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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 별 내용 없는 선거 드라마

미국 대선 - 별 내용 없는 선거 드라마

마이크 데이비스

11월 대선에서 조지 부시에 맞설 민주당 도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일련의 투표가 미국의 각 주를 돌며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작과 비평)의 지은이인 마이크 데이비스가 미국 대선 관련 쟁점을 살펴본다.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느끼한 얼굴에 광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배로인퍼니스의 성매매업소들과 선술집을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과 악수하고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그리고 노동당 지도자 선출과 관련해 리버풀이나 글래스고보다 콘월이나 에식스에 더 커다란 전략적 영향력을 부여하는 선거 제도가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리버풀과 글래스고는 대규모 노동계급이 거주하는 대규모 공업도시인 반면, 콘월과 에식스는 주로 중간계급적인 소도시이다.]

이 제도를 따른다면, 언론이 승리자에게 성유를 바르고 도박사들이 내기 돈을 챙긴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런던에서 투표가 진행될 것이다.

똑같은 미친 논리가 미국 민주당 예비경선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다. 민주당은 큰 주들에 앞서 아이오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작은 주에서 먼저 예비선거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 뉴욕의 공공부문 노동자들, 일리노이의 흑인들 등 미국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주요 집단들이 그 규모나, 혹은 유권자로서의 역사적 중요성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공정하게 말하면, 로봇처럼 떠들면서 정성스레 인품을 가장한 후보들은 이 제도를 통해서 진짜 민중들과 짧지만 직접 접촉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제도는 경선 과정이 대도시와 주요 산업 중심지에 도달하기 오래 전부터 후보자의 이미지와 경선 쟁점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전략적 특혜를 기업 언론에 부여했다.

역겹지만 전형적인 예로,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가장 강력하게 성토했던 하워드 딘을 언론들이 아이오와 예비선거 이후 집단적으로 공격한 것을 들 수 있다.

울부짖는

아이오와 예비선거 날 밤에 하워드 딘이 울부짖는 모습(지지자들을 기쁘게 하려는 고함이었다거나 신경쇠약이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은 몇날 며칠 동안 계속 방송됐다. 〈뉴욕 타임스〉는 시청자들이 그 장면을 보통 스무 번은 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루퍼트 머독의 폭스 뉴스처럼 럼스펠드의 과대망상증 환자 같은 표정이나 부시의 멍청한 웃음에 눈을 감아 줬던 매체들이 이번에는 딘이 미친놈이라고 대중의 귀에 속삭였다.

딘 자신은 버몬트 주지사라는 대단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는 평범한 중도파 민주당원이지만, 그의 선거 운동은 1972년에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서 후보 지명된 조지 맥가번 이후 볼 수 없었던 공포와 강한 혐오를 엘리트들 사이에서 불러일으켰다.

딘의 선거운동(전형적 민주당원들에 의해 신속히 개조돼 오른쪽으로 이동중이다)은 원래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에 민주당 지도부가 맥없이 굴복하면서 생긴 정치적·도덕적 진공을 메우며 성장했다. 딘은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다른 민주당 후보는 감히 말하지 못했던 단순한 사실, 즉 현재 미국 대통령은 석유 부자와 기독교 광신도에 의해 조종되는 멍청이 전쟁광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에 분노한 학생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딘은 성공적이었던 자기 선거운동의 희생자가 됐다. 딘에게 압력을 받은 다른 민주당 후보들, 특히 존 케리와 존 에드워즈가 이라크 사기극에 반대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아주 오랫동안 타협과 위선으로 방부처리됐던 케리가 갑자기 과거 자기 모습(1972년 의회 앞에서 미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감동적으로 비판했던 전투적인 반전 참전용사)의 희미한 잔영을 드러냈다.

아이오와 예비선거 직전 며칠 동안 테디 케네디와 참전용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케리는 “강경한 비둘기파”로 다시 태어났다. 한편, 반전 쟁점에 대한 독점을 상실한 딘은 국내 문제에서 주저앉았다. 그의 보건·세제개혁·복지 정책은 다른 후보자들과 차이가 없었다.

2등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미국을 되찾자”는 호소는 “두 개의 미국”이라는 구호를 통해서 더 선명하게 ‘우리 대 저들’의 구도를 제시한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 앞에서 소용이 없었다. 공장 지대 출신임을 내세운 에드워즈는 경기후퇴와 노조 와해를 겪은 아이오와의 정육포장업 도시들의 고통을 겨냥한 연설에 힘입어 뜻밖에 2등을 차지했다.

에드워즈는 유력한 경쟁자 지위를 굳히기 위해 이번 주에 실시된 예비선거에서 자기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해야 했다. 케리는 미주리와 애리조나에서 당선돼 자신의 우위를 굳히려 했다.

