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조 - 현장조합원들의 단호한 저항과 파업이 해고를 막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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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조합원들의 단호한 저항과 파업이 해고를 막아내다
기아차 회사는 1월 26일 저녁 8시경에 화성공장 김우용 대의원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냈다. 김우용 씨는 지난해 12월 6일 3공장측의 갑작스런 노동강도 강화에 항의해 대의원으로서 비공인 작업 중단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있었다.
회사는 노조위원장 불신임이 부결된 틈을 노려 이 참에 투쟁의 중심축을 도려내려 했던 듯하다.
회사의 강공은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해고 소식이 알려지자, 화성공장 조립 3부 조합원들은 즉각 작업을 중단했다. 곧이어 공청회가 열렸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상집 간부가 공청회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상집 간부들은 끝내 공청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3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로 몰려가 사무실을 점거했다.
사무국장은 “김우용 대의원에게 일정 부분 책임 있다”며 조합원들의 행동을 비난했다. 조합원들이 거칠게 항의하자 그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번에는 정상재 화성 지부장이 나타났다. 그는 “김우용 대의원에게 얼마간 책임 있다. 그러나 해고는 막겠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징계 자체가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그 사이에 박홍귀 노조 위원장이 화성공장으로 급히 내려왔다.
위원장은 “파업하겠다. 믿어 달라”며 작업장 복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라인을 멈춰야 한다”며 복귀 명령을 거부했다.
조합원들의 강력한 항의 행동에 밀려 노조 지도부는 분열했다. 정상재 지부장은 ‘징계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반면,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간파한 위원장은 ‘파업’을 약속했다.
결국, 1월 27일 새벽 2시 20분 40여 명의 화성공장 대의원들이 모여 파업을 결정했다.
화성공장은 새벽 3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공장 공투위별로 공청회를 열었다.
김우용 대의원이 일하고 있는 조립3부 공청회에는 위원장이 직접 참석했다. 그는 “부당 징계가 철회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하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27일 오후 2시에 열릴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부당 징계를 첫번째 안건으로 올리겠다고도 약속했다.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3공장은 대의원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파업할 것을 결정했다.
현장 조합원들의 주도력이 중요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보수적 지도부라 할지라도 현장 조합원들의 자신감이 충만할 때는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대의원대회
오후 2시에 정기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파업중인 3공장 조합원과 선봉대원 20여 명이 대의원들에게 파업을 호소하기 위해 대의원대회에 참관했다.
대의원대회는 부당 징계가 철회될 때까지 전 공장이 주야간 4시간씩 부분 파업을 벌일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 날 밤 10시에 위원장이 조립3부를 방문했다. 김우용 씨는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차체에 묶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위원장은 김우용 씨에게 쇠사슬을 풀라고 설득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상집 간부들이 보수적 행태를 사과하지 않으면 쇠사슬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우용 씨와 대의원들은 위원장에게 파업 약속을 다시 한 번 다짐받은 뒤에 쇠사슬을 풀었다.
1월 28일 10시 30분, 주간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집회에는 7백∼8백 명이 참가했다.
회사는 항의 파업에 놀라 후퇴했다. 그 날 오후 회사는 1차 해고 통지를 철회했다. 그리고 노사 동수로 이뤄진 ‘징계 원인 파악을 위한 노사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기아차 회사가 하룻만에 ‘백기’를 들자 기업주들과 〈조선일보〉 등 우익 언론들은 “노조측에 끌려다녔다”고 불평했다.
저들이 불평을 늘어놓을 만큼 통쾌하고 짜릿한 승리였다.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게 항의 파업을 조직한 것이 실로 중요했다.
회사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우리는 이제 정부와 경찰의 노동자 탄압에 저항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쪽으로 시급히 옮아가야 한다.
지난해 6월 경제자유구역법 반대 투쟁과 11월 노동자대회와 관련해 김우용 씨를 포함해 7명이 수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