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현직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정규직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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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교조 조합원들은 ‘영어회화전문강사 계약연장 및 교사화 반대’ 요구를 지지한다.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 제도에 대한 반대가 영전강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영전강 제도를 반대하는 것과 현재 고용된 영전강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것은 같지 않다.
영전강 제도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교과부 등 그 정책 입안자들에게 돌려야지, 그 정책의 봉 또는 피해자인 영전강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영어 몰입 교육’이라는 망상을 현실화하려고 교육과 아이들을 망치고, 계약직 일자리를 마구 만든 장본인은 영전강이 아니다. 정규직과 영전강 갈등의 근본 책임은 교육을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사들에게 ‘의자놀이’를 강요하는 교과부에 있다.
영전강은 정규직 교사들의 경쟁 대상이 아니라 연대 대상이어야 한다. 그들은 같은 사용자에 의해 착취당하는 동료 노동자이다.
영전강이 “진정한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주장은 부정확하다. 영전강은 정규직 교사들과 달리, 연금·성과급·명절수당·복지 포인트 등을 받지 못하고 방학 중에도 근무해야 한다. 수년을 일해도 임금이 그대로이고, 무엇보다 1년 단위 계약으로 매년 고용불안과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린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반대해 온 전교조 교사들은 영전강 확대 반대와 영전강 제도 폐지를 요구하면서도, 그 정책의 피해자인 비정규직 교사 ‘영전강’들이 겪는 고용 불안정과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그들의 고용을 안정화하는 것, 즉 정규직화이다.
안타깝게도 정규직 교사들, 특히 초등교사들 가운데는 영전강의 ‘전문성’ 결여를 이유로 그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많은 정규직 교사들이 영전강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영전강 제도가 초등교육의 특성을 무시한 면이 분명히 있고, 그 제도가 여러 모로 문제가 많아 폐기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영전강이 정규직과 동일한 교사자격증이나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정규직 교사가 될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선, 많은 영전강들이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들도 여러 자격증이 있고 교육청의 엄격한 선발 절차를 밟았는데 비전문가 취급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우리는 과연 자본주의 국가의 공인 자격증이나 시험 위주 대학 교육이 교사의 전문성이나 자질을 평가하는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따져 봐야 한다. 시험 위주 대학 교육과 임용고시라는 시험을 존중하는 것은 교육에서 인성과 현장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자유로운(교원평가제 따위 압박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에서) 평가 토론을 중시하는 민주 교육의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자격증 제도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고 해서 교사에게 전문적 훈련과 연수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교사라면 응당 자신이 가르치는 연령대 아이들의 특성에 관한 종합적 이해, 효과적인 교수법, 실전 경험 등 다양한 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자격증 소지 자체보다 모든 교사들에게 충분한 연수 기회가 제공되고, 교육 실천 경험을 둘러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실, 영전강이나 기간제 교사 같은 비정규직 교원들의 정규직화 방안은 그 필요성에 대한 동의만 이뤄지면 교육의 질 향상에 필요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시도를 경계하자
정규직 교사들에게도 고용 불안정 위협이 커지고 있고, 노동조건도 계속 나빠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경계해야 할 부분은 영전강의 비정규직 지위가 그들과 정규직 교사들을 이간질시키려는 사용자들과 정부를 이롭게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용자들과 정부는 정규직 교원들의 ‘무사안일’을 질타하며 이것이 교육의 질을 하락시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결국 영전강의 비정규직 지위가 지속되면 정규직 교사도 불리한 처지로 밀려나기 쉬워진다.
경쟁 만능의 교육 정책과 교원 선발 과정, 경제 논리에 바탕을 둔 무질서한 교육 과정 개편, 교사를 질식시키는 관료적 행정 절차와 관행 등을 놔두고 교사 개인들의 자질에 초점을 두면 결국 사용자들과 시장주의 정부에 이용되기 쉽다.
전교조는 경쟁 교육과 학벌주의에 반대해 온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런 전통이 영전강 대책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
영전강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화 요구를 지지하는 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사의 단결을 가능케 한다. 그래야 정부와 학교 당국이 비정규직(영전강)을 정규직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압박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시도를 어렵게 만들거나 좌절시킬 수 있다.
경제 위기로 정부가 학교를 구조조정하려는 계획을 노골화하고 있다. 긴축 예산이 책정될 내년부터는 그 시도가 본격화할 것이다. 학교와 교사들에게 몰아치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 정규직/비정규직, 교원과 비교원 등의 조건을 넘어서 ― 단결해야 한다.
이런 단결이 가능하려면, 단결이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요구로 제시돼야 한다. 전교조가 영전강 제도에 반대하고 법정교원 확충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 영전강 6천1백4명의 정규직화 염원을 지지한다면 노동계급 단결의 정신을 올바로 구현함으로서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우리는 다음을 요구해야 한다
- 영어회화전문강사제 확대 중단과 제도 폐기, 정규직 교원 확충!
- 법정교원 배치기준 삭제 반대, 법정교원 확충!
- 현직 영어회화전문강사의 정규직화 방안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