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성민을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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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어떤 개념이나 주장에 대해 물으면 그것을 설명한 후, 그것을 반박하는 이론들을 소개하고, 그 이론들이 어떤 점에서 왜 잘못됐는지를 알려 주는 식으로 풍부하게 설명해 줬다. 하나를 물으면 열을 가르쳐 준 것이다.
오정숙
송년회 때 노동자 회원들이 지구모임에 잘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때 그의 깊은 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규율을 세워야 한다는 데 더 흔쾌히 동의해 줄 걸 하는 후회가 된다. 나에게 노동조합 일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지구모임에 나와야 한다고 잔소리하던 그가 그립다.
김연오
집회를 마치고 보신각에서 새해를 맞으며 그가 내게 새해에는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며 손을 잡고 격려해 줬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현호
그는 저에게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었고,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고생하던 동지였고, 지역에서 함께 일을 조직하는 파트너였고, 기분 울적할 때 함께 여행을 떠나 주는 친구였고, 제가 아플 때 걱정해 주던 가족이었습니다.
전주현
비록 조성민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 그의 입으로 우리에게 그 어떤 말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가 혁명가로 살아온 20년의 삶, 그리고 그 20년 동안의 실천을 우리들에게 남겼습니다.
김소망
정치적 일관성이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시대 착오로 조롱받는 시대에, 그는 일관되게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에 장애가 되는 모든 사고 방식과 전투를 벌여 왔다.
박정훈
희망 없는 비정규직의 현실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당신을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며 살아도 빛이 보이지 않는 이 암울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답을 알게 해 줬고, 무엇을 해야 내 삶이 바뀔 수 있는지 알게 해 준 사람이죠.
장미순
슬퍼만 하고, 후회만 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성민이 형이 살아온 것처럼 살진 못하더라도 성민이 형의 흉내 정도는 내고 살아야겠습니다. 성민이 형이 보여 줬던 것처럼 살아야겠습니다. 형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준 것 같습니다. 그 가르침에 노동계급의 진정한 해방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조규민
“영향력이 높아졌을 때 적이 생겼다는 것은 금방 드러나지만 지지자들이 생겼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바심을 갖지 말고 뚝심 있게 활동해야 합니다.” 그의 조언들은 저의 활동에 확신과 힘을 줬고 지금도 자주 되새기게 해 줬습니다.
김무석
며칠 전 술자리에서 그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했던 “좀더 책임지려 하고 실천 속으로 한 걸음 더 자신을 던져 넣으라”는 말이 유언이 될 줄 몰랐다. 동지와 함께 했던 3년 7개월은 내게 여행과 같다.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하는 한 여행은 계속돼야 하고 이제 목적지에 도착해 축포를 쏘아 올릴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 “슬퍼하지 말고 조직하자!”
이창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