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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을 둘러싼 논란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2월 27일 국회의원 연구 모임 '21세기 동북아 평화 포럼'에서 한 발언은 이 논란을 한층 뜨겁게 만들고 있다.

황태연 교수는 "6·25와 KAL기 테러[에 대한] 단죄 수단이 없으니 당분간 덮는 게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매우 유보적이며 온건한 이 발언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과 자민련 등의 냉전 우익 세력은 마치 황태연 교수가 친북 좌익이나 되는 양 벌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6·25 전쟁·KAL기 폭파 김정일 사과할 일 아니다." 〈조선일보〉(2월 28일치)는 마치 황태연 교수가 북한을 옹호하기라도 한 양 1면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사실인즉, 황태연 교수는 한국전쟁과 KAL기 테러 사건이 북한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심지어 주적 개념 삭제도 시기상조라고 생각(〈조선일보〉 같은 날치 5면)하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황씨 발언은 현 정권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며 "[정부가] 김정일 답방 성사에 집착한 나머지 제 정신이 아닌 듯하다"고 김대중 정부를 비난했다. 공동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민련도 한나라당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황씨의 발언은] 개인 생각일 뿐인" "돌출 발언"이라며 황 교수와 선을 긋고는 냉전 우익 세력의 눈치를 보며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악의 화신

한나라당의 대다수 정치인들과 김영삼을 비롯한 냉전 세력은 김정일의 답방을 아예 내놓고 반대하고 있다. 김정일의 서울 답방은 6·15 공동선언에 담겨진 합의 사항인데도 말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늘 북한을 비난하던 우익이 앞장서서 공동 선언 합의 파기를 선동하고 있는 셈이다. 집권 시절에 아무 조건 없이 어디서든 김일성을 만나겠다고 선언했던 김영삼이 이제 와서 김정일의 답방을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평양에 잠입하고 "반국가단체" 인사들을 서울로 불러들이곤 했던 장본인은 바로 우익 냉전 세력이었다. 1972년 7·4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전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했고 북한의 부수상 박성철이 서울을 답방했다. 한나라당 부총재 박근혜는 김정일 답방을 두고 또다시 "대한민국 정체성"을 들먹였는데,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의 아버지 박정희야말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든 원조인 셈이다. 남북한 지배자들 사이의 비밀 또는 공식 접촉 시도는 그 뒤에도 계속됐다. 전두환은 안기부장 장세동을, 노태우는 서동권을 북한에 보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남북한의 총리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2년 동안 여덟 차례 회담을 했고, 북한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이 남한을 방문해 산업 시설을 둘러봤다.

물론 김정일의 답방은 과거에 비밀로든 공식으로든 서울을 방문했던 어떤 북한 인사보다 파장이 클 것이다. 그 동안 김정일은 북한을 대표하는 "악의 화신"이요 "테러의 주범"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광원은 김정일을 "살아 있는 최악의 폭군이며 역사의 죄인"이라고 비난했는데 김정일에 대한 3류 소설 같은 모략과 노골적인 비난은 그리 낯선 게 아니다. 기성 보수 언론들은 그 동안 김정일을 술 주정꾼, 플레이보이, 언어장애자, 조울증 환자, 기쁨조 파티를 여는 성격 파탄자 등으로 묘사해 왔다. 심지어 음침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사진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집무실 건물 옆에는 김정일이 주로 수요일과 토요일에 비밀파티를 여는 2층짜리 연회장이 있다. 1층에는 카드실, 마작방, 놀이방에서부터 룰렛 등 카지노 시설이, 2층은 대소연회장, 침실 등이 있다. 최은희 부부도 초대받은 적이 있는 비밀파티는 밤 8시에 시작해 새벽 4시에 끝나는데 전문밴드 '백두산 7중주'와 코미디언팀인 '희극조',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기쁨조' 등이 나와 흥을 돋운다. 김정일 집무실 지하실엔 10kg짜리 금괴와 달러, 보석 등이 보관된 금고가 있다. 김정일은 연회가 열리면 측근들에게 1백 달러짜리 1만 달러씩, '기쁨조'에게는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반지를 던지는 괴상한 습관이 있다.

