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과 파장:
추악한 사법권력과 공범들을 향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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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낳고 있다. 잘 만든 영화여서 그럴 테지만,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은 영화 너머에 있는 잘못된 현실을 바꿔 보고 싶은 마음이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다. 또, 영화 속 사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의 고난을 몇 년간 옆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이번 계기로 진상이 밝혀지고 그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언론은 여전히 이 사건을 “석궁 테러 사건”이라고 부르며 김 교수한테서 테러리스트의 오명을 벗겨 주지 않는다.
내가 처음 김 교수를 만난 것은 2007년 9월 성동구치소에 면회 가서였다. 그때는 이미 ‘석궁 사건’이 일어난 지 8개월이 흘렀고 1심 재판이 막바지로 가던 때였다. 그는 재판이 파행으로 흐르고 검사가 ‘살인 미수죄’로 징역 10년을 구형하자, 법정 출석이 더는 의미없다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단식은 32일 동안 계속됐다. 실신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교도관과 의사들이 손발을 묶고 강제로 링거를 투입했다. 그때 나는 그의 무죄를 확신했다.
무죄
김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미시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사회의 이른바 ‘엘리트’였다. 그는 세상이 법대로만 돌아가면 아름다워지리라고 믿던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대학 사회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 줬다.
자존심 강하고 원리 원칙 따지는 그는 공정해야 할 입시 고사의 오류를 적당히 덮어 버리는 사태에 치를 떨었다. 그의 정당한 문제 제기가 올바로 처리됐다면 ‘석궁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헌법은 “교원 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있지만 구 사립학교법에는 교원 재임용 절차와 관련된 규정이 없었다. 사학 재단은 이 악법을 이용해서 마음에 안 드는 깐깐한 교수들을 멋대로 교단에서 쫓아냈고, 김 교수도 1996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2003년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2005년에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재단이 마음대로 임용권을 휘두를 수 있게 보장해 주는 내용은 남았고, 이것을 근거로 사법부는 성균관대학교 재단(삼성)의 손을 들어 줬다.
이런 결정을 내린 판사들 가운데 일부는 재단의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들과 같은 법무법인에서 일했거나 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그래서 김 교수의 투쟁은 이제 “법을 고의로 무시하는 판사들”과의 ‘전쟁’으로 번져 갔다. 김 교수는 재판 기간 내내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감행했다. 판사들의 이름을 공개 거명하면서 규탄했다. 그 덕에 가뜩이나 권위적인 판사들은 괘씸하게 여겼지만, 김 교수는 수많은 사법 피해자들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김 교수의 용기 있고 거침없는 투쟁에 박수를 쳤다.
나는 김명호 교수 석방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그를 지지하는 사법 피해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덮고 누명을 날조한 법조 권력에 적개심을 드러냈고, 일부는 차가운 거리에 나와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김 교수가 석궁을 가지고 박홍우 판사의 집을 찾아간 행위를 정당한 ‘국민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석궁을 가지고 간 건 일종의 시위였고, 김 교수는 박홍우 판사뿐 아니라 부조리한 사법부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주로 법을 아는 사람들)은 어찌됐든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간 것 자체가 범죄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석궁 사건’이 터지고 사법부가 법원장 회의까지 열어 “법치주의에 도전하는 테러”로 규정하던 당시에도 “나도 석궁을 들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 많았다. 그 만큼 사법 권력에 대한 불신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뿌리 깊은 불신
영화에서 김 교수는 “법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변호사는 “법은 쓰레기”라고 말하는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무엇이 맞을까? 얼마 전 재판에 갔다가 한 인권변호사가 “국가보안법은 쓰레기 악법이지만 형사소송법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인신 구속 절차를 규정해 놓은 형사소송법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나름 정교하게 짜여 있다. 오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이 피를 흘린 대가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권력자들은 악법은 철두철미하게 적용하면서, 투쟁의 성과가 반영된 법의 좋은 내용은 따르지 않는다. 게다가 그 대상자의 부와 권력 차이에 따라 법 적용이 확연하게 갈리기 때문에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유행어가 진리처럼 굳어졌다.
이것은 ‘석궁 사건’ 재판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결정적 증거인 ‘부러진 화살’이 사라졌고, 의문 투성이인 피해자 옷가지의 혈흔도 감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의를 제기하는 김 교수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석궁 사건’뿐이겠는가?
얼마 전 나는 국가보안법 ‘왕재산 사건’ 1심 공판을 방청하러 갔다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요원들이 ‘피의자’들의 집과 사무실에 들이닥쳐 사건과 관련 없는 자료까지 불법적으로 싹쓸이 압수해 갔는데, 검찰은 이런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반국가단체 설립’ 혐의를 입증하려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반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검찰의 손을 들어 줬다.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 훼손죄’로 정봉주 전 의원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허위 사실’ 여부 입증 책임을 피고인에게 돌리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그 사건의 재판장이 ‘석궁 사건’의 ‘피해자’인 박홍우 판사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범한 사람들은 권위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사법부의 흑막 뒤에서 벌어지는 구린내 나는 일들을 알지 못한다. 그저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 나올 때마다, 분루를 삼킬 뿐이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결한다’는 사법부가 이럴진대 정권의 수족 노릇하는 검찰이나 경찰 같은 수사기관들의 공정성은 말할 것도 없다. 선출 절차도 없이 권력을 틀어쥔 법조 관료들이 권력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에게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실태는 민주주의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만일 지배자가 장막 뒤에서 줄을 당기고 있는 걸 대중이 알게 되면 더는 “법의 정의”를 신뢰하지 않고 지배자들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쏘아댈 것이다.
거세게 불고 있는 ‘〈부러진 화살〉 현상’은 정당성이 무너진 사법 권력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3법부(입법, 행정, 사법)가 사실은 한 몸인데다 그 뒤엔 거대한 자본이 버티고 서서 이를 조종하고, ‘권력의 감시자’라는 언론이 이를 방조하는 모습이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는 현실에서, 법관선출제든, ‘국민참여재판’의 확대든 사법 권력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부러진 화살〉로 드러난 민심은 그걸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