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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회주의’와 차베스가 못다 이룬 꿈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오랜 암 투병 끝에 3월 6일 숨졌다. 전 세계의 민중에게 깊은 영감을 준 차베스의 “21세기의 사회주의”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조망한다.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 제 확신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 그것은 사회주의, 즉 평등과 정의가 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2005년 1월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온 5만 명에게 이렇게 연설했다. 청중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차베스는 그런 환호를 받을 만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배자들의 복마전이었던 석유 산업이 국가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야심 찬 사회 복지 프로그램 ‘미션’의 결과로, 시행 첫해에만 1백만 명이 교육받을 기회를 얻었다. 기초 의료 보장 프로그램 덕에 1천8백만 명이 의료 혜택을 누렸다. 빈곤층에게 식료품을 값싸게 공급하는 국영 소매점이 1만 4천 개 이상 설립됐다.

이런 개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백인·원주민 혼혈인 차베스는 ‘볼리바르식 혁명’이 전진하는 과정에서 민중과 거리를 좁혀 갔다. 그는 미국 제국주의를 단호히 비판했고, 신자유주의가 낳는 고통을 혐오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베네수엘라가 수십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투쟁의 정점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세계경제 불황은 라틴아메리카에 재앙이었다. 수출 시장 위축과 금리 인상으로 외채 위기가 터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은 최악의 처지로 내몰렸다. 20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7천5백만 명, 즉 라틴아메리카 인구 전체의 15퍼센트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반면 지배자들은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계급 불평등이 극심해졌고, 반란과 항쟁이 잇달았다.

민영화 계획 철회, 주요 산업 국유화, IMF 협상 백지화 등의 요구를 내건 민중 항쟁의 물결이 라틴아메리카를 휩쓸었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민중은 항쟁을 일으켜 정권을 두 번씩 갈아치웠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거리 시위, 공장 점거, 민중의회 수립 등을 선보인 강력한 민중 운동이 등장했다. 브라질이나 우루과이 같은 나라에서도 민중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겠다고 약속한 정부를 선택했다.

항쟁

베네수엘라에서 급진화는 1989년 2월 27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작됐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유가는 말 그대로 하룻밤 새 갑절로 뛰었다.

등굣길에 나선 학생들은 이 사실에 분노해 반란을 일으켰다. ‘카라카소’라고 불리는 이 반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페레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 1천5백 명을 학살했다.

3년 뒤인 1992년, 공수부대 대령 우고 차베스는 다른 급진파 장교들과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차베스는 투옥됐다.

그러나 그는 TV에 잠깐 출연해 “우리의 목표가 ‘지금 당장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분명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연설했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 후, 차베스는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과 결탁해 석유 수출에서 짭짤한 이득을 보는 베네수엘라 지배자들은 이를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2002년 4월 12일, 우익 군 장교들이 차베스를 감금했고, 기업 총수가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서 차베스의 개혁 조처들을 백지화하려 했다. 쿠데타였다.

베네수엘라 민중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학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최대 50만 명의 빈민과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우익 쿠데타는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쿠데타에 실패한 기업주들은 그해 말부터 직장 폐쇄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말려 죽이려 했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들이 나섰다. 노동자들은 대중교통을 원활하게 운행하려고 노동자위원회를 건설했고, 폐쇄된 공장 문 앞에서 시위를 벌여 공장을 재가동하도록 만들었다. ‘기업주가 공장 문을 닫으면,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해 통제할 것이다’ 하는 구호가 큰 인기를 끌었다. 세 달 만에 직장 폐쇄도 끝났다.

아래로부터

이 과정에서 차베스는 급진화했다. 대중의 힘으로 권좌에 복귀한 차베스는 “민중 권력”이라는 기치 아래 국유화와 복지 확충을 가속화했다. 그가 새로 만든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에 6백만 명이 가입했다.

그는 미국 제국주의도 분명하게 반대했다. 2006년 UN 총회에서 차베스는 조지 부시를 직접 겨냥해 “악마”, “[지옥불의] 유황 냄새가 난다”며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에 연대를 표하기도 했다.

차베스는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나 차베스의 ‘볼리바르식 혁명’은 곧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평등과 정의가 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민중 권력”을 아래로부터 건설하는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2005년 5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광장에서 연설하는 차베스. ⓒ사진 출처 Bernardo Londoy(플리커)

‘볼리바르식 혁명’의 재원인 석유 수익은 중동의 불안정과 맞물린 고유가에 기대고 있었다. 2008년 말 경제 위기가 세계를 강타하자, ‘미션’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을 받았다.

기업주와 관료 들도 골칫거리였다. 기업주들은 거액을 횡령해 기업 국유화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차베스 정부의 관료들도 부패와 비효율로 악명 높았다. 빛나는 대중 운동을 건설한 기층 활동가들은 여러 차례 쓰디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차베스는 특유의 ‘친서민적’ 매력을 발휘해 일요일 TV 예능 특집 프로그램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국정을 운영했지만, 이런 행보가 “민중 권력”을 위한 지난한 과정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차베스가 스탈린 같은 독재자는 아니었음은 분명하지만,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와 권력 문제에서는 모호함이 있었던 듯하다.

PSUV는 차베스와 대중운동 사이의 연결고리가 돼야 했지만, 당내 논쟁은 종종 ‘차베스에 대한 도전’이라 간주돼 차단당했다. 관료들의 부패나 기업주들의 공격에 맞서는 과정에서 국가는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조직됐다.

미국 제국주의를 반대한 그는, 어떻게 봐도 “민중 권력”과 무관한 중국이나 이란 같은 국가들과 손을 잡는 방향을 모색했다. 리비아의 카다피와 시리아의 아사드를 지지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국내의 일부 좌파와 논자들은 아쉽게도 차베스의 모호함, 한계, 오류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 비판 자체가 지배자들에게 이용되는 것인 양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차베스 자신은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대통령에도 네 차례나 당선했고, 차베스가 제안한 국민투표는 대개 승리했다. 그러나 기층 민심은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 정부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PSUV는 지방선거에서 중요 지역을 우익에게 내주기도 했고, 차베스 자신조차 가장 최근의 선거에서 54퍼센트를 얻어 권좌에 오른 이래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차베스가 떠난 지금, ‘볼리바르식 혁명’은 커다란 갈림길에 놓여 있다.

차비스타 국가기구가 민중의 잠재력을 압도할 것인가?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에서 좌파적 도전은 시련을 겪는 듯 보인다.

좌파 대통령의 대명사였던 브라질의 룰라는 당선 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미군의 아이티 점령을 지지하며 파병까지 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물 민영화 반대 투쟁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자본주의 발전’을 추구한다. 이렇듯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접수해 개혁을 이루려는 시도는 흔들리고 길을 잃기 십상이다.

진정한 ‘21세기 사회주의’를 이루려면 이와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바로 눈부신 대중운동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 준 기층 민중이 진정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런 도전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기층 운동은 10년 전만큼 역동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아랍 혁명이 전 세계에 거대한 영감을 주며 전진하는 지금, 투쟁이 부활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21세기 사회주의’가 성공하려면 ‘볼리바르식 혁명’에서 드러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민중 권력”을 아래로부터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조직적 노력은, 베네수엘라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