1996년 2월 14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이 기사는 김정일을 제 정신이 아닌 괴상한 인물로 묘사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냉전 보수 세력은 휴전선 북쪽에도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다는 주장조차 '친북'으로 몰곤 했다. 역대 정권들은 "무시무시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는 두려움과 그에 바탕한 충성을 강요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해 왔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6월 TV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일이 그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농담도 할 줄 안다는 점에 남한 주민들이 충격을 받았을까.

냉전 우익 세력은 지난 50여 년 동안 남한 국가를 떠받쳐 온 이데올로기가 손상될까 봐, 그리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뒤흔들까 봐 걱정하고 있다.

그들이 꺼리는 것은 북한 통치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들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서로 포옹하고 담소를 즐기고 술을 마시곤 했다. 1991년 총리 회담차 평양에 간 정원식은 술을 곤드레 만드레 마셔 '대통령 훈령 조작'에 대처하지 못한 일화도 있다. 심지어 남북 정권은 상대 정권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출해 주기 위해 남북 대치 상황을 환기시킬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냉전 우익 세력이 진정으로 꺼리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 붕괴와 이것이 가져올지도 모를 정치·사회적 위기다. 냉전 우익 세력이 단속하고 싶어하는 것은 북한 관료가 아니라 바로 국내의 노동자·학생들이다.

전범

냉전 우익 세력은 김정일 답방 전에 과거사 사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전쟁과 KAL기 폭파 사건 등에 대해 먼저 사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책임이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남북 분단의 책임을 묻자면 그 책임은 명백하게 미국과 소련에 있다. 미국은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기 전에 소련군이 한반도를 통째로 점령할까 봐 걱정이 돼 '일반명령 1호'를 소련에 제안했다. 그것은 만주와 북위 38도 이북의 한반도 지역과 사할린에서는 소련군 사령관이, 일본과 필리핀과 북위 38도 이남의 한반도에서는 미군 사령관이 항복을 받자는 제안이었다. 소련은 한반도에 관한 한 이견을 달지 않고 이 분할 점령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잇속을 챙기기 위해 주판알을 튕기면서 우리 민족의 의사를 거슬러 한반도를 분단했던 것이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북한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북한측이 먼저 총을 쏘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조금만 이해해도 총을 누가 먼저 쏘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8선 주변의 군사적 충돌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고, 1949년 중엽부터는 남침 또는 북침에 대한 경고가 수없이 이어졌다.

당시에 남북한 정권은 무력으로라도 통일을 이루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곤 했다. 이승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호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5월에 이승만은 북한을 무력으로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을 지지해 달라고 북한 주민에게 호소하는 방송 연설을 했다. "남한의 우리들과 공동 투쟁을 벌임으로써 통일을 이룩하는 날을 기다리라. 그 날은 머지않아 올 것이다." 북한이 남침하지 않았어도 곧 남한의 이승만이 북침을 했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일어난 지 몇 주 만에 국제전으로 확대됐다. 남북 당사자는 뒤로 물러나고 어느새 한국전쟁의 주인공은 미국·중국·소련이 됐다.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전장으로 해서 벌인 미국과 중국·소련의 제국주의간 전쟁이었던 것이다. 김일성(북한)과 이승만(남한), 트루먼(미국)과 스탈린(소련)과 마오쩌둥(중국) 모두 한국전쟁의 책임자요 전범들이다.

하지만 냉전 우익 세력은 러시아와 중국에게는 정상회담 전에 과거사를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또, 한반도를 초토화시킨 미국에게는 전쟁 책임을 묻기는커녕 매년 4억 달러를 내 가며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간접 분담금까지 따지면 연간 30억 달러 정도). 북한에게만 한국전쟁의 책임을 묻는 것은 역사 왜곡이요 위선일 뿐이다.

게다가 "동족 상잔의 비극"은 남북한 사이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한국전쟁 전후에 남한의 수많은 민중이 이승만과 미국에 의해서도 학살당했다. 최근에 폭로된 미군의 노근리 학살 사건은 숱한 양민학살 사건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최소 3만 명이 학살당한 제주 4·3항쟁, 1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학살당한 여순 반란, 그리고 20∼25만 명이 학살당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을 포함해 한국전쟁 전후에 학살당한 민간인 숫자는 1백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을 학살한 학살자들이 바로 냉전 우익 세력의 뿌리다.

