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부터 세계화’ 참가단이 거둔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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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세계화’ 참가단이 거둔 성과
‘아래로부터 세계화’ 운영위원들에게 듣는다
Q 아래로부터 세계화가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해 거둔 성과는?
우석균 : 이제 외국에 나와서 ‘아래로부터 세계화’ 운영위원이라고 말하면 통하지 않을까? 상당한 운동가로 통할 수 있을 거 같다.(웃음)
이 곳 첫날 공식 소식지의 1면이 ‘Globalization from below’였다. 우리 단체를 소개한 것이다. 오늘 나온 신문 사진들을 보니까 10개 중 4∼5개가 아래로부터 세계화 사진이었고, 3·20 한국 포스터가 여기가 한국이 아닌가 할 정도로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래로부터 세계화의 조직력과 헌신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반전 운동의 조직에 크게 기여했다. ‘아래로부터 세계화’에게 세계사회포럼은 국내를 거치지 않고 곧장 세계로 도약해 버리는 그런 계기였다.
아래로부터 세계화는 전 세계적인 반전 운동의 고양에 큰 역할을 했고 사회포럼에서 참가자들에 많은 정보를 주고 편의를 제공하고 훌륭하게 조직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첫번째 공식 활동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김어진 : ‘아래로부터 세계화’가 세계사회포럼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국제적 조직으로 확실하게 등록했다. 이것은 저절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아세’ 참가자들은 3·20을 알리기 위해 영어와 힌두어 리플릿을 배포했다. 매일 몇차례 행사장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행진했다. 개막식 사전 집회를 열기도 했다. 네루대 학생이 그 집회에서 연설도 했다.
한국의 일부 참가자들은 ‘정작 인도 현지인들은 세계사회포럼에서 배제됐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세’ 참가단은 인도인들과 함께 깊은 동료애를 느끼며 그들과 행사 기간 내내 함께했다. 가판 등을 통해 ‘아래로부터 세계화’가 받은 연락처는 무려 1천여 개다. ‘아래로부터 세계화’에 가입한 인도인도 40명이며 이 중 몇 명은 월정회비를 내기도 했다.
아세 주최의 워크숍에는 3백여 명이 참여했는데, 워크숍에 참여한 인도인들 1백10여 명이 주소, 연락처, 이메일을 주었다.
Q 이런 커다란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나?
김어진 : 작년 여름부터 준비에 착수했다. 대학, 노조 등에서 10차례 이상의 설명회와 마지막 전체 설명회를 통해 동원을 했다. 지난 9월 말에 인도조직위가 주최한 아시아 동원 협의회 회합에 한 회원을 파견했다. 이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입수할 수 있었다.
폐막 행진 1시간 전에 열린 아시아 반전 집회는 뭄바이로 떠나기 전부터 여러 아시아 단체들과 함께 조직한 것이다. 이 집회를 위해 서울에서 리플릿을 수천 부 제작해서 뭄바이에 오자마자 배포했다.
참가자들을 위한 가이드북도 제작했다. 폐막 행진 직전 집회를 위해 대형 엠프를 현지에서 구하고, 행진 때 엠프를 움직일 리어카도 구했다. 조직자들이 너무도 훌륭했다. 그리고 전체 참가자들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3∼4시간 밖에 못 자며 그날 그날의 목표를 세우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매일 평가 토론을 하며 그렇게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아래로부터 세계화’는 벌써부터 다음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6월에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된다. 빌 게이츠를 포함해 8백여 명의 다국적 기업 총수들과 재계 관료들이 온다고 한다. 아래로부터 세계화는 이들을 ‘뜨겁게 맞이할’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말에는 WTO 6차 각료회담이 홍콩에서 열릴 것이다. ‘아래로부터 세계화’는 여기에도 대규모 WTO 반대 투쟁단을 조직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