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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우파를 제압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우파를 제압할 수 없다

탄핵 반대 운동이 급격히 솟구쳐 오른 것은 우파에 대한 반감이 꾸준히 자라 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파는 군사 독재의 잔당들인 데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을 공격했고 철두철미 부패한 자들이다. 우파에 대한 반감 덕분에 1998년과 2002년에 김대중과 노무현이 차례로 집권할 수 있었다.

우파 야당들의 노무현 탄핵 의결은 이런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대중은 냉전 수구 세력에 대한 혐오감을 즉각 행동으로 표현했다. 대중 행동은 한민당의 지지율을 폭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파 반대의 대안은 여전히 모호하다. 우파를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정서는 광범하지만, 그래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파에 대한 반감은 총선에서 주되게 열린우리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정서로 나타나는 듯하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진정한 대안으로 보이기 때문은 아니다. 우파 야당들의 탄핵 의결 이후에도 노무현 지지도는 30퍼센트를 조금 웃도는 정도였다.

오히려 탄핵 반대 운동 참가자 중 상당수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게도 비판적이었다. 운동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표현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은유였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겨 묻은 개’쯤은 된다.

하지만 총선이 코앞이다 보니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돼야 우파를 제압할 수 있다는 기대가 더 강력한 듯하다.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아직은 강력한 대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당 만들기 전략

그러나 우파의 몰락 여부는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느냐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지 않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우파들이 잠시 주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1998년 김대중이 집권한 직후, 한나라당 전신 신한국당은 10퍼센트의 지지도 얻지 못해 거의 붕괴될 수준이었다. 김영삼 정부 하에서 경제위기와 부패, 권위주의적 억압 등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를 통해 사태가 나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정책을 폈다. 임기 내내 신자유주의 정책과 부정부패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만과 분노를 키워 왔다.

그 결과 김대중의 인기는 추락했고, 우파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김대중의 지지도가 85퍼센트에서 16퍼센트까지 떨어질 동안 이회창의 지지율은 15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상승했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됐다.

한편 김대중에 대한 실망과 우파에 대한 반감은 김대중보다 좀더 ‘개혁’적으로 보인 노무현 돌풍을 낳았다.

그러나 노무현은 우파를 제압하기는커녕 자기 지지자들을 공격했다. 파병, 노동자 탄압, 네이스 도입, 새만금 사업 강행, 부안 핵폐기장 강요 등 1년 동안 우파 정부가 추진했을 법한 정책을 모조리 추진했다.

그 결과 노무현의 배신에 환멸을 느껴 정치적 급진화가 진행됐지만, 동시에 기성 정치권 내에서는 우파의 입지가 강화됐다. 〈조선일보〉의 주장이 며칠이 지나서는 노무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심지어 우파는 사회를 더욱 우경화할 ‘의회 쿠데타’를 자행했다.

결국 우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증가해 왔음에도 김대중과 노무현은 우파적 정책을 통해 오히려 우파가 기를 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단순히 ‘대통령 만들기’나 ‘다수당 만들기’ 전략으로는 우파들을 제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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