KAL기 북풍 의혹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때 벌어진 KAL기 폭파 사건은 숱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현희는 선거 하루 전 날 국내로 압송돼 '안보 심리'를 자극하는 극적 효과를 냈다. 이는 노태우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KAL기 폭파 사건의 진정한 수혜자는 당시 민정당[군부의 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였던 것이다.

사건이 보도된 직후부터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의문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 1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간 도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린 사람 15명 가운데 두 사람은 안기부에 체포된 마유미(김현희)와 신이치였고, 2명은 KAL기 승무원이었다. 남한 정부는 나머지 11명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에 일본 〈주간 신조〉(1987년 12월 17일치)는 이 11명이 모두 한국인이며 고위 관료라고 폭로했다. 남한 정부는 왜 이 사실을 숨겼을까? 어떻게 이들은 모두 중간 도착지에서 내릴 수 있었을까? 사전에 무언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북한은 왜 하필 대선 직전에 테러 사건을 일으켰을까? 이런 사건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북한이 ….

KAL기 사건말고도 대선과 총선 때마다 집권당의 승리를 도와 주는 북풍 사건이 벌어지곤 했다는 점은 의구심을 한층 증폭시킨다. 이미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대표적인 예가 1996년 4·11 총선 때 벌어진 총풍 사건이다. 당시에 4월 4일부터 4월 7일까지 북한군은 김영삼의 요청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무장 시위(DMZ 사건)를 벌였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이 사건은 집권당에게 4퍼센트의 득표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한나라당은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궤변엔 지하의 영혼들이 통곡할 노릇"이라고 황태연 교수의 발언을 개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속 미궁 속에 놔 두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냉전 우익 세력이다. 1998년에 당시 국정원장 이종찬이 KAL기 사건이 남북 정권이 짜고 친 북풍일 가능성을 시사하자 냉전 우익 세력은 비난의 포화를 퍼부어 이 사건을 다시 덮어 두게 만들었다.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을 반기는 것은 비단 북한 관료만이 아닐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오십보 백보

냉전 우익 세력들이 답방의 요구 조건격으로 걸고 있는 또 다른 문제가 북한의 인권 개선이다. 북한 관료가 주민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 우익 세력들은 북한의 인권 개선을 말할 자격이 없다.

만약 남한의 인권 상황이 북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지난 1980년대 후반 이래 계속돼 온 노동자와 학생 투쟁의 성과일 것이다. 냉전 우익 세력은 바로 이 투쟁에 온갖 탄압으로 대응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가 하면, 전기고문·물고문을 하고, 시위 대열의 젊은이들을 쇠파이프로 때려 죽이기도 했다.

이런 인권 탄압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들은 여전히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며 시위 대열을 향해 달려들고, 단지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곤 한다. 남한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서슬퍼렇게 살아 있고, 양심수가 언제나 수백 명씩 감옥에 갇혀 있는 인권 침해국이다. 인권 탄압 측면에서 북한과 남한은 오십보 백보다.

냉전 우익 세력이 인권을 명분으로 북한에 압력을 넣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그들은 북한의 형법을 비난하지만 남한의 국가보안법은 유지하려 한다. 그들은 북한의 공개 처형을 비난하지만 남한의 사형 제도는 존속시키려 한다. 그들은 북한에 노동조합 권리가 없다고 문제삼지만 남한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제약(복수노조 금지 등)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범 수용소를 비난하지만 남한 감옥에 넘쳐나는 양심수와 감옥의 비참한 현실에는 눈을 감는다.

미국이 북한 압박용으로 인권 카드를 꺼내려 하는 것도 완전한 위선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흉악한 독재자와도 손잡고 학살도 지원해 왔다. 해방 이후 38선 이남 지역을 점령한 미군 사령관 맥아더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와 싸우겠다는 의사를 보이면 악마라 할지라도 나는 그를 기꺼이 도울 것이다." 실제로 그는 독재자 이승만을 도왔고 온갖 학살을 지원했다. 그 뒤에도 역대 독재자와 그들의 학살에 대한 미국의 후원은 계속됐다.

