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7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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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7기 임원 선거가 3월 20일 대의원대회에서 실시된다. 이번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세간의 관심은 물론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주목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몇몇 이유들로 조합원들의 기대가 별로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위원장 선거는 기호1번 이갑용-강진수 후보 조와 기호2번 백석근-전병덕 후보 조의 양파전이다.
무색무취
먼저, 백석근-전병덕 후보 조의 면면을 살펴보자. 백석근 위원장 후보는 “25년 간 건설 일용노동자 조직사업”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빈민운동 출신으로 1987년 이후 건설 일용노조를 추진했고, 건설노조 위원장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이다. 전병덕 사무총장 후보는 대우자동차판매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장실천연대의 리더다.
백석근-전병덕 조는 구태의연하고 무난하고 상투적인 얘기를 주로 한다. 지금까지 위원장 선거에서 한두 번 이상 나왔을 법한 얘기들을 모아놓은 듯이 말이다. 게다가 말도 글도 아끼며 주장을 최소화하고 있어 의견을 소상히 알기도 힘들다. 예닐곱 장짜리 정책자료집에 사용된 텍스트 말고는 새로 발표한 글도 거의 없어, 백석근-전병덕 후보 게시판은 비어 있다시피 한다.
백석근 후보는 “산별조직들이 추천해서” 나왔다고 했는데, 아마도 산별 연맹을 두루 아우르자니 무색무취의 개성 없는 관료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는 듯하다.
백석근-전병덕 조가 내세우는 것 가운데 “혁신과 투쟁”, “연대와 단결”, “현장과 호흡” 등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인 진부한 공약이다. 4기 위원장 선거(2004년) 때부터 “혁신” 약속이 계속됐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혁신’의 현실화인데, 백석근-전병덕 조는 이 점에서 기대와 확신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총연맹과 산별 연맹의 상층 간부였던 두 후보 자신과, 백석근 위원장 후보를 추천한 산별 대표자들의 상당수는 혁신이 필요한 오늘의 민주노총 현실과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3개월여 동안 비대위원장으로서 백석근 후보는 “혁신과 투쟁”을 이끌 리더로 인상을 크게 남기지 못했다.
불길하고 의심스러운 주장도 있다. “기존의 총파업 전술을 냉철하게 평가하여 … 새로운 투쟁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자주 듣던 “총파업 남발” 비판론과 흡사하다. 그런데 총파업이 이행되지 않고 번번이 취소된 것이 조합원들의 실망을 낳았지(“뻥파업”, “양치기 소년”), 총파업 전술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노정교섭·노사교섭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거나 “노사정 교섭”을 추진하겠는 주장도 의심스럽다. 과거에 민주노총이 노사정 테이블에서 대개 투쟁의 발목을 잡힌 채 양보를 강요당했다는 점은 일단 제쳐놓고 말하자. 박근혜 정부는 아예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있다. 이럴 때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은 그럴 듯한 교섭 전략보다는 효과적인 투쟁에서 나온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97년 파업 이후였다.
분열
그 다음으로 이갑용-강진수 후보 조의 면면을 살펴보자. 이갑용 위원장 후보는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의 상징적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 1998~99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울산동구청장을 지내다 공무원노조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징계를 거부해 직무정지 당했다. 강진수 사무총장 후보는 현재 금속연맹 한국지엠지부 교선실장이다.
이들은 모두 좌파노동자회 소속이다. 좌파노동자회는 새노추(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의 후신이고,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2기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본다. 좌파노동자회의 허영구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김순자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 좌파노동자회의 최근 활동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 실시를 요구하며 12일간 민주노총 위원장실을 점거한 것이다. 이갑용-강진수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도 직선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갑용-강진수 후보 조는 투쟁을 강조하는 등 백석근-전병덕 조보다 훨씬 좌파적이긴 하다. 그런데 현재 노동운동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진단과 비전에서 부적절한 것이 많고, 무엇보다 말은 급진적·좌파적으로 하면서 실천은 종파적으로 하는 초좌파주의로 운동을 분열시킬 위험이 매우 커 보인다.
