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한나라당은 한미FTA를 기습 날치기로 비준했다.
날치기 다음 날인 23일 박근혜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대전대를 방문했다.
박근혜의 대권 행보인 ‘듣는 정치’의 일환이었다.
바로 전날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언론 출입까지 통제한 ‘닫는 정치’의 선봉에 서 놓고는 정말 뻔뻔스럽고 역겨운 일이었다.
전날 방문 소식을 듣고 대전대 한의학과 간호학과 학생들과 충남대, 카이스트, 배재대 학생 등 20여 명은 박근혜 강연회 장소 앞에서 박근혜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박근혜 대선 행보를 취재하려던 수많은 방송·신문 기자 들은 우리 시위를 취재하느라 분주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시위 근처로 모여 같이 박수치며, 화답하고 구호도 외쳤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을 때는 전체 1백여 명이 모였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우파적인 대전대 총학생회는 처음에는 집회를 말리려 했으나 학생들의 호응을 보고 포기했다.
박근혜는 집회 탓에 예정된 시간보다 20여 분이 지나도 강연장에 입장하지 못했다.
결국 경호원과 학교 직원, 총학생회 집행부 들은 박근혜를 에워싸 강연장에 입장시키려 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회 참가자와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박근혜를 에워싸고 항의하면서 “한미FTA는 무효다” , “박근혜가 무슨 낯짝으로 대전대를 오느냐” 하는 구호를 외치며 야유를 보냈다. 경호원들은 길을 열기에 바빴고, 몸싸움 탓에 평소 몇 걸음이면 갈 수 있던 길을 몇 분이나 걸려 겨우 강연장에 들어갔다.
실로 통쾌한 순간이었고, 박근혜에게는 굴욕이었다.
총학생회는 이러한 열기에 당황스러웠는지 강연 출입자를 몸수색하고, 가방까지 검사하는 추태를 보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강연장 질문의 절반 이상이 한미FTA에 관한 것이었고, 그때마다 박근혜는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한 모양이었다.
대전대학교는 지난 몇 년간 정치 집회도 없었고, 총학생회도 박근혜를 초청할 정도로 우파적인 대학이다. 그래서 박근혜가 대전대 강연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오판이었다.
한미FTA 날치기 통과에 대한 분노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집회 때 호응해 준 수많은 학생들이 먼저 박근혜를 에워싸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러한 분노를 조직해서 저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또한 거리에서 보여 준 분노를 노동자 파업과 같은 형태로 연결시켜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의 힘이 한미FTA를 좌절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대전대 박근혜 방문 항의 시위는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큰 고무를 받았다.
이 날 시위는 MBC와 SBS 등 많은 언론에 보도돼 한미FTA 날치기에 분노하는 이들에게도 자신감을 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