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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4기 위원장 선거:
좌파 후보에 대한 투표와 아래로부터의 운동

민주노총 4기 위원장 선거

좌파 후보에 대한 투표와 아래로부터의 운동

민주노총 4기 위원장 선거가 1월 16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좌파 노조로서 한국의 전투적인 노동조합 운동을 15년 넘게 이끌어 왔다. 최근 4∼5년 동안에도 노동쟁의의 90퍼센트 가량이 민주노총 소속 작업장에서 일어났다.

신규 노조든 한국노총 소속 노조든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선택 또는 변경하는 이유는 투쟁을 위해서였다. 예컨대 2000년에 일어난 250건의 쟁의 가운데 103건은 민주노총 산하 신규 노조 또는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한 작업장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말 노동부가 발표한 ‘현재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한국노총의 조합원 수는 줄어든 반면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는 오히려 늘었다.

이런 예들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더 잘 싸우는 지도부, 그래서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들의 임금, 일자리, 그 밖의 노동조건 등을 더 잘 방어하는 노동조합 지도부를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민주노총 4기 지도부는 한국 노동자들의 이런 염원에 부응해야 한다.

총파업 ― 남발이 아니라 회피가 문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유덕상과 이수호 두 후보는 모두 투쟁 속에서 배출된 걸출한 지도자들이다. 유덕상 후보는 1995년 한국통신 투쟁을 이끌었고, 이수호 후보는 전교조 결성과 합법화 투쟁을 이끈 장본인 가운데 한 명이다. 두 후보 모두 투쟁을 이끌다 두세 차례 투옥됐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노선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서 유덕상과 이수호 후보가 각각 상대적 좌파와 상대적 우파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이번 선거의 쟁점에도 드러나 있다. ‘국민파’를 대변하는 이수호 후보 진영은 “민주노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핵심 문제로 지적하는 점은 현 지도부가 “현장 정서를 무시한 총파업을 남발”해 왔다는 것이다.

이수호 후보 진영의 비판에는 언뜻 듣기로는 일리 있는 듯한 지적이 꽤 포함돼 있다. “투쟁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무서워 면피용 총파업을 선언하는 집행부”, “선언에 그치는 총파업”, “양치기 소년”, …

사실, 이런 목소리들은 파업을 실질적으로 조직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진 전투적 현장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1기 지도부 시절부터 제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수호 후보 진영은 이 목소리를 빌어 사실상 잦은 파업 자체를 문제 삼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이수호 후보 진영은 지난해 4. 2 발전노조 연대파업을 “총파업 남발”의 한 예로 들면서 이렇게 썼다.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도주하는 왜선을 쫓아가 섬멸하라는 선조의 말을 거역합니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죽음과 마주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전투에 대한 그의 원칙은 확고했습니다.”

당시 지도부는 준비돼 있지 않았으므로 연대의 필요성을 외면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발전 노동자들은 2월 25일부터 40일 가까이 파업중이었다. 그렇다면 이 짧지 않은 기간에 조합원들에게 연대 파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행동을 고무하며, ‘준비’시켜 나가는 게 지도부의 임무가 아니었을까?

발전 파업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저지른 진정한 잘못은 연대 파업을 결정한 게 아니라, 파업을 철회시키고 발전 노동자들이 보기에 “항복 문서나 다름 없”는 합의를 정부와 했다는 것이다.

중앙파와 좌파 등이 연합한 유덕상 후보 진영은 “총파업 남발”이라는 지적에 대해 원칙적으로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옳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투쟁보다 타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어려울수록 투쟁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 유덕상 씨는 “총파업은 지도부 맘대로 결정했던 게 아니다”며 “조직적으로 결정된 방침을 현장[원문 그대로]에서 실천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 비판은 ‘국민파’ 연맹위원장들을 겨냥한 것이지만 사실은 유덕상 후보 진영도 이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앞에서 얘기한 발전 파업 철회 당시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노동자들이 결정한 파업 방침을 저버리고 “굴욕적인 노정 합의”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지금 유덕상 후보 진영에 포함돼 있다.

투쟁과 교섭

이수호 후보 진영은 2006년에 “임단협을 넘어” 사회보장, 비정규직 차별 철폐 같은 요구를 걸고 “준비된 총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적 요구도 내놓겠다고 한다. 노동조합이 정치적 요구를 위해 파업하는 것은 큰 진보다.

하지만 파업이 노조 지도부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칼도 아닌데, 2006년을 못박는 것은 의아하다. 게다가 우리 나라 노동조합 운동은 1년에 한두번씩 대규모 투쟁을 벌일 만큼 활력 있을 뿐 아니라 노사관계 로드맵 등 싸워야 할 당면 쟁점도 많은데 말이다. 또, 예정에 없던 한 부문의 투쟁이 국가적 초점을 형성할 수 있는데 이럴 때 연대 파업은 투쟁의 명운에 결정적일 수 있다.