북한이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국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북한 주민들의 항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미국이나 남한이 그것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는 인권 침해가 없다고 간단히 제껴 버린다. 모두 언론의 왜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모두 냉전 우익 세력 취급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지난해 엠네스티에 직접 보고한 것만 봐도 정치범 사형, 결사의 자유 제한 등 명백한 인권 침해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정치범수용소, 탈북자 문제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권 문제다. 만약 북한에 인권 문제가 없다고 제껴 버린다면 북한 주민들이 시민적·정치적 권리 획득을 위해 투쟁할 때 그들을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위선

김대중은 냉전 우익 세력의 공세에 거듭된 타협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는 황태연 교수 사건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일"이라며 외면했다. 김대중 정부의 소심함과 한심함은 주적 개념 논란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김대중 정부의 국방장관 조성태는 "북한은 군사적으로 여전히 현존하는 위협"이라며 "북한이 대남 군사 전략을 명백히 수정하지 않는 한 주적 개념 변경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주적 개념은 1994년 김영삼 정부조차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삭제했던 것이다. 물론 냉전 세력의 집요한 반발에 밀려 이듬해에 부활시켰지만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면서 실제로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보다 무기를 사들이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을 쓴다. 김대중 정부 들어 지금까지 북한에 지원한 돈은 전부 1억 8천만 달러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미국에서 무기를 사들이는 데는 30억 달러를 썼다(매년 10억 달러씩). 30억 달러는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수출 포기 대가로 미국에 요구했을 만큼 북한에겐 큰 돈이다(3년간 해마다 10억 달러씩 제공 요구).

김정일 답방을 환영하는 행사를 처벌할까 말까 고심하는 대목에 이르면 김대중 정부의 위선이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은 김정일을 환영해도 되고 어떤 사람들은 김정일을 환영하면 처벌하겠다는 식의 이중 잣대는 김대중 대북 정책의 모순을 잘 보여 준다. 〈조선일보〉는 전국연합과 한총련이 준비하려는 축하 행사가 "국가 정체성"를 흔들고 "내부 갈등 심화"를 부추긴다며 불허를 요구하고 있다.

자민련 국회의원 이동복은 "'북한식 환대'로 그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며 "다양성과 임의성, 그리고 자율성에 입각한 자연발생적인 '우리식 환대'로 그를 맞이해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김정일 답방 환영 행사를 하면 보안 경찰에 끌려가는 것이 '우리식 환대'인가? 북한처럼 관제 동원되나 남한처럼 환영 행사를 금지당하나 강제이긴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김정일이 냉전 우익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답방을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냉전 우익 세력에 반대하며 김정일의 답방을 환영한다. 그가 사회주의 지도자라서가 아니다.(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회다.) 김대중이 여론 조사 결과라며 밝혔듯이 "국민의 90퍼센트가 평화 정착을 바라는 마음에서 김정일의 답방을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김정일 답방을 환영하고 행사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정일 답방 자체가 국가보안법 철폐와 평화 정착 등을 자동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은 국가보안법과 전쟁 위협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지 못한다. "북한 위협"을 근거로 유지돼 온 국내의 정치적 억압 철폐와 항구적 긴장 완화는 오로지 노동자 대중의 운동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 답방에 기대어 행동을 자제하거나 김대중 정권에 대한 공격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에 민족주의 좌파는 남북 해빙 분위기에 해를 끼칠까 봐 정부와의 충돌을 피했는데 김대중은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데 이 점을 이용하곤 했다. "공동선언에 합의하는 세력이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한총련 중앙 간부의 입장은 매우 우려스럽다. 한총련 중앙 간부는 《말》 지(2001년 2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어찌 됐던 공동선언 합의의 한 당사자인 김대중 정권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냉전 세력이 아닌 한은 다 좋다 하여 자유주의적 자본가들 및 그 정치인들과 함께하는 것은 운동의 손발을 묶는 것으로 끝난다. 냉전 세력의 핵심은 지배 계급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에 맞서 가장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세력은 단연 노동자 계급이다. '민족 문제 먼저 해결, 계급 문제 나중에 해결'이라는 단계론은 민족 문제 해결의 주체(동인 動因)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남한내 그 주구들과의 투쟁은 계급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