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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칼럼:
한미FTA와 총선, 그리고 진보정치

한미FTA 발효일자가 3월 15일로 확정됐다. 국회 날치기 통과 직후에는 발효일자를 1월 1일이라고 말하던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발효일자가 보름 간격으로 계속 늦춰지더니 결국 미국이 말하던 발효일자에 가까워진 것이다.

애초에 한미FTA 발효일이 총선과 가까워지면 총선 쟁점이 된다고 걱정하던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권에게는 매우 안 좋은 소식이다. 미국이 한국 정치 일정보다는 미국의 FTA 이행법 101조에 따른 ‘한국의 이행과제 점검’이라는 마지막 숙제 검사를 더 중요하게 여긴 탓이다. 이 숙제 검사에는 날치기 처리한 14개 법안과 시행령 개정 등의 법안 개정 점검을 포함한다.

2월 25일 한미FTA폐기 집회 한미FTA 발효는 한미FTA 폐기 투쟁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일까? Inside US Trade를 보면, 미국이 기대했던 발효일자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오바마 방한시점인 3월 29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실무점검에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1월 발효를 말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의 숙제 검사가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던 것은 한국의 이행과제가 단순히 법개정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의회에 한미FTA 발효 후 1년 안에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약속했다. 또 미국이 추진하는 환태평양 FTA, 즉 TPP에 한국이 어떻게 가입할 것인지도 미국의 관심사다.

이 문제들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 한국 국민들이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법개정이라 할지라도 미국이 보기에는 마음에 안 드는 이행법 내용의 재개정 문제도 숙제 검사에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그 내용을 알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발효과정 논의는 외교상의 비밀이라고 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한미FTA는 그 협상 전체가 비밀이었고, 이제 협정문이 완료된 상태에서도 무엇이 이행점검인지 국민들은 전혀 알 수 없다. 한미FTA는 벌써부터 ‘헌법 위의 헌법’인 것이다.

발효날짜를 앞당김으로서 한미FTA를 총선의 쟁점에서 가능한 제외해 보려던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작전을 바꿔야 했다. 이른바 정면돌파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박근혜 씨가 2월 13일 “한미FTA가 그토록 필요하다고 강조하고서는 이제 와서 정권이 바뀌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자 조중동도 일제히 나섰다.

2월 14일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는 ‘한·미 FTA 총선 최대 쟁점으로’였고, 〈조선일보〉도 ‘박근혜, 야와 전면전 선언’을 1면에 내걸었다. 심지어 요즘 상당히 조용해지신 듯한 이명박 대통령조차 “과거 독재시대도 아니고 외국 대사관 앞에 찾아가서 문서를 전달하는 것은 국격을 매우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한마디 보탰다. 트위터를 검열하려 하고 앱을 삭제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독재’와 ‘국격’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부와 여당이 총동원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총동원

이번에도 문제는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이 됐어도 대응은 똑같았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한미FTA는 다르다”가 민주당의 답이었다. 안타깝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한미FTA 체결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명숙 씨가 지금 민주통합당의 대표다. 또 한미FTA 체결 당시 열린우리당의 정책위의장이자 한미FTA 평가위원장을 맡아 합격점을 준 인사가 지금 민주통합당의 원내대표인 김진표 씨다. 김진표 씨는 당시 한미FTA 서비스 분야의 개방수준이 낮아 “교육, 의료분야에서는 한미FTA를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고, 이번에도 “선 비준 후 재협상”안에 사인을 해 줘 지금 새누리당이 국회 날치기를 두고 ‘사실상 합의처리’라고 주장할 근거를 준 당사자다. 이들이 주장할 것이 달리 무엇일까?

노무현과 이명박의 한미FTA는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징화돼 정치적 비판이 금기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이 사실관계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민주당이 내세우고 있는 10개 독소조항 중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된 FTA와 다른 것은 자동차 관련조항 하나뿐이다.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나 역진방지,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조처, 의약품 가격인상, 중소상인 보호 불가 등등은 모두 노무현 때의 한미FTA와 전혀 다르지 않다.

2008년 경제 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도 일부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FTA 내용은 2008년 경제 위기로 더욱 문제가 커진 것뿐이지 2008년 이전에도 문제는 다르지 않았다. 바뀐 것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지금 민주당은 여당이었고 지금은 야당이라는 사실뿐이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는 그만큼,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기세를 올릴 만도 하다. 어떻게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야당 심판론’까지 들고 나온다. 보수원조를 자처하는 당답게 ‘왜 말을 바꾸었나’ 시리즈는 탈핵선언과는 거리가 먼 민주당의 ‘원전재검토’ 입장에 대해서조차 핵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다고 비판하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민주당이 왜 시원스럽게 치고 나가지 못하는가를 묻지 말자. 민주당은 보수정당이다. 또 개혁주의적 야당이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길들이기 과정을 거친다.

길들이기

조중동이 그리고 전경련이 한미FTA를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라고 지면을 기사와 광고로 도배하는 것이 단지 민주당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하는 것은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심지어 진보정당이라 하더라도 집권 과정이나 의회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이 정당을 길들인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러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민주당이 왜 인적 쇄신을 하지 못하는지, 왜 더 확실하게 자신의 입장을 진보적인 입장으로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는지를 묻는 것은 민주당이 보수정당이라는 한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민주당은 왜’가 아니다. 진보정당은 어디에 있나가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다. 노무현의 한미FTA는 이명박의 한미FTA와 함께 모두 폐기시켜야 할 것이라는 점, 일본의 핵 사고 이후 나아갈 방향은 탈핵이고 대체에너지 체제라는 점, 그리고 제주해군기지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야 할 주체는 민주당이 아니다. 고용이나 등록금, 교육, 의료 모든 문제가 그렇다. 문제는 민주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이고 사회운동이다.

민주당은 한미FTA 폐기를 주장한 적이 없다. 이것이 선거 시기라고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선거 시기에 선거를 무시하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다. 야권연대가 불가피하면 야권연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거나 야권연대 모두가 대중의 고통을 실제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문제지만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묻는 것은 ‘어떠한 정치인가’다. 여기에 대해 ‘닥치고 정치’를 이야기하고 ‘노무현과 전태일의 만남’이나 ‘야권연대’를 통한 반MB만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나아갈 길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치의 차별성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정치’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넘어서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전망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지루한 정치공방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총선 시기 한미FTA 논쟁 과정에서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신선한 목소리다. 또 진보정치가 보여 줄 수 있는 미래의 전망과 선거과정의 열린 공간을 통해 터져 나오는 사회운동과 그에 헌신하는 진보정치가 보여 줄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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