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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가 본 고속철도 문제

물리학자가 본 고속철도 문제

Q우리 나라 교통체계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우리 나라 교통체계는 대량수송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대량 수송이 유리하지요. 기차는 자동차에 비해 단가도 싸고 오염이 훨씬 적습니다. 유럽·일본도 철도 교통이 발달해 있습니다.

자동차 교통이 발달한 곳은 미국뿐입니다. 미국은 땅이 넓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어서 대량 수송체계가 불리해 자동차를 주로 사용하죠. 사실, 미국도 예전에는 철도 교통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책으로 변경됐습니다.

예를 들어, LA에도 좋은 도시철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습니다. 도시철도 운영권이 석유·자동차·타이어 회사로 넘어간 뒤, 이 회사들이 도시철도를 없애 버린 것이죠.

이것은 공익 목적의 것을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철도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박정희 정권 때 잘못된 정책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자동차 산업을 육성했습니다. 자동차는 에너지 소비가 높고 오염이 심합니다. 이것은 개개인의 건강이나 삶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그 다음에도 역대 정권들은 철도를 등한시했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 나라에서 도로가 발전한 것과 철도가 발전한 것을 보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철로가 지금까지 약간의 개량 외에는 대부분 그대로 쓰이고 있는 형편이지요.

또한, 철도 운영이 계속 적자라고 말하지만 비용을 산출할 때 도로 교통에서는 도로 건설비를 포함하지 않으면서 철도교통에서는 철로 건설비와 유지비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단위 질량 당 운송비를 비교해 보면 철도가 훨씬 쌉니다.

Q이번에 개통된 고속철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개인적으로 고속철도 건설에 반대합니다.

우선, 저는 고속철도 건설이 전시행정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과연 고속철도의 필요성이 건설비 등에 비교해서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고속철도 건설비용이 처음에는 약 12조 원 정도 계획되다가 급증해서 결국 약 20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중국도 최근에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고속철도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노선 길이는 우리 나라의 거의 3배인데 건설비용은 절반입니다. 거리 당 단가로 보면 6배나 비싼 셈이죠. 그만큼 우리 나라가 비싸게 건설한 것입니다.

이렇게 가격이 올라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부고속철도의 70% 이상이 터널과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가도로를 놓은 셈이죠. 고속철도는 직선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지형에 맞지 않습니다.

가장 긴 터널이 거의 10km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같이 터널이 많으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져서 운영비도 높아집니다. 경부고속철도에서 소비하는 전력이 제주도 전체 소비량의 무려 40%가 될 것이라고 하지요.

일단 요금을 새마을호의 1.3∼1.5 배로 한다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높은 운영비 때문에 결국 비행기 요금 수준으로 인상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존 열차의 속도를 늦추고 횟수도 줄여서 결국은 고속철도를 이용하도록 유도하겠지요.

Q하지만 고속철도의 건설로 부산과 목포까지 걸리는 시간이 각각 1시간 30분∼1시간 40분씩 단축됐는데요.

A 고속철도는 부산까지 2시간 40분 걸리는데 기존의 새마을호는 4시간 10분 걸리니 결국 1시간 30분 빨리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존 경부선도 전철화하고 노선을 일부 개량한 후 ‘틸팅 시스템’을 도입하면 3시간 정도에 운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틸팅(tilt)은 ‘기울이다’는 뜻인데, 이는 곡선 코스에서도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 열차를 안쪽으로 기울여서 필요한 구심력을 얻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15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틸팅 열차를 운영해서 따로 고속철도를 건설하지 않고도 그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나라도 이러한 방식을 이용했다면 약 20조 원이나 사용하지 않고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 20조 원을 들여 운행시간을 1시간 정도 단축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사실, 서울 시내에서 교통 체증 때문에 고속철도를 타러 가는 시간이 1시간 보다 훨씬 더 걸릴 수 있는데 효율성이 의심스럽습니다.

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대구에서 부산까지 노선이 경주를 경유한다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20분 정도가 추가 소요되는데, 이는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지요. 해마다 승객들의 시간과 이에 따른 운송료 부담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낭비입니다.

게다가 경주에는 아직 고고학적 조사가 끝나지 않은 곳이 많은데, 이러한 유산들과 환경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굳이 경주 관광지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현재 단선인 대구선 (대구-경주) 철도를 복선 전철화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경부·호남선 철도가 포화 상태가 돼 고속철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실 서울에서 대전 구간이 포화 상태입니다. 그런데 고속철도에서도 서울-대전 구간을 경부선과 호남선이 함께 사용합니다. 제 생각에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느니 차라리 서울-대전 구간을 추가로 건설해서 경부선과 호남선의 운행을 분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남은 비용으로 다른 기존의 철도를 개선하는데 이용하는 편이 훨씬 나았죠. 예를 들어, 중앙선과 영동선, 태백선, 전라선, 경춘선, 장항선, 경전선 등 대부분의 철도는 여전히 단선입니다. 단선이면 철도 수송 용량의 효율이 극히 떨어져, 실제 큰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경부선은 식민지 시대에도 복선이었고, 해방 후에 우리 나라에서 복선화가 된 노선은 사실상 호남선이 유일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철도에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속철도 건설이 아니라 기존 노선을 복선 전철화하는 것이 모든 점에서 나았을 겁니다.

정리 강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