사실, 이수호 후보 진영은 “제대로 된 투쟁”은 2006년에 하고 그 때까지는 그 투쟁을 준비하며 “제대로 된 교섭”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수호 씨는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교섭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노사정위”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이와 맥이 닿는다.

‘국민파’ 지도자들은 노사정위에 참여할 필요성을 일찌감치 주장해 왔다. 김금수 노사정위 위원장은 ‘국민파’에 영향력을 끼쳐 온 인물로서, 우리 운동 안에서 오랫동안 “투쟁주의, 맹동주의”를 비판하며 협상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다. 민주노총 1기 지도자들이 1998년에 노동법상 해고 요건의 완화를 받아들인 것도 바로 이 노사정위를 통해서였다.

이수호 씨는 “투쟁한다고 정부가 대화하자고 나올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협상장 밖의 투쟁이 협상의 유리·불리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어떤 정부냐를 떠나서 진실이다.

무엇보다, 투쟁은 노동자들 자신을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학교다. 노동조합 지도자의 눈에는 준비 안 된 투쟁이 이상적인 총파업 계획을 망칠 수 있는 소모전처럼 보일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바로 이런 나날의 투쟁 속에서 배운다.

노동자들이 2∼3년 동안 파업을 안 하는 것은 마치 마라톤 선수가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우고 맥주 500cc 10잔씩 마시며 훈련을 안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2∼3년 뒤에 출전한다고 치자. 장담컨대 그는 10리(5킬로미터)도 못 가서 발병이 날 것이다. 2006년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루려 해도, 교섭을 강화하려 해도 투쟁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덕상 후보 진영은 “노사정위는 구조조정을 무리 없이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옳게 지적한다. 또, “투쟁이 담보되지 않고 교섭이 된다면 요구조건이 대폭 낮춰질 수밖에 없다”고 투쟁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유덕상 후보 진영이 대안으로 제안하는 노정 협상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노정 협상이든 노사정 협상이든 중요한 것은 얼마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해 투쟁하느냐 하는 것이다. 노정 협상을 한다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노동자들의 투쟁을 배신한다면 노사정위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좌파 상근 간부의 한계

이밖에도 이수호 후보 진영이 “실사구시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반면, 유덕상 후보 진영은 “밑으로부터 조직된 투쟁[과] 현장”을 강조하는 등 두 후보 사이에 강조점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유덕상 후보 진영에도 ‘좌파’ 지도자로 볼 수 있는지 의아한 인물들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두 후보 모두에게 지지할 만한 훌륭한 공약이 있고, 그와 동시에, 두 후보 모두에게 바라는 점도 있다. 예컨대 우리는 두 후보가 3·20 국제반전공동행동 같은 반전 투쟁의 실질적 참여를 민주노총 4기 지도부의 한 과제로 삼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러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좌파인 유덕상 후보 진영이 당선되기를 바란다.

좌파 지도자의 승리는 조합원들이 더 투쟁적인 노조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좌파 지도자들의 잇달은 배신적 타협이 부른 환멸 때문에 우파 지도자들이 어부지리를 얻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또한, 좌파 지도자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증대시키고 더 급진적인 요구를 내놓고 싸우도록 고무할 수 있다.

하지만 좌파 지도부의 당선이 곧 투쟁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 노조 지도자들은 결정적 순간에 우파 지도자들과 별 차이 없는 선택을 하곤 했다.

1998년 2월 초, 민주노총 1기 지도부(‘국민파’)가 노동법상 해고요건 완화에 합의하자 조합원들은 이들을 불신임하고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조직할 비대위를 구성했다. 그런데 당시 좌파였던 단병호 비대위원장은 불과 며칠 만에 파업을 철회하고 말았다.

민주노총 2기 이갑용 지도부(‘좌파’ 또는 ‘현장파’)는 1998년 7월 23일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파업을 철회했다. 노사정위를 비판해 온 이갑용 지도부는 7월 27일 한국노총과 함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총체적 한국 사회 개혁과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해” 노사정위 복귀를 선언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길지 않은 역사에서만도 이런 예들이 적잖이 있다. 좌파 지도자들이 때때로 노동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그들의 인품이 소심해서가 아니다.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협상을 전담하는 노조 상근간부의 모순적 처지 때문이다.

열쇠는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

좌파 지도부의 당선을 지지하고 특정 목적을 위해 좌파 지도부와 협력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믿고 의존해서는 안 된다. 승리의 열쇠는 누가 노조를 이끄는가가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이다.

우파 지도부가 당선된다 해도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가 강력하면 대규모 투쟁을 건설할 수 있다. 우파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브레이크를 걸려 하겠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힘이 거대 트레일러 만큼 강하면 보통의 브레이크로 그 투쟁에 제동을 걸기는 어렵다.

좌파든 우파든 지도부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 노동자 자신의 활동을 전개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 안에서 튼튼한 투쟁의 척추가 될 현장조합원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직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배신할 때 현장 노동자들이 독자적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을 올바르게 대변한다면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잘못 대변하면 우리는 즉각 독립적 행동에 나설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에 대한 태도는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