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대치동 학원가의 몰락이 사교육의 몰락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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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 1번지로 불렸던 대치동이 몰락하고 있다. 작년 이맘 때, 북적거리던 학원 근처는 한산하기만 하다.
최근 경제 불황, 변화된 입시제도, ‘대치동 베이비붐 세대’등 다수의 원인으로 학원가 1번지는 그 위상을 잃어가는 중이다. 경제 불황도 원인 중 하나이긴 하나 IMF 시기에도 학원가의 그 위상은 줄지 않았다. 전례없는 경제 불황 시기가 학원가의 몰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IMF시기의 학원가의 호황에 비추어 볼 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대치동 베이비붐 세대’는 좋은 학군, 일류 학원가로의 접근성 때문에 대치동에 살던 학부모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자녀가 교육을 받을 시기가 지나고 황혼기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어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거나 전세금을 빼며 시 외곽으로 빠지고 있다. 그러나 대치동 이외의 지역에서도 학원을 찾아오는 학생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급격한 대치동의 몰락에 미친 영향은 미비하다.
대치동 붕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입시제도의 변화에 있다. 그간의 교육청의 삽질이 사교육을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를 표면적으로는 일부 달성한 셈이다. 쉬워진 수능, 70퍼센트 이상으로 늘어난 EBS와 수능의 연계율은 수능 점수를 올리는 것에 중점을 두던 대치동 학원의 메리트를 떨어뜨렸다. 자식 뒤를 쫒아다니며 뒤늦게 입시 공부 중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제 ‘대치동을 떠나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말이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학부모들이 ‘대치동’을 떠나겠다는 말이지 ‘사교육’을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다. 입시제도의 변화는 수능을 쉽게 만들어 수능에 치중하는 보습 학원을 어느 정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모든 것을 잘하는 학생’
그러나 변화된 입시제도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근거가 더 많이 필요해졌다. 이전의 입시제도가 ‘수능만 잘하는 학생’을 원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을 잘하는 학생’을 원하고 있다. 학생들은 철저하게 학교 내신을 관리해야 한다. 수상 경력과 대내외 활동 이력도 중요한 대학 입시의 척도가 된다. 심지어 논술도 잘 쓰고 토론도 잘하고 연설도 잘하는 만능이 돼야 한다.
사교육 ‘중심지’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각 학교별로 교사의 기출문제 유형을 분석하는 과외교사가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수능 위주의 교육을 하던 학원들도 바뀐 입시제도에 발 빠르게 적응하며 인근 학교의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반이 만들어 운영 중이다. 수상 경력이나 학교 대내외 활동을 관리하여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입시 컨설팅 업체도 인기를 끌고 있다. 논술 학원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필수다. 어느 정도 수능 점수를 받기 위해 EBS도 챙겨 봐야 한다. 학생 개개인이 이 모든 것을 챙기기는 어렵다. 변화된 입시 환경은 학생 개인의 대학 입시 매니저를 이전보다 더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한 사교육비도 요구한다. 입시 빈익빈 부익부는 여전하고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입시제도 변화가 아닌 ‘대학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동체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청은 제도 변화의 목적을 ‘사교육 철폐’에 맞춰 주먹구구식 제도만을 도입하고 있다. 학생들만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눈치 보기에 바쁘다. 교육의 목적은 사교육을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근원적 고민 없이는 그들이 울부짖는 사교육 철폐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