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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부르는 정부의 거짓말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의 등장, 정부와 과학자들의 사실 축소·은폐, 거짓말, 질병의 급속한 확산과 치명적 결과, 폭로, 뒤늦은 대책.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전 세계를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1)

1999년 당시 18세의 프랑스 소년 아르노 에볼리는 갑자기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은 이 소년이 일시적으로 그런 상태에 빠졌거나 혹은 치매인 줄로만 알았지만, 병원에서 수 차례 검사를 받은 끝에 인간 광우병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vCJD)'임이 확인되었다. 병원에서 찍은 아르노의 뇌 사진에는 군데군데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의사들은 치료할 방법도, 약도 없으며 아르노의 수명은 이제 18개월 남았다고 가족들에게 전했다. 아르노의 가족은 1주일에 한번 정도 슈퍼마켓에서 쇠고기를 사 먹었지만 썩은 고기나 내장류를 먹은 적은 없었다. 아르노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햄버거를 즐겼을 뿐이다. 아르노의 가족들은 지난 17일 광우병 확산을 방조한 프랑스와 영국, 유럽연합(EU)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문화일보〉 2000년 11월 29일치.)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광우병은 소의 뇌를 파괴하는 전염병이다. 광우병에 걸리면 소의 뇌는 마치 스폰지처럼 구멍이 뚫린다. 이 병에 걸린 소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고 마치 미친 것처럼 사람을 향해 돌진하기도 한다. 한번 발병하면 몇 주 만에 죽게 된다.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은 애초에는 노인에게서만 나타나는 질병이었고 치매와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서야 이 병이 치매와는 달리 급속히 뇌를 파괴하는 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의 뇌는 스폰지처럼 변하고 커다란 구멍이 여기저기 뚫렸다.

광우병이 전 유럽을 한차례 휩쓸었던 1994년에 처음으로 젊은이들과 어린 아이들에게서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이 발견됐다. 이 병에 걸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여서 과학자들은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의 변종으로 생각했고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이라고 이름붙였다.

사람들은 이 병이 광우병과 연관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맨 처음 이 병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영국 정부와 과학자들은 "잘 모르겠다"는 말 대신 "밝혀진 연관성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수백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기는 했지만 사장들의 이윤을 고려해 그것이 시중에 판매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은 몇 십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고 나서야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vCJD, variant Creutzfeldt-Jacob disease)이 광우병과 연관이 있음을 인정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물질이 인간 광우병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을 일으키는 물질과 같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2)

인간보다 이윤을

영국과 유럽연합은 1996년부터 영국에서 사육된 모든 소와 축산물의 수출을 금지했다. 과학자들은 소의 몸에서 추출된 물질들(아교나 젤라틴 등)에 의해서도 광우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상품들도 수출을 금지했다.

그런데 1999년 유럽연합(EU)은 몇 가지 조건을 달아서 수출 제한 조치를 없앴다. 그래서 도살될 당시에 30개월이 안 되고, 한 번도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없는 농장에서 자라며, 뼈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인 경우에는 수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이 소들이 광우병에 전염되지 않았음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 뼈만이 아니라 내장이나 기타 부속물에 의해서도 감염된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고, 광우병에 전염돼도 4∼5년 뒤에나 발병하기 때문에 당장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그리고 송아지만 키우는 목장은 거의 없기 때문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프랑스가 영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치를 유지하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프랑스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리기까지 했다. 유럽연합 보건담당 집행위원 데이비드 번은 해제 시한인 2000년 11월 16일까지 프랑스가 영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집행위에 이를 보고하고 프랑스에 대한 사법처리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영국의 유명한 과학잡지인 〈뉴 사이언티스트〉는 2001년 2월 10일자 호에서 영국 정부가 음식물 사료(동물의 뼈나 내장 등을 갈아서 식물과 섞은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것이 광우병을 확산시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로 지난달까지 음식물 사료를 수출했다고 비난했다. 영국으로부터 광우병이 확산된 유럽도 지난달까지 음식물 사료를 수출했다. 이 잡지는 이제는 인도네시아나 태국 같은 나라들이 이 질병에 맞닥뜨리게 됐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또, 지난 8일에는 미국의 5개 거대 제약회사가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있는 소에서 추출된 원료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회사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3), 아벤티스, 아메리칸 홈 프로덕트, 바이오포트, 노스 아메리칸 백신 등이다. 이 제약회사들이 만든 9개 백신 중에는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파상풍을 예방하기 위해 수백만 명의 미국 어린이들이 정기적으로 접종하는 주사약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중동 걸프 지역에 근무하는 미군들이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탄저병 예방 백신도 들어 있다.

