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의 위기와 체제 변호 경제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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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경제학이 오늘날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1월 초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학생 70여 명이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수업을 거부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은 맨큐 교수가 이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믿게 하는 경제학만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또 이 학생들은 ‘점거하라’ 운동을 지지한다며 동참을 선언했다.
하버드 학생들의 수업거부가 벌어진 비슷한 때에 미국 선물중개업체인 MF글로벌이 파산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사례다. 코자인 MF글로벌 회장은 “지금 유럽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횡재에 가깝다”며 EU가 유로존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유로존 위기는 더 악화했고 그는 파산했다.
이 사례는 1990년대 말 러시아 국채에 투자했다가 망한 LTCM(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을 연상시킨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두 명이 설립한 이 회사는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 금융기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승승장구했지만 1997년의 아시아 위기와 뒤이어 터진 러시아 국가파산 사태로 몰락했다.
용어설명부르주아 경제학은 이른바 발행-분배(OTD) 모델*을 통해 금융시장의 합리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면서도 위험은 회피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나 최근 유로존 위기는 이런 금융기법이 사실상 매우 취약한 토대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줬고, 더 나아가 금융시장이 합리적이고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을 허물었다.
주류 경제학계에는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자조 섞인 한탄이 등장하는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지난 30년간의 거시경제학은 잘해 봐야 쓸모없었고 최악의 경우 유해한 것이었다”고 시인했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는 “사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는 정말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흔히 시장 메커니즘은 가격 신호를 통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 신호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해소되는 과정 사이에는 시간의 간극이 있기 때문에 시장은 논리적으로도 결코 완벽하게 작동할 수 없다.
그래서 20세기 초반에 칼 폴라니는 시장의 작동은 국가의 힘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자기조정적 시장이란 허구일 뿐이라고 지적했고, 마르크스도 자본과 시장은 국가의 폭력에 의해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번 경제 위기로 파산한 금융기관들이 입은 손실을 대부분 국민 세금으로 벌충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은 아담 스미스 이래로 내려오는 경제의 개인주의 전통, 즉 부의 증대나 투자 손실 모두 개인의 몫이라는 전통과는 어긋난다. 이런 점에서도 주류 경제학은 이론 따로, 실제 따로인 ‘따로국밥’인 셈이다.
대마불사
이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실증과학이 아니라 중세의 신학 같은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현실 경제에는 실업의 고통, 대기업의 수익 급증과 대비되는 서민들의 생활수준 하락, 물가 인상과 실질임금의 정체, 노동자들의 저항 같은 일들이 서로 중첩돼 다채롭게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은 복잡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델을 세우고 또 많은 변수들을 무시한 채 하나의 추세선을 그리는 계량 분석을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있다.
2000년에 프랑스의 경제학 전공 대학생들이 대학의 경제학 교과과정을 개정해 달라고 청원하며 이런 현상을 ‘자폐증적 경제학’이라고 비판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의 이런 실패와 모순을 바탕으로 등장했지만 한계가 있다. 케인스 그 자신이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전후 장기호황 때도 실제로는 케인스주의적 처방이 채택되지 않았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장기적인 침체기에서도 케인스주의적 유효수요 증대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를 옹호하는 주류 경제학도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위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의 동학과 위기로 빠질 수밖에 없는 내적 모순을 밝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중요하다.
200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번 경제 위기가 4년이 지나도록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체제가 왜 이 모양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