이갑용 후보는 4기 5대 이수호 집행부부터 6기 9대 김영훈 집행부까지 한 정파가 다 했다며 이 세력과 명확히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정파란 “통진당 지지 세력”을 가리킨다. 또, “그들과 조직이 달라도 권력을 나누며 함께해 온 세력들과도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갑용 후보의 유세나 주장을 보면, 박근혜 정권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보다 “통진당 지지 세력”과의 단절에 더 열을 올리는 듯하다. 실제로 이갑용 후보는 출사표에서 “권력과 재벌의 탄압도 문제이지만, 노동자들 내에서 노동자들의 피를 빠는 세력과의 단절이 먼저”라며, “분명한 적들보다 내부의 적들과의 단절이 나의 이번 선거의 목표”라고 썼다.
이갑용 후보의 핵심 논지는 대개 이렇다. ‘박근혜 정권은 욕도 하기 싫다.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한 세력들도 똑같다.’ 그래서 실제로 그는 “권력의 맛을 본 민주당, 새로운 권력이 된 통진당, 민주노총 내에서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모두 “우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좌파”라며 그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활개를 치는 민주노총을 만들겠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단순화시킨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박근혜 막아 보자고 민주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 별로 없을까? 최강서 열사가 느꼈던 절망을 피해 보고자 했던 사람들 말이다. 또, 투쟁하는 전국학비노조 조합원들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명예 조합원으로 위촉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요컨대 이갑용 후보의 태도로는 노동조합을 통한 폭넓은 단결 투쟁이 저해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근본 기능은 노동자들이 일자리, 임금, 노동조건을 방어하고 개선하고자 사용자에 맞서 되도록 폭넓게 단결해 투쟁하는 것이다. 여기서 큰 힘을 발휘하려면 노동조합은 같은 산업, 같은 작업장의 모든 노동자들을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최대한 광범하게 포괄하려 애써야 한다. 또, 노동조합 내 정치 세력들은 (구체적 이슈들을 둘러싸고) 단결해 투쟁할 줄 알아야 한다.
이와 반대로 이갑용 후보의 구상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분화를 노동조합 조직 자체로 끌고 들어와 장차 노동조합마저 분열케 할 위험을 제기한다. (사실, 좌파노동자회와 그 전신인 새노추는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하기 전부터 민주노동당과 연합하기를 거부해 왔다.)
좌파노총
사실, 좌파노동자회가 내세우고 있는 “좌파노총” 건설 구상에 이런 분열주의의 위험이 담겨 있다. 좌파노동자회는 민주노총으로부터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논리적 방향은 그것을 향하고 있다.
좌파노동자회는 “민주노총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고, “자본에 포섭”됐고, “어용의 길로 돌아섰다”고 본다. 그래서 좌파노총은 “민주노총 혁신으로 건설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민주노총이 문제가 많지만 고쳐서 가 보자는 식으로는 변화하는 정세에 부응하는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새로운 시대의 총연맹, 좌파노총》)
이런 전술은 민주노총이 좌파노총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촉구하다가, 그것이 안 되면 새로운 노총을 만드는 것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좌파노동자회에게 이번 선거는 새로운 노총을 향해 나아가는 데 명분 쌓기가 될 수도 있다.
이갑용 후보와 좌파노동자회의 인식은 노동조합과 개혁주의 정당에 대한 심각한 이해 부족을 보여 준다. 그들은 지난 15년간 민주노총 지도부가 우경화, 노사협조주의, 타협주의로 기울어 온 이유를 주로 특정 정치 경향의 문제로 연결한다. 그래서 “통진당 지지 세력”을 “몰아”내면 민주노총이 환골탈태해 “세상을 변혁할 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IMF 경제 위기” 이후 노동조합 운동의 경험을 공정하게 돌아보면, 노동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동요하고 후퇴하고 심지어 투쟁을 배신한 것은 특정 정치 경향의 지도자만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체로 그런 경향을 보였다. 특히 경제 위기가 심각해질 때마다 이들은 자본과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이에 부응했다.
