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노동자의 딸이 보내는 편지:
“파업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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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이봉주 지부장의 딸 이진선 씨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 왔다.
6월 25일,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고공 농성을 위해 30미터나 되는 교통탑에 오르신 서울경기지부장 이봉주. 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멀리서나마 보고 응원하려고 의왕 기지에 다녀왔습니다. 파업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아버지가 비상 연락처를 알려주고 통장을 건네며 말씀하셨습니다.
“곧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야. 아빠, 탑에 올라가서 농성할 거야. 괜찮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식인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다녀와도 되냐고, 괜찮겠냐고. ‘이런 아버지라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응원하고 있겠다고, 안 울겠다고. ‘아빠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에 겨우 2~3시간 자고, 휴게소 화장실에서 눈치를 보며 씻고, 그렇게 화물차를 운전하셨습니다. 매일 밖에 나가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드시고 얼굴도 새까매지고, 점점 말라가셨습니다.
짐을 싣다가 떨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져 폐가 찢어졌는데도, 일을 나가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기에 며칠을 참아가며 일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라고 일해도 아버지의 손에 들어오는 월급은 1백만 원도 채 안 됐습니다. 그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몇 십만 원씩 드는 주유값을 내고, 없는 돈 긁어모아 몇 백만 원씩을 들여 차를 고쳤습니다. 식비를 뺀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10만 원도 채 안 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빚쟁이’가 됐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고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해. 아빠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너희에게 하루 한 끼조차 못 챙겨주고, 공부도 못 가르쳐 주고, 옷도 못 사줘서. 이런 한심한 아빠라 미안해.”
아버지의 한없이 아리고 아린, 당치도 않은 사과에 깊은 밤 잠 못 들고 얼마나 숨죽여 울었는지 모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랑스러운 아버지’라는 글짓기로 최우수상을 탔던 것이 기억납니다. 기뻐하던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납니다.
저희 아버지는 죄인이 아닙니다. 한심한 사람도 아닙니다. 한 달에 하루, 그것조차 쉬지 못할 때가 더 많으신 아버지. 저희 남매에게 매일 하루 세 끼 먹이는 것이 꿈이신 아버지.
저에겐 화물연대의 모든 조합원들, 비조합원들, 화물차를 운전하시는 모두가 믿음직한 넓은 어깨를 지니신, 자랑스러운 아버지들이시고 가족이십니다.
더는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 일로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웃으며 ‘다녀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하늘에 계신 엄마도 지켜보고 계실 테니까, 다녀오라고 말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30미터 상공의 탑에 올라가 계십니다.
화물연대의 목숨을 건 투쟁을 지지해 주십시오. 저에겐 단 한 분뿐인,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이 지독한 투쟁에서 이기고 무사히 탑에서 내려와 저희 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십시오.
투쟁!
이봉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장의 딸,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