김대중 정부의 거짓말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되어 끔찍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1996년에 확인되자 광우병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포의 대상이 됐다. 광우병 공포가 우리 나라에 알려진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러나 당시 농림수산부는 지금까지 우리 나라가 수입한 쇠고기는 모두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산이며, 영국과 아일랜드로부터는 생우는 물론 쇠고기나 부산물 등을 수입한 적이 전혀 없어 광우병의 원인균이 국내 유입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음식물 사료4)에 의해 광우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혹이 다시 제기되면서 광우병 파동이 일자 농림부 장관 한갑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음식물 찌꺼기에 포함될 수 있는 동물용 사료의 양이 극히 적은 데다, 일부 섞여 있다 해도 광우병 무발생 지역인 우리 나라와 미국·호주 등의 소가 100퍼센트이기 때문에 광우병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이 곧 드러났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 2월 4일치는 영국내 최대 음식물 사료 제조업체인 프로스터 드 멀더 사가 지난 1988년 7월 영국 정부가 음식물 사료를 양과 소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 이를 돼지와 가금류 사료로 전 세계에 수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럽 이외 지역에서 이 사료를 수입한 주요 국가들이 한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케냐, 레바논, 몰타, 사우디 아라비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등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지난 1990년 광우병 확산 우려 때문에 음식물 사료의 수입을 금지하자 이 회사는 EU 이외의 지역으로 수출을 전환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폭로된 사실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했다. 정부는 "수입은 했지만 사료용이 아니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이것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바로 다음 날인 2월 6일, 정부가 1998∼1999년에 소 3백여 마리를 음식물 찌꺼기 사료를 먹여 키운 뒤 도축해 전국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정부는 음식물 사료를 먹여도 이상이 없다며 서울시내 일부 구청을 통해 축산 농가에 음식물 사료를 대량 공급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경우 음식물 사료를 먹여온 소가 8백여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일었을 때 정부는 영국과 북아일랜드산 쇠고기와 소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류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1996. 4. 2)를 내렸다. 그러나 이 조치는 곧 후퇴했다. 바로 다음 달부터 외국에서 수입한 소를 원료로 사용해 제조한 가공 제품이라는 영국 정부의 증명서만 있으면 수입을 허용했다.

또한 소 가죽을 원료로 만든 젤라틴이 함유된 당류가공품 '어소티드 슈거 스트랜즈'가 지난 1996년 5월부터 1999년 7월까지 영국에서 75.6톤 가량 수입됐다. 1999년 8월부터 2000년 말까지 소 원료 가공 식품인 당류가공품이 영국에서 64.5톤이 수입돼 유통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기 어려워지자 이제는 변명도 대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월 20일치 〈조선일보〉에는 김대중이 쇠고기를 먹는 사진과 함께 "한우는 안전하다."는 기사가 실렸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스위스와 독일 정부의 위선

최근 스위스와 독일은 광우병 파동으로 국내 쇠고기 소비가 감소하자 자기네 나라에서 도축된 소를 북한에 원조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독일 소 20만 마리 분을 원조받기를 원한다고 밝히자 독일 육류산업연맹은 어차피 도살될 소를 북한에 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라고 독일 정부에 요구했다.

스위스 정부는 최근에 '1급 쇠고기' 7백∼9백 톤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파스칼 쿠스팽 스위스 경제장관은 자국민들로부터 쇠고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7백만 프랑의 예산을 들여 쇠고기를 국제 원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엄청난 위험에 빠뜨리는 짓이다. 북한에 원조해서 몇 년 동안 관찰해 보고 별 이상이 없다면 자기네 나라의 쇠고기 소비가 다시 증가할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일종의 '실험'인 것이다.