이것은 개인적인 결함이나 정치적 성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재자라는 그들의 사회적 구실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노동조합 관료 내의 좌우 구분보다 노동조합 관료와 현장 조합원의 구분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다. 물론 노동과 자본의 대립 다음으로 말이다.
이런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좌파 활동가들은 노조 지도자들과 상근간부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동요하거나 배신할 때는 독자적으로 투쟁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배신할 때 그들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현장조합원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중심
이와 달리 이갑용 후보는 노동조합 조직 구조 문제에 골몰한다. 그가 직선제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데서 보듯이 말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직선제가 간선제보다 더 낫지만, 아래로부터 현장 노동자들 자신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비할 바 없이 더 중요하다.
또, 이갑용 후보는 민주노총의 구조를 산별이 아니라 지역 본부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직 구조 변화가 좌파성을 보증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갑용 후보는 산별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여 총파업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1998~99년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을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갑용 후보는 당시 자신이 드러냈던 한계를 이번에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놔야 마땅하다. “연맹을 제치고” 가면 된다는 것은 전혀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금속, 공공 같은 산별노조를 제쳐버리고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이갑용 후보 측은 산별노조를 우회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할 곳으로서 지역을 강조하는 듯하다. 물론 여기에 덧붙인 근거들을 살펴봐야 한다. 이갑용-강진수 선본의 김홍규 정책실장은 “현재의 산별구조는 포디즘 체제 〈대량생산, 대공장, 정규직〉의 운동”이라며 “이런 구조는 절대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의 서경지부가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고, 이런 예는 다른 산별노조에서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한국GM 비정규직 투쟁도 지역의 동지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면적인 주장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효과를 내려면 대체인력 거부가 필요한데 이런 투쟁에서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사활적이다.
초좌파가 아닌 진정한 좌파라면 활동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산별 또는 같은 작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하도록 설득하고 조직해야 한다. 그런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그런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것은 사용자측의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에 말려들어 노동자 투쟁을 오히려 약화시킬 뿐이다.
금융수탈체제
이것은 이갑용 후보 측의 좀더 일반적인 투쟁 전망과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갑용 후보 측은 오늘의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체제”가 “노동자 전체를 비정규불안정노동자로 만들고 있다”고 과장하며 ‘비정규불안정노동사회’의 철폐를 강조한다.
이것은 좌파노동자회가 비정규불안정노동자를 운동의 중심에 두는 노동조합 운동의 재구성을 주장해 온 것의 연장선에 있는 얘기다. 그 주장은 “정규직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소비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자 운동”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옳다. 그러나 “안정된 직장에서 강고한 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아닌 불안정한 처지의 비정규노동자를 주체로 세”워야 한다며,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를 특권적 노동귀족처럼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인구의 증가로 혜택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지가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윤 체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할 잠재력이 있다.
좌파노동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실업자, 알바, 장애인, 노점상, 철거민, 영세 소농 등을 비정규불안정노동자로 한데 묶는다.(여기에 금융피해자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노동계급을 그저 ‘민중’ 내의 여러 집단 중 하나로만 보며, 체제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노동계급 고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것은 “노동”이라는 말을 쓸 뿐 좌익 민중주의(포퓰리즘)일 뿐이다.
이갑용 후보 측이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는 경제 위기 시대에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에 맞서 효과적인 투쟁을 이끌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갑용 후보 측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 노동계급 정치조직들의 공동전선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 맞서기 같은 중요한 과제에 대해 적절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백석근 후보 측도 정치적으로 신뢰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