주의는 혐오와 결별,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 그 역사적 존재 이유의 이해에 근거한 비판의 대상이어야 한다. 또 ‘패권주의’가 다수파의 당권 독식 논리를 뜻한다면, 자주파뿐만 아니라 분당 전 평등파들도 ‘패권주의’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다수파의 헤게모니 행사 자체가 당내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08년 1월 당대회에서 평등파의 심상정 비대위가 일심회의 제명을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이 안이 압도적 다수로 부결되자 이를 이유로 탈당한 것이야말로, 당내에서 다양한 복수의 경쟁적 이념 혹은 신념의 물리적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당내 민주주의 원칙을 거부한 행태였다.
또 ‘자주파=우파, 평등파(분당파)=좌파’라는 이분법 역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예컨대 비정규직을 용인하는 비정규직 입법이나 노동자가 먼저 자본가에게 양보해 개혁을 끌어내자는 사회연대전략과 같은 ‘우파적’ 사회민주주의 정책들을 주도했던 것은 평등파였다. 반면, 한미FTA 반대 투쟁 등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을 전투적으로 조직했던 것은 자주파였다.
2008년 분당파들이 주장했던 자주파의 ‘종북주의’, ‘패권주의’, ‘우파적’ 정책 등의 문제는 분당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다. 분당이 진보신당 논자인 자주파가 평등파를 쫓아낸 결과가 아니라 정반대로 평등파가 적극적으로 기획 추진했던 프로젝트였음은, 최근 김윤철, 정영태 교수 등 평등파 자신들의 학술적 논저에서 입증·인정되고 있다.
2008년 분당은 진보정당의 분열과 이들 간의 대립 투쟁을 격화시켰다. 분열 전에는 민주노동당의 틀 안에서 경쟁했던 자주파와 평등파가 이제는 당을 달리 하게 되면서 총선,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대립·투쟁하게 됐으며, 이와 연동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 노동계급까지 분열됐다.
또, 평등파들이 창당한 진보신당은 강령에서 자주파의 ‘종북주의’를 비판하는 것 말고는, 민주노동당의 사회민주주의 이념과 구별되는 좌파적 사회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진보신당은 적록연대, 사회연대, 당의 다양성과 개방성 등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지만, 전체적으로는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정당이라기보다 또 다른 사회민주주의 개혁 정당에 가까웠다.
진보신당은 이른바 ‘좌파의 재구성’을 제창했지만, 민주노동당 외곽에 있던 급진좌파, 혁명좌파 정치조직들을 당내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역시 분당 이후 각종 선거에서 진보신당과 경쟁 대립하는 과정에서 당권파들의 좌파 민족주의적 경향은 다소 억제된 반면 사회민주주의적·개혁주의적 경향은 더 강화됐다.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현재 국민참여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포함한 민주대연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 지난번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강령을 삭제하고 이를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으로 대체한 것 등은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우경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요컨대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우경적 분열이었으며, 평등파의 탈당과 진보신당 창당은 이명박 정권 출범 국면에서 진보정당을 비롯한 진보진영 전체의 분열, 조직 노동계급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후퇴였다.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이 때문에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해서 진보신당으로 넘어갔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의원 등과 진보적 지식인 교수들이 최근 ‘진보대통합’을 추진·지지하고 있는 것은, 그 중요한 문제점과 최근의 좌절이 있었지만 2008년 분열의 역사적 과오를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어떤 형식이 되든 진보진영의 단결은 최근 안철수·나꼼수·박원순 바람 속에 더욱 희박해지고 있는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다시 찾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최근 진보대통합이 잘 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진보진영 단결이라는 과제 자체를 포기하고 최근 진보신당 독자파의 시도에서 보듯이 ‘각자도생’으로 나아갈 경우 진보진영은 더욱 주변화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진보대통합이 잘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주로 그 방식 때문이다. 즉 그동안 진보대통합 정당 건설을 공동전선 형태로가 아니라 독자적이고 일관된 정당 건설 방식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진보대통합 정당을 강령적으로 완결된 정당으로 건설하려 할 경우, 통합되는 정당들의 상이하며 상충되는 이념과 강령들을 하나의 단일한 이념과 강령으로 통합·조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조정은 상충되는 이념과 강령들이 그들의 최대공약수로 축소될 경우에만 성공할 것이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우며, 설사 성공하여 통합정당이 출현한다 할지라도 그 통합정당은 통합 이전에 비해 정치적으로 우경화된 정당일 것이다. 실제로 2011년 8월 새통추가 잠정 합의한 강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강령에 공통되는 부분들을 모은 것에 그칠 뿐이며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정당의 강령으로는 미흡하다.
게다가 그 간의 진보대통합 논의 구도는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진보신당 통합파와 민주노총 상근간부들 간의 협상으로 제한돼, 이들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급진좌파 정치조직들이 소외됐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 나고, 선거주의가 특권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고려할 때 기존의 급진좌파 정당들의 이념과 강령, 조직을 유지 존중하면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공동요구들을 중심으로 선거 투쟁과 대중 투쟁을 포함한 공동 활동을 수행하는 공동전선 형태로 당을 건설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공동전선 형태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물론, 기타 외부의 급진좌파 정치조직들까지 포괄해 기존의 진보정당들을 재구성하는 것, 즉 진보대연합을 건설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진보대통합의 존재 형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