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시리아:
민중의 힘을 믿고 서방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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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2만 명이 넘는 군대를 동원해서 반군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폭탄이 쏟아지고 가족들이 죽어가는 아비규환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 시리아 민중에 연대감을 느끼는 이라면, “당장 학살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에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뉴스거리가 될 때 관심 가지고 말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이런 국가의 학살에 반대하고 그 소식을 추적해왔던 이들이라면 한편으로 이런 의문이 떠올릴지도 모른다. 정말 인도주의적 개입은 학살을 막을 수 있는가? 진정 그들 민중을 고려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인도주의적 개입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좀 더 심도 높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정말 인도주의적인가
우선 서방이 진정 학살을 막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인도주의적 개입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자. 인도주의적 개입을 말할 때 흔히 “비행금지구역”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언뜻 무해해 보이는 이 단어는 실상은 공항에 대한 막대한 폭격을 의미한다. 학살을 막기 위해 폭격한다는 것도 아이러니이지만, 이런 개입마다 항상 발생했던 무고한 희생자들(공항이 인구 밀집 지역에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김해공항도 군사시설이다)에게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학살을 막기 위한 것이니 희생을 감수하라고 할 것인가?
혹자는 그래도 인도주의적 개입이 희생자 수를 줄였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 숫자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시리아의 민중은 독재에 맞서, 가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미 인도주의 개입의 세례를 받은 리비아를 보면, 개입을 말하던 언론들조차 아직 사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여전히 내전의 가능성이 있고, 새로운 정부가 예전 정부보다 낫다고도 할 수 없다.
리비아(시리아도 그렇지만)의 반란은 튀니지, 이집트로 발발한 중동 혁명의 일부다. 이 국제 혁명으로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정권을 유지하던 독재자들이 무너지면서, 서방 특히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많이 잃었다. 중동은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비호하고 이란을 위협하고 이라크를 공격하는 식으로 이 지역에서의 패권을 유지해 왔다.
이런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모르더라도 서방이 선의에서 리비아에 개입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장 학살을 막을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목표가 좀 다르면 어떠냐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서방은 바로 그 목표 즉 중동에서의 지배력을 우선했기 때문에 리비아 민중의 요구 충족시키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고 서방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다는 말은 소련 탱크가 ‘사회주의’를 가져다 준다는 말만큼이나 허황하다. 리비아 민중은 반란 전처럼 민주주의를 얻지 못했고 빈곤에 시달리고 있지만, 리비아의 부의 많은 부분을 여전히 소수(독재정권의 잔당인)가 소유하고 있다.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말이다. 아직 리비아의 사태가 봉합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방의 개입이 민중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명백하다. 들고 일어난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좋게 봐야 반란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것밖에 안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학살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는 시리아 민중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힘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좌파가 하는 자기최면적 공문구가 아니다. 이집트와 튀니지를 보자. 두 곳 모두 악명 높은 장기 독재 정권이었다. 군부가 잘 통제하고 있다느니 하며 이른바 전문가들은 두 곳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었다. 그 독재자들이 쫓겨나기 몇 달 전까지도 그렇게 말했지만,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재자를 몰아냈다.
물론 시리아는 튀니지와 이집트보다 상황이 어렵다. 40년간 저항운동이 없던 상태에서 아사드 정권의 도발로, 준비과정(이집트에서는 노동계급이 이미 혁명 전 투쟁을 통해 경험과 조직을 얻었다)도 없이 때 이르게 봉기가 일어나면서 대중투쟁이 아니라 내전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군부 곳곳에서 탈영이 일어나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현재까지 군 고위 인사 26명(약 20퍼센트)을 포함한 42명의 고위 관료가 도망쳤다. 사병의 탈영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정부의 가차없는 탄압에도 반군들이 대중 집회를 유지하며 정치적 힘을 혁명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대중 혁명의 승리는 화력을 압도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면서 얻는 것이다. 시리아의 민중은 충분히 승산 있다.
슈퍼 파워
둘째는 지금은 조금 부차적이 된 반전 운동이다. 〈뉴욕 타임스〉의 페트릭 타일러는 2003년 거대한 반전 운동의 물결을 보고 세계의 양대 슈퍼 파워가 미국과 세계 민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는 과장이 좀 섞여 있을지라도, 반전 운동은 분명 미국이 이라크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데 주요한 구실을 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은 자국 내 반전 여론에 떠밀려 철군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부가 파병하는 것을 막진 못 했지만, 정치적 부담을 안겨 전면적 지원을 막는 데는 기여했다. 반전 운동이 미국이 전비를 떠안고 고립되도록 하는 결과를 쟁취한 것이다.
한 이란 활동가는 국내에서 민주주의 관련 투쟁을 조직하다 보면,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압력이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가 미국의 위협을 빌미로 국내 불만을 진압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북한 위협을 빌미로 민주주의를 탄압해 왔던 것처럼,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빌미로 내부 불만을 제거했던 것처럼, 외부의 개입은 정권을 향한 불만을 제거하는 좋은 명분이 된다. 인도주의적 개입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이고, 반전 운동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다. 바로 자국의 파병을 막는 것으로 해당 국가의 민중 투쟁에 연대할 수 있다(한국도 파병 국가이니 충분히 기여할 여지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힘을 믿고 외부의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학살을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서방 열강에 기대서는 시리아 민중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