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영 최후진술문:
“야만적인 체제의 본질과 반민주성을 들춰내는 좌파 언론을 계속 판매할 것”
〈노동자 연대〉 구독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이며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합니다. 저는 이 재판이 자본주의 체제, 자유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유민주주의는 그 근간으로 사상과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검찰의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정부는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보듯이, 생존권과 노동권을 위해 정당한 투쟁과 파업을 한 시민과 노동자들을 살인적인 폭력으로 진압했습니다. 그리고 재판 진행에서 경찰 이종순은 우리를 연행할 때 “국가보안법”과 “사상 검증”을 운운하며 협박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정치적 “내용에 따라” 신문 판매 규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10월 4일에 발표된 중도, 보수성향의 인권 연구결과 조차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해 경찰력이 발동되는 중대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집트와 예멘, 시리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정부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민중을 경찰과 검찰, 군대를 동원하여 끔직한 학살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자유민주주의의 골간을 흔들며 폭력과 탄압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까? 정부가 소수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익과 그들의 지배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실체는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억압할 자유, 정부에 대한 비판을 틀어막을 자유, 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마음대로 억누를 자유입니다.
저는 다시금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실감합니다.
정부와 권력자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최상의 체제라고 말하지만 저는 자본주의 체제야말로 인류 최악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60억 인구 중 5천7백만 명이 매일 빈곤으로 사망하고 있고 하루 2달러 미만 생활자가 53퍼센트나 됩니다. 하지만 식량은 120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식량의 3분의 1을 썩히거나 바다에 버립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것을 ‘식량가격 조절의 합리성’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통제 불가능한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절망의 나락으로 후려칩니다. 정부와 권력자들은 그 어떠한 책임도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과 고통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지배자들은 한쪽으로는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서, 한쪽으로는 언론을 탄압하고 통제해서 점증하는 대중의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 보다 나은 삶을 향한 대중의 염원을 결코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누가 아랍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인종과 피부색과 국경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아랍 혁명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과 전쟁, 착취와 억압, 소외의 고통을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랍 혁명은 전세계 수많은 학생, 노동자, 민중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감을 높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랍의 불길은 유럽을 거쳐 미국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라”, “1퍼센트의 탐욕과 부패를 우리 99퍼센트가 더는 참지 않겠다”고 외치며 저항에 나서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으로 지배자들에 맞선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 민중의 분노와 저항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종식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죄입니다. 〈레프트21〉은 계속해서 이 끔직하고 야만적인 체제의 본질과 정부의 반민주성을 들춰내는 좌파 언론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저는 그 신문을 계속 판매할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데 맞선 저항과 투쟁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