한편, 딘은 3월 초 대규모 주들에서 펼쳐지는 “수퍼 예비경선”이 마침내 그의 핵심 지지자인 대학생과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발언 기회를 줄 때까지 힘겹게 버텨야만 한다. 베오그라드 폭격을 지휘했고 클린턴의 비밀 후보인 웨슬리 클라크 장군은 카리스마적 영웅이라기보다는 뻣뻣하고 생동감이 없는 입간판(立看板)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시가 다시 즉위할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적어도 몇 주 동안은 박진감 넘치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별 내용은 없는 드라마이다.

겉으로는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딘을 포함한 모든 민주당 지도자들은 새로운 빌 클린턴(모든 후보들이 그에 대한 존경심을 고백했다)이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 후보들 중 어느 누구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해(다만 목표를 좀더 명확히 해서), “국토방위”와 국민적 공포분위기 조성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한편으로, 케리는 유명한 세계무역기구(WTO) 지지자이고, 에드워즈는 부유한 소송 변호사이며, 딘은 보수적 재정정책으로 악명이 높다.

결국 반부시 후보는 이라크로부터 “신속한”(즉각적이 아니다) 철수와 조지 부시가 대부호들에게 약속한 세금감면 정책을 취소하는 클린턴의 복제품이 될 것이다. 어쩌면 “프리덤” 프라이가 다시 프렌치 프라이가 되고, 폭격 목표를 선정하면서 가끔 동맹들에게 상담할지도 모른다.[프랑스의 시라크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지 않은 데 대한 반발로 미국 우익이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고쳐 부른 사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11월의 대선은 불행히도 부시의 “막 나가는 제국주의”와 민주당의 “보통 제국주의” 사이의 선택이 될 것이다.

한편, 랠프 네이더는 녹색당 후보에서 사퇴했고, 녹색당은 11월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두고 심각하게 분열해 있다. 저명한 진보주의자들도 헤매고 있고, 그 중에서도 마이클 무어는 “멍청한 백인” 웨슬리 클라크의 선거 유세를 돕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3당 세력이 행동 통일을 할 여지는 남아 있지만(아마도 캘리포니아 녹색당의 피터 카메호를 지지해), 현재로선 민주당이 다시 한번 평범한 사람들의 염원을 훔치는 데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선거 제도

예비선거(primary)라는 기이한 제도

올해 11월에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조지 부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는 두 정당 중 하나인 공화당의 후보가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또 다른 주요 정당인 민주당은 현재 후보자를 선출하기 위한 복잡한 절차를 밟고 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각 주에서 치러지는 투표를 거쳐 선출된다. 지난 달의 아이오와처럼 몇몇 주에서는 코커스(caucus)라고 불리는 일련의 집회가 열린다. 그러나 대다수 주에서는 예비경선이라고 하는 무기명 투표가 실시된다. 이 선거를 통해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대표자들이 선출된다. 이들 대표자 전원이 여름에 열리는 전국 전당대회에 참가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한다.(실제로는 거수기 역할만 할 뿐이다.) 주요한 예비경선들은 날짜가 몰려 있다. 2월 첫째 주와 3월 2일로 예정된 예비경선들이 중요하다. 예비경선에서 투표하는 사람들은 대개 두 주요 정당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지한다고 표명한 등록된 유권자들이다. 11월에 열리는 최종 대선에서는 등록된 유권자들이 모두 투표를 하게 된다.

11월 선거에서 각 주는 대통령 선거인단에 보낼 대표를 뽑으며, 이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미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해서 꼭 그 후보자가 승리하라는 법은 없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는 민주당 경쟁자 앨 고어보다 더 적은 표를 얻고서도 당선자로 선포됐다. 부시는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개표조작 의혹 속에서 플로리다주 표 전체를 가로챘다. 플로리다 주지사인 부시의 동생이 도왔다.

두 정당

대기업들이 만든 두 피조물

공화당과 민주당은 명확하게 좌와 우로 구분되지 않는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의 역사처럼 기업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에서 나온 정당의 구분에서 둘의 관계가 비롯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둘 다 거부와 대기업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으며 그들에게 완전히 종속돼 있다. 이들 경쟁하는 대기업 정당과 그 후보자들은 자신들의 부와 언론 장악력을 이용해서 선거 운동을 좌지우지하고 자기네의 정치적 지배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두 배제한다.

두 주요 정당에 도전하는 “제3당”이나 좌파 세력이 청중을 확보하기 힘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000년 대선에서 랠프 네이더가 녹색당과 많은 급진파와 좌파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입후보했다. 그가 입후보한 것은 옳았고, 그의 선거운동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네이더는 260만 표, 약 3%를 득표했다.

많은 급진파들이 부시에 반대해 민주당의 이런저런 후보들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에도 네이더처럼 대기업 후보들에게 도전장을 낼 후보가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국의 반전 저항의 분위기를 표현할 후보가 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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