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쌍용차지부장:
“이것은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향한 외침입니다”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글은 단식 중인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송전탑에서 고공 농성하고 있는 최병승·천의봉 조합원에게 보낸 편지다.
울산은 바닷바람이 많이 분다고 들었습니다. 햇볕이라도 막으려고 쳐놓았던 천막도 거센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면서요. 하루 종일 내리는 빗줄기가 어느 때보다도 야속한 날입니다. 나무판자 위에서 보낸 밤이 벌써 일 주일이나 되었네요. 지내기 불편한 건 사진으로 봐도 알겠는데, 밥은 어떻게 먹는지, 똥은 어떻게 싸는지 주책없게 난 그런 게 걱정입니다.
단식이 이제 열흘을 넘어 기력 없는 와중에도, 밤이면 이제 한기가 드는 계절이라 차디찬 철탑 위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면 철탑 위에 밧줄 하나 의지해서 버티고 있나 생각이 듭니다. 15만 4천 볼트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위험천만한 송전탑에 매달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치는 절규는 참으로 목 메이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지난 십 년을 비정규직도 사람이라고 머리가 깨지고 이빨이 부러지고, 아킬레스건이 식칼에 끊어져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싸우다 대법원에서 정규직해야 된다는 판결까지 받았을 때 느꼈던 회한이 얼마나 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두 동지는 철탑 위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합니다. 기가 막히는 세상입니다.
저는 해고가 사실 두 번째입니다.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때 한 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때 또 한 번. 부모한테 물려받은 거 없이 열여섯에 봉제공장 다니고, 살아내려고 악으로 깡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임금 많이 준다기에 중동에 가서 남들 낮잠 잘 때 악착 같이 잔업하고, 남들 퇴근할 때 일해서 부모한테 물려받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젊어서는 돈 버는 것 이외에는 무관심하고 남이 무시할라치면 쌍심지를 켜들고 주먹다짐을 하던 철부지였지요.
그러다 노동조합이라는 걸 만나고부터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모든 게 돈으로 보이던 시절, 난 노동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을 노동운동 하면서 사람으로 살아보자고 노력해 왔습니다만 좋은 세상은 아직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입니다. 정리해고로 23명이 죽어 곡기를 끊어도, 대법원 판결대로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며 15만 볼트의 송전탑에 올라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대통령 선거 말입니다.
대선후보들이 복지, 경제민주화를 통해 화합과 소통의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난 쉽사리 그걸 믿을 수 없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민생을 이야기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하겠다던 사람들이 선거철이 지나고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재벌들 눈치 안보고 경제민주화 하겠다는 소리가 귓등에도 안 들어옵니다.
지난해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이 10만 명을 넘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고, 비정규직은 9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 계획 없이 무슨 복지고, 또 무슨 경제 민주화입니까? 선거철임에도 누구 하나 목숨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 근처에 와보지도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야 라고 할 만큼 노동자들의 처지와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대선후보들에게 노동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할 따름입니다.
사람을 살리겠다고 곡기를 끊은 지 14일째입니다. 희망 한 움큼 보지 못한 채 골방에서 죽어간 내 동료들과 가족들의 죽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에 택한 게 이 미련한 방법입니다. 지난 4년간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이런저런 투쟁 해봤는데 궁리를 해봐도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 이 미련을 부려봅니다. 동지들도 방법이 없어 그 차디찬 철탑 위에 오른 것이겠지요?
하지만 난 이렇게 미련을 부리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 산화해서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려 준 것처럼 우리가 고통을 견디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절규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고 확신합니다.
힘들지만 견디어 봅시다.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해고라는,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물려주지 말자는 단단한 마음으로 견디어 봅시다. 이 외침이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견디어 봅시다. 야속한 비가 온 후에 날씨가 많이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밥 잘 먹고, 웃으면서 투쟁합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