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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은 무엇을 보여 줬는가

아랍 민중은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20~30년 묵은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수십 년 동안 두려움의 대상이던 보안 기구들을 해체하고, 지배자들을 벌벌 떨게 만들며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사회를 바꿀 힘이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무엇보다 혁명이 한 무리 공상가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아랍 혁명이 일어난 뒤 미국 위스콘신에서 노동자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유럽 노동자들의 반긴축 투쟁도 힘을 얻었다. 스페인에서는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점거를 본뜬 광장 점거 운동이 일기도 했다. 절정은 미국 ‘점거하라’ 운동의 제안으로 10월 15일에 열린 국제 공동 행동의 날이었다.

이 운동들은 모두 2008년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사실 경제 위기가 운동에 끼치는 영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들을 저항에 나서게 할 수도 있고 의기소침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랍 민중의 용기와 투지, 승리는 전 세계 민중에게 싸울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아랍 혁명은 지배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랍 혁명으로, 특히 이집트 혁명으로 서방 제국주의는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이스라엘,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축으로 중동 지역을 지배해 왔다. 이집트 혁명으로 미국의 중동 지배 축 하나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좀더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국경을 봉쇄한 덕분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봉쇄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는데, 이제 이 전략이 틀어지게 됐다.

아랍 혁명은 노동계급의 힘과 중요성도 확인시켜 줬다.

특히 이집트 혁명에서 노동계급의 구실은 중요했다. 혁명의 물결이 마할라와 수에즈 등 작업장으로 확산된 것은 무바라크를 몰아내는 데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그 뒤에도 이집트 노동자들은 경제적·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벌이고, 독립노조를 건설하고,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며 혁명을 심화시켰다.

지난 1년 동안 이집트 혁명이 심화하는 과정은 폴란드 출신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작용을 잘 보여 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 행동의 물결이 고양된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경제투쟁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퇴적물이 남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다.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이 휴지기를 맞이할 때마다 노동자들을 지탱해 준다. 말하자면,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노동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다.”

가변성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은 무바라크 퇴진 이후 거리 시위가 잠시 잠잠해진 동안에도 혁명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 핵심 원동력이었고, 군부에 맞선 투쟁이 다시 일어나는 데서 발판 구실을 했다.

이런 노동자 운동의 진출은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같은 상대적 후진국에서는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이 노동계급밖에 없고, 노동계급의 주도적 구실로 말미암아 민주주의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로츠키의 주장에 따르면, 이집트의 (정치)혁명은 사회혁명으로 이어질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이 잠재력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현실은 기계와 달리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은 서로 충돌하는 여러 세력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이집트 노동계급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지금껏 이룬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무바라크는 타도했지만 평범한 이집트 대중의 실제 삶은 그리 나아진 것이 없다. 단적으로 아직 무바라크 시절의 계엄령도 해제되지 않았다. 이집트 군부는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체제를 고수하려고 한다.

또한, 무바라크를 표적으로 삼았을 때는 많은 세력들이 단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표적으로 무바라크 시절 최대 야당 세력이었던 무슬림형제단은 혁명을 멈추고 싶어 한다. 독재자 타도로 혁명의 과업을 완수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 선출한 정부가 군부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고, 민중에게 필요한 복지를 제공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혁명은 더 진척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집트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이집트 ‘혁명적 사회주의자단체’(RS)는 소규모지만 혁명에서 긍정적 구실을 했다. 2월 혁명 기간에도 타흐리르 광장을 방어하고 혁명을 노동자들에게 확산시키는 활동을 했고, 초기부터 군부를 믿지 말아야 한다고 옳게 주장했다. 이 덕분에 RS는 이집트 민중에게서 신뢰를 얻어 가고 있다.

이집트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군부에 맞서 일어나는 투쟁에서 올바른 전략·전술을 제공하며 운동을 승리로 이끌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