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정치적 권리를 짓밟는 ‘ 위헌’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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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정치적 권리를 짓밟는 ‘ 위헌’재판소
전교조 공립중등 관악동작지회 교사
바야흐로 너도나도 쿠데타적 사건을 일으키는 시대다. 수십 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해 온 진보 운동의 성과를 뒤엎는 반동의 시계 바늘이 춤추고 있다.
지난 3월 23일, 공무원노조가 ‘너를 찍지 않고 나를 찍겠다’고 멋지게 선언한 데 이어, 전교조도 보수정치 분쇄를 선언했다. 전교조의 이번 선언은 공개적으로 우리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그 동안의 활동에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이어 예상치 못한 쿠데타적 사건을 일으켰다. 3월 25일 헌법재판소는 교사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법률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려 우리를 크게 실망시킨 것이다.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세월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되자 당시 노태우 정권은 1천5백여 명의 교사들을 구속·해고했다. 이 중에는 5백여 명의 사립 교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1990년 사립 교사들의 복직 소송을 담당하던 법원들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다. 그리고 전교조는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합법화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을 끌던 헌법재판소는 1991년 7월 사립교사 노조 금지는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예상치 못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전교조 교사들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공무원이 아닌 사립 교사에 대한 노동기본권 제한을 규정하지 않더라도 사립 교사도 ‘교사’이므로 하위 법률인 교육관계법령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아전인수란 말이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시 위헌이라는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 결정은 전교조 탄압에 총력을 기울이던 당시 정부에게 헌법재판소마저 시녀 노릇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허구
헌법재판소의 위헌적인 판결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 중학교 교사가 지난 2001년 10월 “초중고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을 금지한 정당법과 선거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최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게으른 헌법재판소가 2년이 넘도록 미뤄 오던 판결을 지금 내놓은 것은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정치 활동을 막으려는 의도가 담긴 지극히 정치적인 판결이다.
물론 전교조도 15년 전에 정치적 중립을 주장한 바 있다. 그 당시에 교사는 정권의 시녀 노릇을 강요받았으며 교육은 정치에 심하게 예속되었던 시절이어서, 정치적 중립은 오히려 교사들의 ‘권리’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치적 중립은 이제 교사들에게 강요되는 부당한 의무에 불과하다.
‘중립’은 허구이다. 정치가 정치인들의 독점물이 되고 의회가 민의를 배반하는 오늘날, 중립이란 한낱 지배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
나는 교사이기에 앞서 시민이다. 고로 정치적 자유를 원한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는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제약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정신을 위반한다면, 헌법재판소보다 위에 있는, 공화국의 모든 권력의 원천인 시민들의 힘으로 헌법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국가의 왼손’인 교사는 ‘국가의 오른손’에 맞서 싸워, 정치적 권리를 스스로 쟁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