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군당국은 전 사회를 병영화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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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13일 해군 참모총장이 “해적폄하 행위”라고 민간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까지 공군에서 군 복무를 할 때, 군을 비판한다거나, 대통령을 포함한 상부 지시에 대해 불복종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 같았다. 그러나 사회는 다른 곳이라고 생각했다. 군이 잘못하고 있을 땐 비판할 수 있고, 대통령이라도 부당한 일을 하면 국민들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나니, 제대한 뒤에도 시민으로서 권리가 회복되지 않은 것인가 싶어 전 사회가 병영화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국방부는 현재 해군기지를 비판하는 한 민간인 여성의 피켓 문구를 문제 삼아 조직적인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다. 3월 8일 국방부 대변인이 보도자료를 내어 공개적으로 비판하더니, 9일 해군 참모총장이 이 시민을 검찰에 고소하고 같은 날 국방부장관은 “신성한 국방을 오도하고 해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는 비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군 최고 지휘관들이 조직적으로 민간의 언론활동에 개입해 성명과 소송을 내고, 〈국방일보〉 등 군 관련조직을 동원해 비난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국가 최대 공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군이 이처럼 한 개인을 상대로 군사작전과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데, 그 개인과 가족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얼마나 클까.
해군은 현재 제주도에서 마을주민 92퍼센트가 반대하는데도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주민 삶의 터전인 구럼비 해안가를 잇달아 폭파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군 장병이 직접 공사를 반대하는 민간인을 상대로 폭행을 가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해직언론인들이 만든 〈뉴스타파〉 3월 2일자 방송에서 해군 잠수 요원 여려 명이 구럼비 바위 앞 물 속에서 반대하는 민간인을 집단 구타하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동영상이 보도되기도 했다.) 대통령령 군인복무규율에서 ‘국군의 이념’은 “국민의 군대”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방부는 지금 해적이란 비판적 표현을 문제삼고 있지만 실제 해적만도 못한 일을 지금 대한민국 해군이 제주도에서 벌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번에 군은 우리나라 성인 상당수를 차지하는 제대 군인들의 낮은 자존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민간 여론에 개입해 ‘국가 대 주민’이란 논쟁 구도를 ‘남성 대 여성’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은 제대군인 지원제도가 있긴 하지만 장기 복무 간부들을 중심으로 제도가 짜여 있고, 병사 출신 제대 군인들은 군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스스로 극복하고 사회에 복귀해야만 한다. 이것을 잘 아는 국방부는 이러한 현역/제대 병사들의 분노가 또래 20대 여성을 향하도록 부추겼고, 일부 남성들은 미필자 여성이 군대를 욕한다며 군 복무 중 쌓아온 가슴속 응어리를 인터넷 상에서 이 여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표출했다. 국방부가 제대 군인들의 사회 적응을 지원하고, 군 복무 중 병사들의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도록 병영 내 병사 복지시설 확충, 가혹행위 방지 노력, 병사 인권증진 방안을 마련하는 등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대신, 제대 군인들의 상처받은 가슴을 충동질하여 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활용해 사회 갈등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군이 국내 정치에 개입 않고 대외 국방에 전념한다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30년 군사독재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우리 국민들이 얻은 값비싼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 전부터 이 원칙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2009년 군 기무사령부 소속 군인이 민간 집회에 잠입해 카메라를 찍다 적발됐으나, 기무사가 오히려 이 캠코더를 빼앗은 민간 대학생을 공무집행방해와 강도상해죄로 경찰에 고소해 결국 대학생이 10개월간 실형을 살다가 출소한 사건, 2011년 서울 송파지역 소재 ‘국군 기무사 210 방첩부대’가 전남 조선대학교 총장선거에 나온 유력 후보의 이메일을 해킹해 경찰에 적발된 사건, 2012년 민간 팟캐스트 방송 검열사건 등 다시 군인이 정치 일선에 끼어드는 듯한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군은 민간 사회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개입하여 검찰에 민간인을 고소하는 등 민간사회 여론 개입을 즉각 중단하고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마땅하다. 제주도에서도 해군은 정부와 주민 간 갈등에 개입해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될 때까지 기다리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국민의 해군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건과 같은 군의 정치개입 행위가 근절되도록 군 사법제도(군사 법원, 군 검찰)의 민주화 등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