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투쟁 1천 일:
단결 투쟁으로 21번째 죽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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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쌍용차 파업이 일어난 지 1천 일이 다 돼 가는 지금, “살인 해고를 철회하라”는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1월 20일 사망한 강모 씨는 냉혹한 사측한테 두 번이나 해고되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2009년 회사에서 쫓겨난 뒤 계약직으로 재고용됐다가 최근 또다시 해고됐다. 두 번이나 폐휴지 취급을 당한 고인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심장마비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벌써 스무 번째 죽음이다. 이 비극적 죽음의 행렬은 2009년 대량해고 이후 계속됐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쌍용차 출신’이라는 낙인을 안고 거리를 헤매며, 신용불량과 가정 파탄에 신음하며, 고용불안과 사측의 감시에 시달리며 죽음의 그림자와 만나고 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강력한 저항이었다. 쌍용차 대량해고를 구조조정의 시금석으로 여긴 지배자들은 포화를 집중했고, 노동자들은 77일간 목숨을 건 점거파업을 벌이며 맞섰다.
쌍용차 투쟁은 누가 경제 위기의 대가를 치를 것인지를 두고 계급 간 긴장과 갈등이 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또다시 유로존발 위기가 세계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지금, 쌍용차 파업의 교훈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경제 위기
‘강경 투쟁은 쌍용차처럼 공멸한다’는 일각의 평가는 이 투쟁이 남긴 진정한 교훈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한다. 쌍용차 파업 이후에도 현대차 비정규직, KEC, 유성기업 등의 투쟁은 공장을 점거하며 강력하게 싸울 때 진정으로 지배자들을 위협하며 투쟁의 초점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밀려난 뒤에는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할 사회적 연대도 중요하다. 깊어지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한 부문에 대한 공격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노동자 단결과 연대는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 투쟁도 정치적인 투쟁이 돼야 한다.
쌍용차 투쟁 당시에도 4·29 재보선 이후 끓는 민심이 노무현 사망 정국에서 거리의 정치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를 상당히 압박하며 쌍용차 진압을 늦추는 효과를 냈다. 그러나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민주당 의존은 투쟁을 잠재우는 구실을 했고, 숨 고를 여유를 갖게 된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향해 살인 진압에 착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전국적 힘을 집중해 연대를 건설하며,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을 결합시키며 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 선거와 민주통합당과의 연대에만 매달리며 투쟁을 이에 종속시키며 주저하고 요구를 낮추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은 2월 15일 투쟁 1천 일을 앞두고 대규모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희망버스의 연대 투쟁에 고무받아 지난해 말부터 공장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며 투쟁을 재점화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말 혹한 속에 치러진 ‘1차 포위의 날’에 7백여 명이, 올해 1월 2차 행동에 3천여 명이 모이는 등 연대도 확대되고 있다. 조직 노동자들의 대거 참여가 인상적이다.
2월 11~12일에는 투쟁 1천 일을 기념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김영훈 위원장은 “5천 명 이상 동원하자”고 호소했다.
이명박 정부가 침몰하는 지금, 이런 연대 조짐은 쌍용차 투쟁에 기회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활동가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기층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정치적 주장을 하며 단결과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쌍용차 희망텐트 3차 포위 작전
더 분노, 행동하라!
2월 11일 ~12일, 평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