이에 대해 〈르 몽드〉 지는 2월 20일치에서 스위스 정부가 국내 소비자들도 외면하는 쇠고기를 기아에 시달리며 원조를 호소하는 북한에 보내기로 한 결정을 비난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미치지 않았다면 스위스 소가 북한을 구할 텐데"였다. 〈르 몽드〉는 "스위스에서 지난해 광우병 발생 건수가 소리 소문 없이 30건을 기록했지만, 스위스 당국은 여론이 요구하는 예방 원칙을 적용할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을 위험한 장기의 쓰레기장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기아에 시달리던 지난 몇 년 동안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유럽의 정부들이 '원조'라는 명목으로 광우병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큰 쇠고기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 사람들은 왜 '1급 쇠고기'를 안 먹는지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대책을 외면하는 각 나라 정부들

광우병이 발견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은 아주 적다. 광우병을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일으킨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지만 이견도 여전히 많다. 광우병에 걸리면 왜 뇌가 파괴되고 죽어가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광우병이 전염병이라는 사실 한 가지뿐이다.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광우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당황하고 있다.5) 광우병과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을 치료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10여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오로지 전염을 통한 확산을 차단하는 것만이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책이다.

영국에서는 1986년부터 2000년까지 모두 18만여 건의 광우병이 보고되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영국에서 전염되지 않은 것은 1천3백여 건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대부분의 소는 영국에서 수출한 소와 음식물 사료에 의해 전염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영국산 소와 축산물의 수출이 금지됐던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광우병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도, 유럽 나라들의 정부도 그리고 남한 정부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보다 사장들의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사장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을 축소·은폐하고, 은근슬쩍 수출입 금지 조치를 풀어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있는 쇠고기와 축산물을 유통시킴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새로운 질병은 때로는 치료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이 더뎌서 그랬던 적은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질병은 설사다. 단돈 2∼3달러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빈곤 때문에 죽는다. 평균 감염률이 20퍼센트에 달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에이즈 환자들은 거대 제약회사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권 때문에 약을 사용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질병은 치료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예방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청결한 환경은 병에 걸릴 가능성을 낮춰 준다. 단지 상하수도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 간단한 예방 접종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을 피해갈 수도 있다. 광우병이나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은 그것이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예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각국 정부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모두 죽여 없애고 다른 지역으로 수출되거나 수입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는 지역에서는 대대적인 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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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웃브레이크'는 영국 정부가 광우병을 축소·은폐해 질병을 확산시킨 것을 풍자한 영화다.

2) WHO Fact Sheet N?113 Revised December 2000

3) 글락소스미스사는 브라질·타이·인도 등의 나라들이 값싼 에이즈 치료약을 만들려 하자 이들 나라들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던 회사다.

4) '동물성 사료'가 광우병의 전염 원인인데 이것은 도살된 소의 뼈나 내장을 분쇄기로 갈아서 만든 사료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나 언론에서는 '동물성 사료'라는 말이 너무나 분명히 광우병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주로 '음식물 사료'나 '음식물 찌꺼기 사료'라고 한다. 하지만 음식물 찌꺼기에도 고기가 들어있기는 마찬가지다.

5) 광우병은 전염병이다. 그런데 보통 병의 원인이 되는 인자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질 때에만 ― 증식할 수 있어야 ― 증상을 일으키고 전염시킬 수 있다.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최소한 한 조각의 DNA라도 있어야 증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바이러스는 아주 적은 양의 DNA를 갖고 있지만 스스로 증식할 능력은 없어 생물의 분류에는 포함되지 않더라도 다른 세포에 기생해서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전염성을 가진 병원체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프리온'은 단 한 조각의 DNA도 갖고 있지 않은데도 전염성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은 소나 인간의 세포를 자극해서, 이 세포가 자신과 동일한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 병을 일으키고 전염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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