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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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평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
4월 첫 주에 미국 주도의 점령군이 쫓겨났던 이라크 남부 도시 중 하나가 쿠트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1916년에 바로 이곳에서 영국 침략군이 터키군에 포위당했고, 결국 항복했다. 물론, 지금의 이라크 점령은 아직 그 정도의 재앙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과 그 동맹들(영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이다)이 점차 자신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들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은 팔루자에서 해병대에게 저항을 진압하라고 명령했고, 급진적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사드르의 힘을 꺾으려 했다. 두 전선에서 한꺼번에 싸운 것은 정말 멍청한 실수였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위기는 부시와 그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보좌관들이 만든 계획 자체의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라크 침략은 미국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가 추진한 “변형 전쟁”의 시험 무대였다. 상대적으로 작고, 고도로 기계화되고, 철저하게 무장한 미군은 이라크 군대를 압도하면서 겨우 몇 주만에 이라크의 주요 중심지들을 점거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장기 점령한다면 중동을 지배하고, 이곳의 거대한 석유 자원을 쉽게 지배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첫번째 모순이 있다. 럼스펠드의 군사 독트린은 소규모의 기동성이 높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러한 군대는 이라크 같이 넓고 복잡한 사회를 점령하는 데 적당하지 않다. 대규모 군대가 소규모 부대들로 쪼개져 이라크 전역에서 점령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사상자가 속출했고, 이는 부시 정부를 정치적으로 난감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제국주의 열강은 영국의 인도군처럼 주로 현지에서 모집한 용병들에 의존했다. 그러나 브레머는 점령에 유용할 수도 있었던 이라크 군대를 해산시켰다.
미국은 자신에 동조하는 정부들을 ‘의지의 동맹’으로 끌어 들여 부족한 군인을 보충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 주에 쿠트를 점령하고 있던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저항 세력 앞에서 도망을 치면서 이런 정책의 한계가 폭로됐다.
럼스펠드는 보안요원으로 고용된 계약자들과 전직 군인들로 이라크를 가득 채우면서 미군이 맡았던 임무를 사유화했다. 하지만 이런 용병들은 점령 통치자가 이용할 수 있는 군사적 자원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지난 며칠 동안 목격했듯이, 공격과 납치에 취약했다.
두번째 커다란 모순은 21세기 초반인 오늘날 미국이 187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여왕으로 등극했던 것처럼 자신을 식민지 권력으로 선언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브레머는 미국에 고분고분하지만, 민주적 정당성을 누리는 이라크 정부를 구성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선거를 거쳐야 하는데, 이라크인들은 분명히 워싱턴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에게 투표할 것이란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점령이 종결되기로 예정된 6월 30일을 둘러싸고 온갖 책략이 난무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 미국의 계획은 올해 말에 선거를 치르되, 일단 미국이 뽑은 과도통치위원회에 “주권”을 넘기는 것이었다. 올해 말에 있을 선거도 겉모습만 바꾸는 수준일 것이고, 미국 점령군의 주둔은 계속될 것이다.
최근 브레머는 미래에 선출될 정부를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실제 권력을 미국 대사관과 미국 기업의 손에 쥐어줄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사건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다.
브레머와 미군은 엄청난 무력을 과시하면서 4명의 미국 용병들의 죽음에 복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저항 세력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키면서 점령의 약점만 노출시켰을 뿐이다. 팔루자에서 발생한 사건은 미국의 화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킬 것이다. 지난 주에만 6백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점령자가 의존하는 권력의 뿌리가 얼마나 얄팍한지를 폭로했다.
〈옵서버〉의 패트릭 그레이엄은 “팔루자 바깥에서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통제 방법은 사살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운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사용하면서도 확실한 군사적 승리를 얻지 못한 채 심각한 정치적 패배를 겪고 있다.
팔루자에서는 새로운 이라크 군대의 한 대대가 싸우기를 거부했다. 심지어는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의 기회주의자들도 반항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사임했고, 어떤 이는 공개적으로 미국의 전술을 비난했다. 그들은 이라크 도시들을 폭격하고 있는 점령군과 동조해봤자 정치적 자살 행위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브레머는 한발 물러나서 팔루자에서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이라크 남부의 무크타다 사드르의 군대는 진압되기는커녕 시아파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카르발라와 나자프에 진지를 마련했다.
토니 블레어는 점령이 패배한다면 “독재자들이 기뻐할 것이고, 광신도와 테러리스트들은 기고만장할 것이다.” 하고 거만하게 말했다.
럼스펠드는 이라크에 미군을 더 많이 보내 “불한당, 폭도, 테러리스트들”을 쳐부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베트남 전쟁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과 달리 훨씬 더 많은 병력을 파병해 이라크 위기에 대처할 수는 없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징집병이었지만, 지금 미국은 현역 육군 자원병들에 의존하고 있다. 48만 명의 현역 육군은 미국 역사상 최소 규모다.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 로렌스 코브는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 때문에 미군이 받는 엄청난 압력을 묘사했다. 그가 인용한 어떤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자원병 군대는 지난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 무너지기 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코브에 따르면, “현역 육군 사단 10개 중 겨우 2개 사단만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외부에서 전투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이라크 정복은 예방 전쟁이라는 부시 독트린의 첫 시험대였다. 그러나 바로 그 이라크 정복 때문에 미국이 부시 독트린을 세계 어디서나, 예컨대 동북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어려워졌다.
부시 정부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이라크는 점점 더 수렁이 되고 있지만, 미군 철수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 제국주의의 가장 큰 패배가 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독보적인 세계 “패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시와 블레어가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