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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 70억 시대 ? 사람이 너무 많아 문제?

전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넘었다. 일부 언론은 ‘인구 과잉’이 문제를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존 몰리뉴는 이런 주장을 논박한다.

2백 년이 넘도록 세계에 인구가 너무 많고 이 때문에 빈곤, 실업, 주택난, 환경 파괴가 야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798년 영국 성공회 목사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이라는 논문을 출판했다. 맬서스는 인구는 언제나 식량 생산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혹독한 도덕적 규제를 하지 않으면 대규모 빈곤과 기근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부터 시작해 사회주의자들은 맬서스의 이론을 “인류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하고 언제나 과잉인구론에 반대했다.

과잉인구론은 틀린 이론이다. 왜냐하면 인류와 인류의 생활수단 사이의 관계를 뒤집고, 과거와 현재의 사실들과 완전히 모순되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폭증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증가율은 떨어지고 있다.

1950~2000년 전세계 인구는 25억 명에서 60억 명으로 늘어 1백40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앞으로 2050년까지 50년 동안 인구는 단지 50퍼센트 증가하고, 그 뒤 50년 동안은 11퍼센트 증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 출생률이 사망률보다 높기는 하지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수준,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향상으로 말미암아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갖는다.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을 능가하는 것은 아니다. 1950~70년 세계 식량 생산은 2백50퍼센트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인구 증가를 완벽하게 넘어서는 수치다.

소말리아인 수백만 명이 굶는 것은 과잉 인구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부추긴 전쟁 때문이다. ⓒPetterik Wiggers

식량은 모자라지 않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급할 만큼의 식량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식량 폭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시장이 요구하는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 때문이다.

한 나라의 번영은 인구 규모나 인구 밀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 둘이 밀접하게 관련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의 인구 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8.4명이고 일인당 국내총생산(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인구수로 나눈 수치)은 2천30파운드다.

이와 반대로 베네수엘라의 인구 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28.5명이고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6천1백90파운드다. 이처럼 베네수엘라는 인구 밀도가 볼리비아의 세 곱절이지만 세 곱절 부유하다.

역사

인구 밀도와 사회적 부 사이의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점은 아시아의 두 나라를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인도의 인구 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3백45명으로, 일본의 3백43명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인도의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1천3백70파운드이지만 일본은 1만 6천7백50파운드다.

인도와 일본은 인구 밀도는 비슷하지만 역사가 다르고(인도는 식민지였고 일본은 식민모국이었다) 경제적 발전 수준이 현격히 다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경제, 정치, 제국주의, 전쟁, 한 마디로 역사가 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것이지, 인구의 크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과잉인구론이 틀린 핵심 이유다.

과잉인구론은 한 나라의 재화(식량, 주택, 의료 서비스, 일자리, 부 등등)의 양을 어느 정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인구를 그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이 이런 모든 재화를 생산하므로, 인구 수 증가는 단지 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재화들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는 것도 뜻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빈곤과 실업이 계속 증가하는 완전한 재앙이 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인구가 기원전 1년 2억 명에서 기원후 1000년 3억 1천만 명, 1800년 9억 7천8백만 명, 1900년 16억 5천만 명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사회의 기본 추세는 더 부유해지고(비록 엄청나게 불평등했지만), 더 잘 살게 되고,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이었다. 바로 그래서 인구가 증가할 수 있었다!

인구 증가 과정이 조화롭지 못한 이유는 계급 사회에 내재된 모순이다.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전쟁과 경제 위기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자본주의 생산은 이윤에 달려 있으므로, 이윤율이 떨어지면 생산이 감소한다. 인구가 빈곤·실업·기아에 미치는 영향 또는 인구 규모와 상관없이 말이다.

과잉인구론의 정치적 문제는 기후변화와 이주 문제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내 주장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많은 환경운동가들도 환경 쟁점으로 오면 주장의 논조를 바꾸기 시작한다.

그들은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고 사람들이 자원을 모두 써 버리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원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지고, 인구 증가를 멈추지 않는다면 지구가 파괴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유를 대는 것은 이미 앞에서 반박한 주장과 마찬가지로 틀린 주장이고,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배출

그렇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 그러나 현재든 예지가능한 미래든 인간 활동이 지구 자원을 바닥낼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석유 같은 일부 자원은 아마도 양이 고정돼 있겠지만, 풍력이나 조력 같은 자원들은 그냥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거나 식량을 생산하듯이 인간 노동으로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인구가 증가하면 그런 자원을 생산할 노동력도 많아지게 된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탄소 배출 문제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주로 화석연료를 태우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다. 인체가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재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 사회가 화석연료를 태우는 이유는 인구 규모 때문이 아니라 화석연료가 대기업들의 이윤에서 하는 핵심적 구실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멈추려면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거나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에 진지하게 도전하는 것보다는 10억 명쯤 ‘잃는 것’이 더 쉽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주 문제로 오면 과잉인구론은 대체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주의를 가리는 데 이용된다.

그들의 주장이 뜻하는 바를 분명히 말하자면, 그들은 일자리·주택·서비스 부족을 이유로 나라가 꽉 찼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가 실업을 야기한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어떤 사람들(외국인이나 흑인)은 일자리를 가질 자격이 없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들(영국인)보다 자격이 적다는 생각이 있다.

이런 사고 방식이 가진 불합리성과 인종차별주의는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용어를 다른 용어(예를 들어 머리카락이 붉은 사람들)로 바꿔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나는 머리카락이 붉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본다. 빨강머리들이 2백만 명 있고 실업자도 2백만 명 있다. 빨강머리들을 몰아내자. 그러면 우리 모두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인종차별주의의 터무니없는 본질을 극명히 드러낸다.

과잉인구에 관한 여러 주장들은 모두 결국에 가서는 하나로 모아진다. 체제의 문제를 사람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주장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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