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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다 ①:
부의 축적과 빈곤의 축적

 2008년 서브 프라임 위기, 그리고 최근의 유로존 위기까지 세계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거듭하고 있다. 다른 한편 아랍 혁명, 월가 ‘점거하라’ 운동 등 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리엘 루비니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옳았다’ 하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분석과 통찰에서 어떤 측면이 옳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감과 과제를 던져 주는지 연재를 시작한다.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가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벌써 스무 번째 죽음이다. 그런데 이 소식과 나란히, 국내 상류층을 타겟으로 한 최대 10억 원짜리 초호화 스키장 ‘소노펠리체’의 분양권이 출시 1년 만에 다 팔려 나갔다는 소식도 들려 왔다. 긴 말을 할 것도 없이 (한나라당조차 “경제 민주화”를 얘기할 만큼) 한국 사회는 끔찍하게도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워킹 푸어’라는 말이 보여 주듯, 이제 노동자들은 일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진다고 느낀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 출산, 연애를 포기했고, 나이든 사람들은 다만 빚이 대물림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가난에 직면한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해고, 저질 일자리, 물가 폭등, 늘어나는 가계 빚에 허덕이는 동안, 최근 삼성·현대자동차·에스케이·엘지 같은 거대 기업들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 거대 자본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오히려 매출이 연 평균 16퍼센트씩 증가했다.

몇 가지 통계를 보자. 최근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0년 가계금융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전체 순자산 중 47.2퍼센트를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한다. 반대로 하위 50퍼센트가 보유한 순자산은 전체의 8.9퍼센트밖에 안 된다. 최하위 10퍼센트는 빚이 더 많다.

또, 지난 10년 동안 소득불평등이 더 심해졌다. 종합소득세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 간의 1인당 소득 격차는 1998년 17.7배에서 2009년 45.5배로 1백50퍼센트 이상 크게 늘었다.

이런 불평등과 가난은 전 세계적 현상의 일부다. 현재 미국에는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식권에 의존해 살아가는 빈곤층이 4천5백만 명(미국인 6명 중 1명)이나 된다. 그런데 세계적 미디어 그룹인 비아콤의 경영진 3명은 지난해 5백17억 원어치 보너스를 챙겨갔다. 그것도 현금으로만! 미국에서 상위 1퍼센트가 보유한 순자산은 일반 가정 순자산의 무려 2백25배다. 제3세계의 사정은 더 참혹하다.

지난해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배경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있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1퍼센트의 배만 불리고 99퍼센트는 빈곤의 늪으로 빠뜨리는 현실을 목도했고, 그 이유를 분석하려 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반면, 무언가를 얻는 자들은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일하지 않고서도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다. 공장·기계·건물 등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산수단을 독점한다는 이유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지 등을 결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잉여를 획득한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이런 권한이 없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한편,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자본들 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조직된다. 새로운 기술과 기계를 도입해 생산성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지고 파산할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축적하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노동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쥐어짜야 할 필요성도 여기서 생긴다.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을 위한 경쟁”이 지상 최대 과제가 되고 모든 것은 이윤 추구에 종속된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는 껴들 틈이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편에서는 부의 축적이,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의 축적”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경쟁 압력 때문에 부단히 생산성을 혁신한 결과 생산력을 놀랄 만큼 발달시켰지만, 생산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 있기 때문에 그 결과물과 자원들이 다수 대중의 필요를 위해 쓰이지 못하게 됐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식량이 모자라서 배를 곯았다면, 자본주의는 식량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굶주리는 정신 나간 체제다. 최근 한국에서도 소 값 폭락으로 농민들은 멀쩡한 소를 굶겨 죽여야 하는 판국인 반면,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쇠고기가 비싸서 사 먹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생산을 결정하는 한 끔찍한 빈곤과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태생적으로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생산을 결정하고 사회의 부를 인류의 삶을 향상하는 데 쓸 수 있는 새로운 생산 체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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